[디지털 줌인] 인터넷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니콜라 테슬라의 '꿈'에서 태동하다
[디지털 줌인] 인터넷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니콜라 테슬라의 '꿈'에서 태동하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3.04 06:20
  • 수정 2024.03.04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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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으로 연결된 세계” 테슬라의 공상부터 팀 버너스 리의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1969년 최초로 인터넷 메시지 전송에 성공한 UCLA 연구소 모습 [사진 = UCLA]
1969년 최초로 인터넷 메시지 전송에 성공한 UCLA 연구소 모습 [사진 = UCLA]

오늘날 인터넷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우리는 질의·응답하고, 쇼핑하고, 게임을 하고, 사람들과 대화하고, 영화를 보고, 길을 찾는 데 인터넷을 활용한다. (물론 이 기사도 인터넷으로 읽고 있다.) 특히, 최근 수십 년 사이 인류는 손끝에서 순간적으로 정보를 얻게 되면서 큰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언제 발명되었을까?

흥미롭게도 인터넷의 발명은 지난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졌다.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와 같은 뛰어난 혁신가들은 20세기 초 사람들이 먼 거리에서도 쉽게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장치를 고민하면서 “무선으로 연결된 세계”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은 바로 이런 많은 아버지들에 빚지고 있다.

다음에서 해외 유명 사이트들을 통해 인터넷의 초창기 아이디어부터 미군의 개입, 현대의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출현에 이르기까지의 놀랍도록 복잡한 과정을 추적해보았다.

니콜라 테슬라에서 국방부까지

인터넷은 20세기 후반에 발명되기 오래전에 하나의 아이디어로 존재했었다. 1926년 세르비아계 미국인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는 “수천 마일 떨어져 있는 사람끼리도 마치 얼굴을 ​​맞대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서로 보고 들을 수 있는” 기술에 대해 고민했다. 그는 또한 이 기술이 “남자가 조끼 주머니에 가지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장치에 적합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기도 했다.

‘히스토리 채널’ 웹사이트도 지적했듯이 테슬라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후 수십 년 동안 일종의 상호 연결 시스템에 대해 연구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책과 미디어 자료의 검색이 가능한 데이터베이스, 나아가 궁극적으로 컴퓨터끼리 공유하는 일종의 네트워크를 상상했다. 그러자 미국 국방부가 개입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美 국방부는 전자 데이터를 전송하기 위해 ‘패킷 스위칭(packet switching)’이라는 비교적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국방부의 ‘ARPANET(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Network)’은 이 패킷 교환을 사용하여 단일 네트워크에서 여러 컴퓨터를 연결할 수 있었다.

1969년 10월 29일 ‘ARPANET’은 드디어 UCLA 실험실과 스탠포드연구소 간에 첫 번째 메시지를 보내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교신 과정에서 ‘LOGIN’이라는 메시지가 오류를 일으켜 스탠포드 연구소에는 ‘L-O’만 수신되었다.

“결국 인터넷으로 전송한 최초의 메시지는 ‘LO’였던 겁니다. ‘Lo and behold!(어라, 이것봐라?의 뜻)’는 여기에서 출발한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메시지 전송 팀을 이끌었던 UCLA 컴퓨터공학과의 레너드 클라인록 교수는 이렇게 회상했다. 

“우리가 미처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그보다 간결하고 강력하며 예언적인 메시지는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인터넷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여전히 큰 장벽이 가로놓여 있었다. 당시 존재했던 서로 다른 네트워크는 데이터를 전송할 때 서로 다른 ‘언어(language)’를 사용했고, 인터넷워킹(internetworking) 중에는 서로 ‘대화(talk)’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까 아직까지는 인터넷이라 할 수 없어던 것이다.

