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다”...우크라이나 최전선의 핀란드 자원병들
[우크라 줌인]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 선택이다”...우크라이나 최전선의 핀란드 자원병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2.12 07:03
  • 수정 2024.02.1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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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차량이 파괴됐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러시아의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차량이 파괴됐다. [사진 = 연합뉴스]

호빗과 마리아치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와 싸우기 위해 우크라이나군에 자원입대한 핀란드 출신 지원병이다.

<유로뉴스>는 11일(현지 시각) 러시아와 넓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로서 역사적으로 러시아와 악연이 깊은 핀란드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입대한 지원병들에 대해 보도했다. 다음은 이 기사의 전문이다.

2022년 3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마리우폴을 포위하고 아조프해의 군함에서 포격을 가했다. 러시아 군대는 가까운 거리에서 수도 키이우를 계속 위협하고 있었고, 부차에서는 이번 전쟁 들어 최초로 대량 학살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전쟁을 피부로 느끼면서 호빗은 우크라이나에 도착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새로웠고 매우 긴장했습니다. 그리고 한두 달 후에는 우크라이나가 사라질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보안상의 이유로 콜사인 ‘호빗(Hobbit)’으로 불리는 그는 러시아 침략자들에 맞서 무기를 든 수백 명의 외국 전사들 중 약 100명 정도로 추정되는 핀란드 지원병 중 한 명이다. 

대부분의 핀란드인들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은 1939년 11월 구소련의 침공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스탈린 군대는 핀란드-러시아 국경 초소에 먼저 포격을 가하고 이를 핀란드군의 소행이라는 역공작을 펴며 지상군을 동원해 침략해 들어왔다.

105일간의 짧은 겨울 전쟁 끝에 핀란드는 소련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지만, 결국 영토 일부를 내주고 배상금까지 지불해야 했다. 그뿐만 아니라 합병된 카렐리야에서 핀란드 본토로 강제 이주한 수만 명의 국내 실향민까지 낳게 한 당시 결과는 많은 핀란드인들에게 지금의 우크라이나 상황을 소름끼칠 정도로 친숙하게 만들고 있다.  

“정확한 내막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전쟁을 지켜보던 중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호빗은 <유로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우크라이나의 젊은이들이 별다른 훈련도 받지 못한 채 전쟁에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왜 집에 머물면서 편하게 일상을 즐기고 있는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의 핀란드 남성과 마찬가지로 호빗도 군 복무를 마쳤지만, 그는 너무 엄격한 군 생활이 적성에 맞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가 핀란드군에서 마친 9개월 간의 기본 훈련 기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경력인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물론 어떤 훈련도 전쟁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핀란드군은 항상 러시아와의 전투를 가상하고 훈련을 해왔기 때문에 유리한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호빗의 가족은 그의 우크라이나 전쟁 참여를 반대했다. 

“가족은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지 않으면 스스로에게 실망할 것이라면서 그들을 설득했습니다. 이것은 내 인생입니다. 내가 죽는다면 그것은 내 선택입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 입대한 핀란드 출신 지원병 마리우치 [사진 = 유로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 자원 입대한 핀란드 출신 지원병 마리우치 [사진 = 유로뉴스]

2022년 9월

러시아가 도네츠크, 헤르손, 루한스크, 자포리자를 불법적으로 합병하면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위해 30만 명의 추가 징집 명령을 내렸다. 이는 상황이 크렘린이 계획한 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였으며, 징집을 피하려는 러시아 남성들의 탈출 행렬이 이어졌다.

호빗은 쿠피안스크 근처의 작은 마을 페트로파블리브카에 최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는 다른 핀란드 자원 입대병들과 함께 화력 지원 임무를 맡았다. 

