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스트레스 못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의사들 많다" 어느 미국 외과의사의 고백
[월드 투데이] "스트레스 못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의사들 많다" 어느 미국 외과의사의 고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0.23 05:52
  • 수정 2023.10.23 0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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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로서의 중압감과 우울증, 스트레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은 뒤 수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캐리 커닝햄 [사진 = 가디언 캡처]
외과의사로서의 중압감과 우울증, 스트레스에 대해 솔직히 털어놓은 뒤 많은 찬사를 받고 있는 캐리 커닝햄 [사진 = 가디언 캡처]

직업 특성상 의사들의 고민과 정신적 상처가 외부로 드러나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영국 일간 <가디언>은 정신적 고통으로 방황하다가 다시 정상을 찾은 한 미국 여성 외과의사의 회복 과정을 통해 의사들의 고단한 삶을 들여다보았다. 

캐리 커닝햄은 심호흡을 한 뒤 강연장을 가득 메운 2,000여 명의 의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미국과 캐나다의 의과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하는 권위 있는 외과학회 연례회의에 연사로 나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참이었다.

이 학회의 회장이기도 한 커닝햄은 자신이 털어놓으려는 내용이 자신의 직업이나 환자와의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의사면허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저는 미국 최고의 주니어 테니스 선수였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허두를 뗐다.

“그리고 현재 저는 하버드 의과대학의 외과 부교수입니다.”

2,000여 명이 모인 강연장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녀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 갔다.

“그러나 저는 의사이기 이전에 한 인간입니다. 저는 평생 우울증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지금은 약물 남용 장애를 앓고 있습니다.”

커닝햄은 그날 강연장에 모인 다른 의사들도 자신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의사들의 자살률은 일반인들보다 더 높다. 미국에서는 매년 300~400명의 의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는 매년 한 의과대학 졸업생 전체에 해당하는 숫자이다.

의사들 중에서도 외과의사는 유독 자살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3년부터 2017년까지 CDC의 ‘국가 폭력 사망 보고 시스템(national violent death reporting system)’에 접수된 의사 자살자 697명 중 71명이 외과의사였다. 알려지지 않은 경우를 감안한다면 실제 숫자는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커닝햄은 이미 자살로 친구 한 명을 잃었다. 그녀는 자신의 직업이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면 자신과 동료들의 생명부터 구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커닝햄이 일곱 살이 되었을 때, 그녀가 테니스에 특별한 소질이 있음을 발견한 양아버지는 그녀를 본격적인 테니스 선수로 키우기로 했다. 그녀는 3년 만에 국제대회에 출전하며 빠르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2살이 되자 그녀에게는 전담 심리학자와 영양사가 배정되었고, 하루 3,330칼로리의 다이어트를 했다. 그녀는 너무 열심히 뛰어서 과호흡을 증상을 겪곤 했다. 그녀의 다리에는 라켓에 부딪힌 멍이 가라앉을 날이 없었다.

그녀는 18세 때 프랑스 오픈에서 패했다. 패배로 인해 그녀는 처음으로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 그녀는 파리의 한 호텔 방에 틀어박혀 일주일 동안 식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세계랭킹 32위에 올랐다. 그녀는 겉으로 보기에는 건강해 보였지만 외로움에 시달렸다. 운동을 통해 얻는 수입은 보잘 것 없었고, 늘 혼자였다. 당시는 휴대폰이나 이메일이 널리 보급된 시대도 아니었다. 그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동료 경쟁자들로 자신의 어려움이나 불안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들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커닝햄은 지적 도전과 삶의 변화 욕구에 이끌려 의학 공부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그녀는 2001년에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과 남학생과 결혼도 했다. 그녀를 테니스 천재로 만든 재능은 의사로서의 역할에도 발휘되었다. 그녀 부부는 뉴욕 웨일 코넬 의과대학(Weill Cornell Medicine)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거친 뒤 보스턴에 있는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펠로우십(fellowship)으로 활동했다.

커닝햄은 갑상선 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내분비 외과의사의 길을 밟았다. 그녀는 수술실의 분위기를 좋아했다. 그녀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행복하게 여겼다.

외부적으로는 커닝햄이 승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내부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수련 중인 의사들은 24시간 내내 일한다. 그들은 가능할 때 먹거나 잠을 자둬야 한다. 그들은 한계까지 몰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술 과정은 의사들의 탈진, 신체적 상해, 여성 의사들에게는 유산 및 불임을 유발할 수 있는 잔혹한 과정이다. 이들은 최소 5년, 일반적으로 7~8년 동안 지속되는 수련 기간을 거친다.

이후 가장 가까웠던 동료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남편과도 이혼을 한 뒤부터 커닝햄은 우을증과 알콜 중독에 시달렸다.