1920년대 “무선으로 연결된 세계”를 구상했던 천재적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사진 = ATI]
1920년대 “무선으로 연결된 세계”를 구상했던 천재적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사진 = ATI]

컴퓨터끼리 대화하도록 만들기

<가디언>지의 보도대로 초기 컴퓨터 네트워크는 서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따라서 데이터를 공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로 통신할 수 없었다. 1970년대에 로버트 칸과 빈트 서프라는 두 ‘ARPANET’ 연구원이 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나섰다.

“우리는 여러 개의 네트워크를 갖고 있었습니다. 모두 패킷 교환 방식이었지만 특성이 달랐습니다.”

빈트 서프는 나중에 컴퓨터 잡지 ‘와이어드(Wired)’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일부는 더 컸고, 일부는 더 빨랐으며, 일부는 패킷이 손실되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문제는 이러한 모든 변화와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양한 네트워크에 있는 모든 컴퓨터가 하나의 공통 네트워크의 일부라고 생각하게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네트워크가 공유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었고, 이를 통해 컴퓨터가 서로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발명한 ‘전송 제어 프로토콜과 인터넷 프로토콜(TCP/IP)’은 안정적인 데이터 전송을 위한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한편으로는 발전의 여지를 많이 남겨놓았다.

이와 관련해 서프 연구원은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미래에도 대비해야 했습니다. 프로토콜이 특정 시점에 대해서만 작성되면 나중에 쓸모없게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다.

월드와이드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사진 = ATI]
월드와이드웹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사진 = ATI]

본격적인 인터넷은 언제 발명되었는가?

그렇다면 본격적인 인터넷은 실제로 언제 시작되었을까? 어떤 사람들은 칸과 서프 연구원을 인터넷의 아버지로 여기지만,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은 1983년 1월 1일 ‘ARPANET’이 TCP/IP를 통신 모델로 채택한 이후 발전을 거듭해왔다.(그래서 일부는 이날을 ‘인터넷의 생일’로 치기도 한다.)

‘히스토리 채널’이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의 인터넷은 그로부터 약 10년 후에 시작되었다. 당시 유럽의 핵무기 연구 기구인 ‘CERN’에 근무하던 팀 버너스 리(Tim Berners-Lee)라는 영국 컴퓨터 과학자는 1990년대 초에 ‘HTML(HyperText Markup Language)’을 개발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버너스 리의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이 대중에게 첫선을 보였다. 그리고 거기서부터 일이 시작되게 되었다.

“모두가 인터넷에 존재하기를 원했습니다.”

실리콘 밸리의 컴퓨터 과학자 돈 닐슨은 본격적으로 인터넷이 발명됐을 때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모두가 이 새로운 세상에 존재하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모습이 내게는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다가 1992년 초가 되면서 보통 사람들도 ‘인터넷 서핑’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1993년에는 온라인 웹사이트가 약 600개 있었다. 그 뒤 1994년에 원래 ‘제리와 데이비드의 월드 와이드 웹 가이드(Jerry and David’s Guide to the World Wide Web)’라고 불렸던 야후(Yahoo)가 출시되었고, 얼마 있지 않아 아마존(Amazon), 크레이그리스트(Craigslist), 이베이(eBay)와 같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사이트들도 탄생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거의 30년이 지난 2021년에는 약 46억 6천만 명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있었다. 이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이제 인터넷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온라인 쇼핑에서부터 길 찾기, 심지어 사랑 찾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에 사용된다.

그렇다면 인터넷은 정확히 언제 발명되었을까? 이는 대답하게 어려운 질문이다. 인터넷에 대한 아이디어는 20세기 초부터 스며들기 시작했고, 1960년대 과학자들은 컴퓨터 네트워크 개발에 착수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네트워크끼리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발 벗고 나선 연구자들의 도움으로 이 기술은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었으며, HTML과 월드 와이드 웹의 발명은 최근 몇 년간 우리가 알고 있는 인터넷 개발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다른 많은 기술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에도 많은 아버지들과 개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 동안 인터넷이 얼마나 빠르게 변화했는지를 대한다면, 초기 이에 대해 아이디어를 가졌던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일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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