“저는 러시아 전차에서 중기관총을 훔쳤습니다. 제 임무는 마을을 통과하는 부대를 엄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호빗은 동료와 함께, 전진하는 우크라이나 군대가 적에게 노출되는 교차로 근처로 이동했다. 그는 그곳에서 몇백 미터 앞쪽에 러시아 보병 전투 차량인 BMP-2M을 발견했다. 

“나는 BMP를 저지하려면 중요 부위를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탄환이 통과할 수 있는 측면을 공략해 BMP를 폭파했고, 그 과정에서 탄약 벨트 세 개를 비웠습니다.”

탄환이 난무할 때 호빗은 세 번째 탄약 벨트를 소비하는 중이었다. 그는 표적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러시아 저격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한 발의 총알이 그의 종아리 아래쪽에 명중하여 발 깊숙이 박혀 뼈가 부서지고 힘줄이 절단되었다. 

당일 찍힌 바디캠 영상은 그날의 전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며, 호빗이 공격받는 순간을 포착했다. 그는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핀란드어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의 동료가 구급차를 요청하고, 곧 이어 다른 외국인 병사가 SUV를 타고 나타났다. 호빗은 발에 붕대를 감고 호송차에 실렸다. 

우크라이나 병원에서 한 달을 보낸 후 그는 핀란드로 이송되어, 부상 이후 처음으로 가족과 면회를 했다. 

“가족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말은 거의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습니다.” 

호빗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한 최초의 핀란드 자원병 중 한 명이라면 마리아치(22)는 가장 최근의 자원병 중 한 명이다. 그는 우크라이나에 입국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콜사인 ‘마리아치(Mariachi)’는 그가 자신의 뿌리인 남미 출신임을 자랑스러워한다는 표식이었다.

해외 유학 중이던 마리우치는 캠퍼스에서 우크라이나를 돕는 행사를 펼치는 것으로는 양에 차지 않았다. 그는 더 적극적으로 돕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아무것도 집중할 수가 없었어요. 수업 중에도 머릿속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선 상황을 검색했습니다. 작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참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와 이 문제를 상의했지만 반대에 부닥쳤고, 친구들도 나를 막아섰습니다. 친지들이 나를 위해 그러는 것은 충분히 이해했지만, 그들의 설득에 넘어갔다면 오늘 나는 여기에 있지 않았겠지요.”

마리우치는 정찰 소대와 함께 훈련을 받고 있고 있는 키이우 외곽의 기지에서 이렇게 들려주었다. 

무작정 우크라이나에 들어와 외국인 여단에 배치되거나 독립적으로 작전을 펼첬던 초기 외국인 자원병들과 달리 마리우치는 우크라이나 부대에 배치되었다.

“우리 부대 지휘관은 훌륭한 외국군 자원을 환영하며 특히 필란드 출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숙련된 외국 자원병들은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BMP-3 보병 전투차에 탑승한 우크라이나군 장병들 [사진 = 연합뉴스]
BMP-3 보병 전투차에 탑승한 우크라이나군 장병들 [사진 = 연합뉴스]

2024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이 진지를 고수하면서 전쟁은 대체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전쟁은 점점 더 우크라이나 국경 너머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러시아 정유소가 우크라이나가 날린 드론의 표적이 되기도 하지만, 서방은 최전선에 절실히 필요한 추가 군사 지원을 망설이고 있다. 

“지난 몇 달 동안 확실히 지원이 줄어들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독일은 타우러스 순항 미사일 지원을 머뭇거리고 있고, 유럽은 필요한 만큼의 지원을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호빗은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우리가 러시아인들보다 수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그러다가 하르키우 공세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러시아군과 어깨를 겨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호빗은 죽음을 무릅쓰며 우크라이나 전쟁에 얼마나 더 오래 참여할 생각일까?

“나는 영원히 이곳에 있지는 않겠지만, 승리할 때까지는 분명히 자리를 지킬 겁니다.”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생각할 때가 아닙니다. 이후의 삶은 그때 가서 생각하겠습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우리가 승리하는 날의 파티만 생각할 겁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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