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투데이] 영국 개각에서 새로 임명된 무임소장관의 ‘이념 전쟁’
[월드 투데이] 영국 개각에서 새로 임명된 무임소장관의 ‘이념 전쟁’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1.19 06:36
  • 수정 2023.11.19 0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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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영국 개각에서 무임소장관으로 임명된 에스더 맥베이[사진 = ATI]
이번 영국 개각에서 무임소장관으로 임명된 에스더 맥베이[사진 = ATI]

최근 단행된 영국의 개각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7년 만에 외무부 장관으로 깜짝 임명되며 이목을 끌었다. 특히 이번 개각에서는 무임소장관으로 임명된 한 여성이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유로뉴스>는 18일(현지 시각) 영국의 보수당 총리가, 진보 세력과 정면 대결을 서슴지 않기로 유명한, 보수의 여성 아이콘 중 한 명을 무임소장관에 임명한 내용을 기사로 다루었다. 다음은 이 보도의 전문이다.

이번 대대적 내각 개편에서, 내년 총선을 의식한 리시 수낵 총리는 에스더 맥베이(Esther McVey)를 무임소장관에 임명하며 ‘wokery(’각성‘ 또는 ’깨어있음‘을 나타내는 원래의 의미에서 변질에 진보 세력을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와 맞서 싸우는 임무를 맡겼다.

그렇다면 맥베이 장관의 임명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며, 그녀는 어떤 식으로 보수당 선거 전략의 핵심이 될 ‘문화 전쟁(또는 이념 전쟁, culture wars)’을 이끌 것인가?

지난 몇 년간 영국 정치는 특히나 중독성이 강한 막장 TV 드라마 같았다. 사람들은 보통 막장 스토리에 욕을 퍼부으면서도 빠져든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자면, 작금의 영국 정치는 드라마 ‘트윈 픽스(Twin Peaks)’ 시리즈에서 릴런드 파머가 재즈에 맞춰 춤에 빠져드는 동안 사라 파머가 막다른 상황에 다다라 “이 집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야?”라고 비명을 지르는 장면과 흡사하다.

실제로 리시 수낙 총리의 선명한 내각 개편이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면서 영국 정치는 다시 한 번 혼란에 빠져들고 있으며, 이는 내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총선에서 보수당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번 개각에서 가장 주목할 점 중 하나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신임 외무장관으로 임명되며 영국 정치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는 사실이다. 이는 1970년대 알렉 더글라스 흄 이후 처음으로 전 총리가 내각에 복귀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새로운 장관 지명자는 에스더 맥베이였다.

전 노동연금부 장관이자 ‘GB News(오른쪽 다리가 불구인 사람보다 더 우파적인 영국의 무료 정치 방송 채널)’의 전 진행자였던 맥베이는 무임소장관으로 다시 각료에 임명되었다.

철저한 보수 우파인 그녀는 언론을 상대하는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높으며, ‘진보의 위선 또는 오류(wokery)’에 맞서는 “상식적인 장관(minister for common sense)”임을 내세울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맥베이 장관의 이념은 무엇일까?

‘각성 또는 깨어나다’를 나타내는 ‘woke’의 정의는 누구에게 물어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 용어는 190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미국 흑인들이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을 벌이며 사용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흑인 공동체에서 정치적으로 ‘각성했다(woke)’는 것은 웹스터 사전의 정의처럼 사회 정의와 인종 차별에 대해 의식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싱어송라이터 후디 레드베터(일명: Lead Belly)가 역사적 저항 운동 노래 ‘스카츠보로 소년(Scottsboro Boys)’을 내놓으면서 처음으로 회자되기 시작했다.

이 노래는 1931년 앨라배마에서 백인 여성 2명을 강간한 혐의로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 10대를 비롯한 흑인 청년 9명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당 노래에서 ‘woke’는 미국의 흑인으로서 인종차별적 폭력에 각성하고 저항하라는 용어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woke’는 특히 정치·문화적인 구조적 불평등에 대해 의식화되어있음을 의미하게 되었다. 즉, 본질적으로 인종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사회·정치적 문제들에 대해서 진보적인 태도를 유지한다는 말이다.

이 용어는 2014년 ‘흑인의 목숨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운동을 기화로 더 많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경찰이 마이클 브라운을 총으로 싸 사망에 이르게 한 이후 흑인 공동체 대한 경찰의 가혹행위 등 사회적 부당함을 사람들에게 일깨우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woke’라는 용어에는 특별히 흠잡을 구석은 거의 없다.

문제는 보수 세력과 우파가 이 용어를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는 데에 있다. 그들은 특히 ‘의식화(woke)’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정체성에 입각한 사회 정의 논란, 사회의 체계적 불공정에 대한 문제점 지적, 학교에서의 인종 문제 교육, 성소수자(LGBTQ+)의 권리 …… 이런 모든 것들이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문화 전쟁 또는 이념 전쟁’에 수렴된다.