그녀는 매사추세츠 의학 협회(Massachusetts Medical Society)의 ‘의사 건강 서비스 진단’ 프로그램에 자발적으로 신청해 의사로서의 자신에 대한 기밀 평가 및 직무 수행 능력을 진단받았다. 그녀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런데 받아든 결과에 그녀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음주 운전이나 직장에서 어떤 문제도 일으킨 적이 없던 커닝햄은 의료 행위에 부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그 결과 그녀는 업무에 복귀하기 위해 재활과 모니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다.

50년도 더 전, ‘미국 의학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는 ‘아픈 의사들(The Sick Physician)’이라는 놀라운 보고서에서 의사들 사이에 정신 장애, 알코올 중독 및 약물 중독이 광범위한 퍼져있다고 선언했다. 당시에도 의사의 마약중독률은 일반인에 비해 30~100배 높았고, 미국에서는 연간 약 100명의 의사가 자살했다.

이 보고서는 정신 건강이나 중독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의사들에 대한 획기적 지원을 요구했다. 의학협회에 따르면 면허 상실이나 의사로서의 존경심 상실을 우려해 자신의 병을 숨기는 의사들이 너무 많다고 주장했다.

이 보고서가 나온 이후, 의사에게 면허를 부여하는 조직인 미국의 주 의학 협회는 속으로 병을 앓고 있는 의사들을 돕기 위한 기밀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의사 건강 프로그램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즉, 의사를 평가해 진료 행위가 안전한지 확인하는 것과 의사의 상태가 환자 안전에 위협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경우, 의사에게 즉시 진료를 중단하도록 권장하거나 의사가 면허를 유지하기 위해 3~5년 동안 약물 및 알코올 모니터링을 받도록 권장할 수 있다. 

1992년 10대 시절 US오픈에 참가한 캐리 커닝햄 [사진 = 가디언 캡처]
1992년 10대 시절 US오픈에 참가한 캐리 커닝햄 [사진 = 가디언 캡처]

뉴욕의 응급실 의사인 로나 브린은 가족들에게 코로나19 위기 대응 과정에서 업무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의사면허를 잃거나 동료들에게 따돌림당할까 봐 걱정된다고 털어놓은 후 2020년 4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그녀의 친지들은 의료면허 절차의 개선을 요구하는 ‘로나 브린 재단’을 만들었다. 이 재단은 의사의 면허를 주관하는 기관이 의사의 정신건강에 대한 자격을 과거가 아닌 현재 상태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21개 주만이 이 기준을 충족하고 있다. 그 사이에도 의사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의학 정보 사이트인 ‘Medscape’의 2023년 의사 자살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 의사의 9%, 여성 의사의 11%가 자살을 생각한다고 한다. 이 보고서 발간에 참여한 연구자들은 의사들이 사생활 노출을 꺼려 자신의 고통을 감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커닝햄은 자신에 대한 분석 평가 결과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 그 내용을 받아들었을 때 무척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나는 불법적이거나 환자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화가 난 겁니다.”

그나마 그녀는 의사면허가 취소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했다. 프로그램에서는 그녀에게 재활을 받은 후 정기적으로 음주 측정기 테스트와 무작위 약물 테스트를 포함한 일상적인 모니터링을 거친 뒤 직장에 복귀할 수 있다고 밝혔다. 

커닝햄은 한때 테니스와 수술에 쏟아부었던 열정으로 회복에 전념하기로 결심했다.

그녀는 재활원에서 4주를 보냈는데, 이는 20년 만에 처음으로 일주일 이상 쉰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재활을 끝낸 뒤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을 작성해나갔다. 그녀의 앞에는 연구 프로젝트와 전 세계 대학에서의 강의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일들이 언제나 힘들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어쩌면 평생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청중들을 대상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성격의 결함이 아니라 질병일 뿐입니다. 내가 병에 걸렸다고 내가 나쁜 사람도 아니고 나쁜 의사도 아닙니다.”

강연장을 메운 외과 의사들은 그녀에게 기립박수를 보냈고, 그녀의 연설은 29,000회나 다시보기되었다. 이는 미국 의학협회에서 게시한 다른 강의들에 비해 30배나 높은 시청률이다.

“우리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면서 스스로 괜찮다고 선언하고, 의사들의 하위문화를 바꾸자고 주창하는 그 자리는 의사라는 직종 문화에서 정말 분수령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청중의 한 사람이었던 번디는 이렇게 말했다.

그 이후로 커닝햄이 스스로의 커밍아웃을 결정하며 걱정했던 일들은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일한 부정적인 영향은 생명보험 회사들이 그녀의 보험가입을 인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뿐이다.

커닝햄의 전화는 그날의 연설 이후 계속 불이 났다. 전 세계의 외과의사들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고 담론으로 이어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녀는 청중을 향해 이렇게 강조했다. 

“제 이야기가 정답은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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