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줌인] 태국 노동자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휘말린 사연
[이스라엘 줌인] 태국 노동자들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휘말린 사연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0.26 06:00
  • 수정 2023.10.26 0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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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현지 시각)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인질로 잡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가자 지구로 옮기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 시각)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크파르 아자 키부츠에서 인질로 잡은 이스라엘 민간인을 가자 지구로 옮기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특이하게도 하마스가 이번에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잡아간 인질들 중에는 태국인들이 19명이나 끼어있다. 뿐만 아니라 사망자도 30명에 이른다.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이스라엘 농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BBC는 24일(현지 시각) 어쩌다가 태국 사람들 다수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피해자로 전락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메콩강 인근의 한 마을에서 손목에 흰색 실을 묶은 위라폰 랍찬(34)은 노래를 부르는 태국 노인들에 둘러싸여 앉아 있었다.

마을 노인들은 지난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에서 아슬아슬하게 목숨을 건진 후 귀국한 랍찬의 영혼을 그의 몸으로 다시 불러오는 중이었다.

랍찬은 하마스 전사들이 가자지구에 들이닥쳤을 때 이스라엘의 농장과 과수원에서 일하고 있던 2만5,000명 이상의 태국인 중 한 명이다. 이번 공격으로 숨진 외국인 200여 명 가운데 태국인은 최소 30명에 달한다.

현재 태국 정부는 이스라엘에 잔류 중인 수천 명의 태국인들이 귀국할 수 있도록 절차를 밟고 있다.

이스라엘의 거의 모든 농장 노동력은 태국 노동자들이 맡고 있기 때문에 하마스 공격 이후 태국인들이 떠난다면 이스라엘 농업에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는 경고도 나오고 있다. 

태국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이스라엘로 가기 위해 빚을 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빚을 갚지도 못한 상태에서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랍찬과 같은 생각을 하는 태국 노동자들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지난 10월 7일 아침 랍찬과 동료들은 가자지구에서 날아오는 로켓과 이를 요격하는 이스라엘의 아이언돔 ​​시스템이 가동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고 한다.

랍찬은 가자지구 국경에서 불과 5km 떨어진 예샤(Yesha)의 오렌지 농장에서 거의 1년 동안 일해왔다. 그는 과거에도 로켓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총소리를 듣고서는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깨닫고 그날 대부분을 숨어지냈다. 그날 저녁이 되자 하마스 공격자들이 다시 돌아와서 수류탄을 던지고 그들이 숨어 있던 방에 불을 질렀다고 랍찬은 들려주었다. 그와 일행 11명은 달아나기 시작했다. 

“우리가 농장 담을 뛰어넘자 그들이 뒤에서 총을 쐈습니다. 탕, 탕, 탕”

랍찬은 사각팬티 차림으로 농장의 오렌지 나무들 속으로 달렸다. 그들은 발각될까 두려워 휴대폰도 켤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너무 놀라서 밤새 한마디도 입 밖에 낼 수 없었습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랍찬은 10월 13일 태국 정부가 마련한 비행기를 통해 귀국했다. 그는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는 자신이 정말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그들 일행 12명 모두는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마스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귀국을 결심한 이스라엘의 태국 노동자 위라폰 랍찬이 고향 마을의 노인들 가운데 앉아있다. 그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사진 = BBC캡처]
하마스의 공격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고 귀국을 결심한 이스라엘의 태국 노동자 위라폰 랍찬이 고향 마을의 노인들 가운데 앉아있다. 그는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사진 = BBC캡처]

적어도 19명의 태국 노동자들이 하마스에 끌려간 것으로 추정되며, 아직 더 많은 사람들이 실종된 상태다.

북쪽의 다른 마을에 사는 나리사라 찬타상은 하마스 공격 이후로 남편 나타퐁의 소식을 전혀 듣지 못하고 있다. 그날 남편은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하마스 공격을 받고 도주 중이라고 말했다.

나타퐁은 랍찬이 일하던 곳에서 멀지 않은 니르 오즈 키부츠에 있는 아보카도와 석류 농장에서 돈을 벌기 위해 지난해 6월 아내와 여섯 살 난 아들을 두고 이스라엘로 떠났다.

니르 오즈 키부츠는 이번 공격으로 가장 큰 피해를 받은 커뮤니티 중 하나이다. 어린이를 포함해 주민 4명 중 1명은 하마스에 의해 살해되거나 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리사라의 유일한 희망은 남편이 인질 명단에는 없지만, 인질로라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기 위해 이스라엘 행을 선택한 사람들은 주로 태국 북동부 출신들이다.

태국 북동부 지역은 태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하나로, 겨우 벼농사로 생계를 유지하고 변변한 일자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스라엘에 있는 태국 노동자의 80% 이상이 바로 이 북동부 출신이다. 그들은 1980년대부터 이스라엘 행을 선택하기 시작했는데, 이스라엘과 태국 정부는 2011년 노동자 이주에 대해 공식적으로 합의를 맺었다.

그러나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권단체와 노동단체는 태국인들이 안전하지 않은 환경에서 무리한 노동을 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해 왔다.

태국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에 가려면 약 7만 바트(2,100달러)의 공식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이 든다고 BBC에 털어놓았다. 추가 비용과 비공식적으로 들어가는 돈을 합하면 최대 12만 바트가 소요된다.

그렇더라도 이런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이스라엘 행을 선택하는 것은 태국보다 7~8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말한다. 노동자들 중 일부는 이스라엘 고용주가 잘 배려해주고 월급도 제때 지급해준다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의 궤적 [사진 = 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탄과 이를 요격하기 위해 방공망 아이언돔에서 발사된 요격 미사일의 궤적 [사진 = 연합뉴스]

태국 나콘파놈대학교의 인류학자인 푸나트리 지아비리야분야 교수는 “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의 노동을 신분 상승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분석했다. 

“해외에서 일하다 돌아온 사람들이 더 존경을 받습니다. 그들이 외국물도 먹고 교육도 더 받은 것처럼 대우를 받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정부로부터 방치되어온 가난한 이주노동자, 가난한 농부들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가족을 떠나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도록 개혁이 필요합니다.”

체류 기간을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돌아온 사람들에게는 짊어진 빚이 걱정이다. 그들은 땅이나 집을 담보로 돈을 빌리고, 보통 최소한 5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일해야 이 빚을 갚을 수 있다.

랍찬은 여동생이 대출을 받아줘서 이스라엘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나리사라 찬타상의 어머니는 사위를 이스라엘로 보내는 데 필요한 20만 바트를 빌리기 위해 그녀의 논을 저당잡혔다.

아들 아누손 카망(25)을 이스라엘에 보내기 위해 땅을 저당잡힌 어머니는 마음이 무겁다.

카망은 일하던 유기농 채소 농장이 로켓 공격을 계속 받는 상황을 지켜보며 며칠 동안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귀국하기 위해 돈을 더 빌릴 수밖에 없었다.

태국 정부는 카망의 귀국 비용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는 여전히 남아있는 어머니의 빚을 갚기 위해 전쟁이 멈추면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 수입도 괜찮았고, 고용주도 잘 대해주었습니다. 태국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간신히 먹고 살 수는 있지만, 그뿐입니다. 저는 집과 차를 갖고 싶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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