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궁지에 몰려 김정은에게까지 손을 내민 푸틴의 위험한 도박
[월드 프리즘] 궁지에 몰려 김정은에게까지 손을 내민 푸틴의 위험한 도박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9.08 06:03
  • 수정 2023.09.08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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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 칼럼 "러시아와 북한 관계의 권력 균형에 놀라운 변화"
2019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만난 김정은 위원장 [사진 =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019년 푸틴 러시아 대통령 만난 김정은 위원장 [사진 =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오는 10∼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릴 동방경제포럼(EEF)에서 만나 무기 거래 등을 논의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일간 <가디언>지는 김정은에게까지 손을 내미는 푸틴의 궁여지책은 위험한 도박일 수 있다는 칼럼을 실었다.

칼럼의 필자 세르게이 라첸코(Sergey Radchenko)는 존스 홉킨스 국제대학원(Johns Hopkins 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헨리 A 키신저 센터(Henry A Kissinger Center)의 ‘윌슨 E 슈미트(Wilson E Schmidt) 공헌 교수’이다. 

라첸코 교수는 이 칼럼에서 푸틴과 김정은이라는 두 독재자의 만남은 권력 균형의 변화와 과거 냉전 시대 정치로의 복귀를 시사하면서 새로운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보도된 대로, 북한의 독재자 김정은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곧 러시아를 방문한다면 그 목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이번 만남은 러시아와 북한 관계의 권력 균형에 일부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냉전 기간 동안 북한은 동북아에서 모스크바의 핵심 동맹국이었다. 그러나 당시 북한은 사회주의 종주국인 초강대국 소련에 애걸하는 불쌍한 처지였다. 그러던 것이 이제 김정은의 은둔 왕국은 러시아의 공범자로서 자랑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푸틴 대통령의 북한과의 관계는 대통령 임기만큼이나 오래됐다. 그러나 그 관계는 일반적으로 실용적이지는 못했다. 러시아의 진정한 파트너는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 규모는 2021년 기준으로 거의 300억 달러에 달해 상위 10위권 무역 파트너 자리를 꾸준히 유지해왔다.

북한은 결코 매력적인 파트너가 아니었고, 러시아는 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자격으로 북한에 대한 UN 제재 결의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러시아는 적어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는 형식과 원칙에서 국제 사회의 흐름에 동조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2022년 5월 러시아와 중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다시 발사할 경우 처벌을 가하자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2022년 7월, 북한은 러시아가 점령한 괴뢰 공화국인 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인정했다. 그리고 올해 7월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평양에 나타나 전례 없는 환영을 받았다.

김정은 위원장은 그에게 북한의 최신 무기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었다. 미소와 동지애 속에서 새로운 관계가 탄생한 것이다.

러시아가 북한 무기와 탄약을 필요로 하는 것은, 이란의 무인 항공기를 구입하는 것과 매우 흡사하게, 크렘린이 상당한 궁지에 처해 있음을 시사한다.

러시아의 자랑스러운(?) 무기들이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종이호랑이임이 입증되면서, 구소련 시절 종속국이나 마찬가지였던 북한과 같은 나라들에까지 무기를 사러 돌아다니는 러시아에게는 굴욕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푸틴이 김 위원장을 끌어안기 전에 먼저 고려해야 할 중요한 내용들이 있다.

첫째, 러시아가 수년에 걸쳐 참여해 온 국제 제재 체제를 위반하는 것인데, 아마도 푸틴 대통령은 이를 가장 하찮은 장애물로 여길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스스로가 왕따 국가가 되어 광범위한 서방 제재를 받는 상황에서 동료 불량배들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재 체제를 해체하면, 크렘린이 이론적으로는 여전히 헌신하고 있는 목표인 평양의 비핵화에 대한 모든 희망이 사라질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쨌든 푸틴은 이것이 현재로서는 그가 당면한 어려움 중 가장 사소한 것이라고 여길 가능성이 있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전승절’(6ㆍ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 행사 참석차 방북한 러시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군사대표단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다 [사진 = 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전승절’(6ㆍ25전쟁 정전협정기념일) 70주년 행사 참석차 방북한 러시아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과 군사대표단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다 [사진 = 연합뉴스]

두 번째는 훨씬 더 중요한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 크렘린은 북한과 과도하게 가까워짐으로써 한국과의 관계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

물론, 한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면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큰 타격을 입었다. 2022년 한국의 대(對) 러시아 수출은 37% 감소했다.(수입은 15% 감소). 그러나 한국은 마지 못해 제재에 동참했고, 많은 한국 기업은 여전히 러시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현재로서 한국은 서방 제재 전선에서 약한 고리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크렘린이 전술적 통찰력을 갖고 있다면 이 상황을 유리하게 활용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지렛대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즉, 그는 자신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이 러시아와 대화를 유지하려고 애가 탈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는 말이다.

1980년대 후반 한국의 노태우 대통령이 모스크바에 손을 뻗음으로써 평양에 압력을 가하는 북방 정책을 구사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논리였다. 사실 푸틴 대통령이 집권 초기에 북한에 구애한 것도 바로 이 논리를 따랐다 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의 마음을 무겁게 할 세 번째 고려 사항은 북한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인지 여부이다.

실제로 북한은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가 아니다. 과거 북한은 소련과 중국이라는 동맹국 간의 불화를 이용하고, 서로를 이간질하면서 냉전 시기를 보냈다. 북한은 예측 불가능한 국가로 악명이 높았으며, 한 번 이상(예를 들어 1968년 USS 푸에블로호 나포와 1969년 미국 EC-121 정찰기 격추) 모스크바를 원치 않는 대결로 끌어들일 수 있는 책략을 구사하기도 했다.

북한은 달갑지 않은 파트너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김정은 위원장이 러시아와 어떤 거래를 시도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가 자신을 싸게 팔 가능성은 낮다.

이러한 고려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은 이미 북한과 더 가까워지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했을 수 있다. 이는 부분적으로 러시아가 처한 새로운 상황의 결과이다. 여기에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탈냉전 세계의 종말과 블록적 사고방식의 복귀는 이러한 종류의 국제간 편 가르기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드러내놓고 말하기 껄끄러운, 북한의 오랜 후원자인 중국의 문제가 있다.

중국 역시 미국과의 갈등 심화 때문에 러시아와 가까워지고 있다. 북·중·러 세 나라가 마지막으로 같은 행보를 보였을 때는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으로, 결코 동북아에 있어서는 행복한 시기가 아니었다.

김정은 위원장이 푸틴 대통령을 정말 만날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양국 관계는 분명히 변화하고 있다. 이는 북한이 변하고 있어서가 아니라 러시아가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점점 더 북한과 닮아가는 것 같다. 북한의 무기가 우크라이나의 최전선으로 향하든 그렇지 않든, 러시아가 폭정의 나락으로 빠져들면 김정은 위원장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질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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