요즘은 ‘woke’라는 단어는 불성실이나 ‘수행적 행동주의(performative activism : 대의나 헌신보다는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선택한 행위)’를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된다. 또, ‘의식화 이데올로기(woke ideology)’ 또는 ‘의식화 아젠다(woke agenda)’와 같은 문구로도 사용되는데, 보수진영이 더 극단적인(보통 인종차별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진보적 가치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때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표현이다.

선하고 숭고한 가치를 악마화하는 것은 이제 정의 추구와 도덕 과잉에 반발한 냉소적 모욕과 같은 말이 되었다.

우파는 이 표현을 소외된 집단과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세력을 공격하는 데 사용하면 더 많은 표로 이어질 것이라 믿으며 ‘문화 전쟁’의 전투에 나섰다. 또한 이는 ‘의식화’에 익숙한 사람들을 불온 세력으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용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현재 보수당 정부와 에스더 맥베이 장관에게 딱 맞는 토양이 형성되어 있기도 하다.

타협을 모르면서도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남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는 맥베이의 임명은 보수당 우파에게는 전 내무장관 수엘라 브레버먼의 해임 이후 찾아온 구원의 횃불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맥베이를 지칭하는 ‘反 의식화 아젠다(woke agenda)’나 ‘상식의 여왕(common sense Tzar)’ 같은 용어는 ‘GB 뉴스’를 진행하며 얻은 애칭으로, 사회 구성을 단순히 ‘의식화 된(woke)’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으로만 규정해 건전한 담론 형성을 훼방 놓는 맥베이의 특성을 잘 드러낸다.

참고로 맥베이는 2020년에 보리스 존슨 내각에서 해임되었으며, 그녀는 남편이자 보수당 의원이기도 한 필립 데이브스와 함께 ‘GB News’를 공동 진행했다. 아울러 그녀는 주택부장관 자리를 유지한 채 부업으로 ‘GB News’ 진행을 맡았다는 사실을 밝혀둘 필요가 있다.

당시 그녀는 반부패 감시 단체로부터의 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영국의 고위 공무원 임용 시 이해충돌을 심사하는 단체인 ‘Acoba’는 그녀가 로비 규칙을 위반했다고 밝힌 바가 있다.

‘GB News’는 의도가 명백한 ‘의식화 대학(woke universities)’ 코너 등을 통해 영국이 과거 역사에서 저지른 잔혹 행위에 대해 사과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설파하는 등 우파 이념의 소굴 노릇을 하고 있다.

맥베이의 지난 행적을 고려했을 때 그녀가 말하는 ‘상식(common sense)’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그것은 ‘반 LGBT 교육(anti-LGBT education)’을 의미한다. 2019년 보수당 당권 경쟁에서 그녀는 동성애 교육을 반대할 권리가 학부모에게 주어져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당시 그녀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저스틴 그리닝을 포함한 내각 동료들조차 “인권이나 평등 문제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눈살을 찌푸릴 정도였다.

또한 그녀의 ‘상식’은 2022년에 보수당 의원 40명과 함께 대처주의(Thatcherite)를 지지하는 모임인 ‘보수로 매진(Conservative Way Forward)’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로 매진’은 정부 일자리에서 다양성관 관용성 담당자를 줄이면 혈세 5억 파운드 이상을 절약할 수 있고, 공무원들이 그런 일로 허비하는 100만 일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의원들의 모임이다.

그리고 그녀의 ‘상식’은 코로나19 봉쇄를 “공산주의식 통제”로 묘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국 보수당 출신 총리 리시 수낵 [사진 = 연합뉴스]
영국 보수당 출신 총리 리시 수낵 [사진 = 연합뉴스]

브레이크 없는 질주

타블로이드 매체 <The Sun>에 따르면, “‘wokery’를 국가적 재앙으로 취급하고 이에 맞서는” 맥베이의 임무는 분열적인 수사를 동원해 유권자를 파고드는 트럼프식 전략과 흡사하다.

이는 국민의 삶을 정치에 이용하고, 값싼 주택 공급 부족, 치솟는 에너지 요금, 최악의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는 삶의 질과 빈곤 문제 같은 훨씬 더 시급한 현안에서 관심을 돌리도록 하는 유해한 전술이다. 이는 또한 UN이 규정한 국제법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 UN은 저소득층을 돕지 않는 정부를 범죄로 규정한 바가 있다.

상식(common sense)과 각성(wokeness)은 근본적으로 인간을 평등하게 대하는 것과 관련된 문제이다.

멕베이와 같은 사람 밑에서는 민감한 주제가 단순화하면서 분열의 씨앗이 자라고 사회적 무관심이 번질 것이다. 이런 류의 지도자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문화 전쟁(이념 전쟁)’을 얼마든지 벌일 준비가 되어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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