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추기경에게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바티칸 ‘세기의 재판’
[월드 프리즘] 추기경에게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한 바티칸 ‘세기의 재판’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12.19 05:45
  • 수정 2023.12.19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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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령 등 혐의를 받고 추기경 자리에서 사임한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 전 추기경 [사진 = 연합뉴스]
횡령 등 혐의를 받고 추기경 자리에서 사임한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 전 추기경 [사진 = 연합뉴스]

바티칸 자금을 운용하던 성직자가 런던의 고급 부동산에 수백만 파운드를 투자했다가 실패한다. 그리고 한때 최고 실권을 휘두르던 바티칸 추기경이 교황과의 전화 통화를 녹음한다. 그리고 보안 컨설턴트로 일하는 한 여성은 가톨릭 수녀 석방에 쓰라는 바티칸의 막대한 자금을 명품 브랜드 등 구입에 낭비했다가 기소된다.

위의 이야기들은 로마가톨릭 역사 스릴러물의 줄거리가 아니라 바티칸 자금 유용을 둘러싼 재판 스캔들이다.

바티칸을 둘러싼 ‘세기의 재판’이라고도 불리는 이 재판은 바티칸 교황청에 수백만 달러의 손실을 초래한 일련의 자금 유용과 관련이 있다.

CNN방송은 18일(현지 시각) 막대한 바티칸 자금 유용 재판 소식과 바티칸에 누적된 방만한 재정을 혁파하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움직임에 대해 보도했다.

바티칸 시국 형사 법원에서 2년 반 동안 진행되고 있는 이 재판의 피고인은 10명인데, 이 중에는 사상 최초로 추기경이 포함되어 있다.

이 추기경은 교황청 최고 참모에 해당하는 교황청 국무원의 ‘소스티투토(sostituto) 직을 맡으며 한때 바티칸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휘두르던 조반니 안젤로 베치우(75)이다.

사건이 벌어졌을 당시 사르디니아 출신의 베치우 추기경은 교황을 아무 때나 접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었고, 미래의 교황으로 알려지기까지 했었다.

베치우는 현재 여러 건의 횡령 혐의로 5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은 상태이다. 그는 바티칸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최초의 추기경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한 혐의를 거듭 부인하며, 변호사를 통해 항소 의사를 밝힌 상태이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한 때 측근이었던 베치우의 콘클라베(conclave) 자격을 박탈하고 성인을 시성할 수 있는 지위에서 해임했다.

이 재판은 바티칸의 악명 높은 재정 불투명성에 책임을 지우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오랜 노력의 시금석으로 평가받고 있다. 교황은 재임 기간 동안 바티칸 은행을 쇄신하고, 금융 규제 시스템을 구축하며, 불법과 이해충돌을 혁파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런던 투자

재판의 핵심은 바티칸이 원래 해로즈 백화점의 자동차 쇼룸으로 건설된 런던 남서부 첼시 인근의 광대한 부동산을 구입한 데부터 시작된다. 교황청은 이 거래에 수년에 걸쳐 약 4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결국 자산을 매각한 후 1억 5천만 달러의 손실을 입었다.

이와 관련해서 바티칸 검찰은 일련의 중개업자들만 막대한 금액을 벌어들이고, 거래에 책임있는 사람들은 태만했던 반면, 교황청은 수백만 달러를 사기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처음에 교황청은 런던에 본사를 둔, 이탈리아 금융가인 라파엘레 민치오네가 운영하는 펀드에 2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는 이 펀드의 지분 45%를 소유하고 있었다. 초기 투자는 베치우 추기경이 교황청 최고 참모직에 있을 때 승인됐다. 그리고 건물의 나머지 절반은 민치오네 소유였다.

계획은 건물을 아파트로 바꾸는 것이었지만, 교황청은 이를 탐탁치 않게 여겼고, 결과적으로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고, 교황청 검찰은 주장한다.

검찰은 해당 건물이 민치오네에 의해 과대평가되었으며 교황청은 이 건물에 걸려있는 9,600만 달러의 모기지에 대해서도 통보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후 베치우의 후계자인 에드카 페나 파라는 현금을 주고 이 건물을 구입하는 과정에서 민치오네에게 막대한 수수료를 지불했다.

그런 다음 또 다른 재력가인 지안루이지 토르지가 이 부동산 구입에 개입하고 전권을 쥐게 되면서 바티칸은 ‘빈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민치오네와 토르지는 이 사건의 피고인 10명 중에 포함되어 있다.

토르지는 강탈, 자금세탁, 사기, 횡령 혐의로 6년 형을 선고받았고, 민치오네는 횡령, 직권남용, 사기, 자금세탁 혐의로 기소돼 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자신에 대한 혐의를 부인했다. 민치오네는 또한 런던 법원에서 교황청을 상대로 법적 소송에 착수했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 연합뉴스]

추기경의 여인

베치우 추기경은 런던 부동산에 바티칸 자금을 투입한 초기 투자에 책임을 맡았다. 그는 또한 그의 형이 운영하는 사르디니아 자선단체를 통해 136,000달러 이상의 바티칸 자금을 횡령하고, 아프리카에서 납치된 수녀를 구출하기 위해 보안 컨설턴트인 세셀리아 마로냐에게 618,000달러를 건네준 혐의로 기소되었다.

바티칸 검찰은 마로냐가 이 돈을 프라다, 구찌, 에르메스와 같은 명품 구입에 54,000달러 이상을 쓰는 등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40대의 마로냐는 베치우 추기경과의 연관 때문에 ‘추기경의 여인’으로 불린다. 재판 기간 동안 마로냐가 추기경의 아파트 내부에서 촬영한 사진이 공개됐는데, 그녀는 소셜미디어에서 이 아파트를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나 ‘나의 천국’이라는 캡션과 함께 공유했다.

바티칸 검찰이 베치우 추기경에게 마로냐에게 넘어간 돈이 원래 목적대로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하자 그는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베치우와 마로냐 모두 부적절한 관계를 부인했다.

마로냐는 베치우가 건네준 수십만 유로를 횡령한 혐의로 3년 9개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마로냐는 범죄 사실을 부인하면서 수녀의 석방 교섭에 바티칸 자금을 정확하게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바티칸 외교관과 선교사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와 중동의 관계 네트워크”를 개척하는 데 그 돈을 썼다고 말했다.

한편, 재판 중에 베치우가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납치된 수녀의 석방을 위해 자금 사용을 승인해달라고 요청하는 통화가 공개되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법원 기록에 따르면 교황은 이 대화 내용을 어렴풋이 기억하지만, 베치우에게 원하는 내용을 서면으로 제출하라고 반복해서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바티칸 재정 개혁을 위한 노력

프란치스코 교황이 바티칸 재정 개혁에 나서면서 금융 비전문가인 성직자들이 대규모 재정 포트폴리오를 맡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2019년에 교황청 성무국이 관리한 자산은 약 10억 달러로 추산되었다.

교황청은 로마, 파리, 런던 등의 대도시에 부동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1919년까지 교황 통치 하에 있던 이탈리아 일부 영토와 교황령 상실에 대해 이탈리아 정부가 지급한 보상금으로 구입한 부동산들이다. 1929년 체결된 라테란 조약(Lateran Treaty)에 따라 이탈리아 정부는 바티칸 시국을 주권 기관으로 인정했다.

바티칸 재산의 대부분은 로마에 있으며 교회 직원 거주에 사용된다. 바티칸 자금은 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기부금과 시스티나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의 관광 수익을 통해 이루어진다.

프란치스코 교황 재임 기간 동안 바티칸은 연간 재무제표를 공표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바티칸 재정에 최근 손실이 드러나자 운영의 책임성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를 중앙에서 관리하려고 했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런던 부동산 투자 거래도 2019년 바티칸 내부 감시 시스템에 의해 의심스러운 징후가 드러나면서 촉발되었다.

바티칸 재정은 오랫동안 스캔들의 근원이었으며, 이번 재판은 1982년 런던 블랙프라이어스 다리 아래에서 목 매달려 사망한, ‘하느님의 은행가(God’s banker)’로 알려진 로베르토 칼비의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는 파산한 ‘방코 암브로시아노’ 회장을 지냈으며 파산 당시 바티칸 은행은 ‘방코 암브로시아노’의 주요 주주였다.

2019년에 교황은 런던 투자 거래를 ‘스캔들’이라고 묘사했지만, 이번 주에는 바티칸 감사관에게 “부패의 유혹은 너무 위험하므로 우리는 극도로 경계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티칸의 재정 개혁에 많은 조치를 취했다. 이번 재판은 아직 그에게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음을 보여준다. 교황은 “악마는 주머니를 통해 들어온다”는 경고를 자주 한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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