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포커스] 과거 역사를 망각한 채 약소국들의 수호천사처럼 행동하는 러시아
[월드 포커스] 과거 역사를 망각한 채 약소국들의 수호천사처럼 행동하는 러시아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2.24 06:14
  • 수정 2024.02.24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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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최근의 국제 정세와 관련해 <유로뉴스>는 23일(현지 시각), 러시아가 식민지 종주국이던 자신들의 지난날 역사를 잊어버리고, 마치 약소국들의 수호천사라도 되는 양 행세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칼럼을 실었다. 칼럼의 필자 막심 트루돌류보프는 ‘케넌연구소(Kennan Institute)’의 선임연구원이자 인터넷 매체 ‘Meduza’의 편집장이다. 그는 또 현재 ‘비엔나 인간과학연구소(IWM)’의 객원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필자는 칼럼에서, 러시아는 항상 유럽 최대의 식민 종주국 중 하나였음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러시아 지도자들은 러시아의 대외 전략 중심에 늘 자리잡고 있는 주제인, ‘지정학적 기회주의(geopolitical opportunism)’라는 역사적 게임에 천착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유럽 ​​동부 변방에서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홍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란의 대리 세력과 서방 군대 사이의 간헐적인 충돌은 필연적으로 이런 충돌들이 누구의 승리로 귀결될 것인가, 만일 그렇다면 누가 승자의 자리에 등극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서방과 우크라이나,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이번 전쟁의 승리에 대한 기대는 20세기 역사를 미래를 위한 주요 서사(敍事)에 연결하려는, 즉 전쟁과 갈등 해결의 명분에 동원되는 자신들의 흔한 역사관과 연결되어 있다.

그 서사(敍事)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인 1945년과 공산권 몰락인 1989~1990년에 악의 세력들을 물리치던 이야기로 요약된다.

악의 세력과의 싸움

1945년 독일은 철저하게 패배했다. 미국, 소련, 중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가 포함된 반히틀러 연합의 무조건적인 승리에 이은 마샬 플랜(Marshall Plan) 같은 드라이브와 새로운 전쟁 방지 노력은 전후 서방에서뿐만 아니라 구소련에서도 국가 운영의 근간을 이루는 초석이 되었다.

그 결과 나치 범죄의 심각성을 경계하고자 만장일치로 탄생한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공통 기반을 찾을 수 있는 기반이 형성되었다. 이는 나치즘 희생자들인 유대인들의 안전한 고향인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의 창설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40년 후, 냉전으로 분열되었던 세계는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다.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등의 동구권 공산주의 정권들의 몰락을 촉발한 ‘벨벳혁명(velvet revolutions)’의 물결과 함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서구의 승리를 알렸던 것이다. 

이후 많은 이전 공산권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했다. 이때에는 러시아는 패배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관은 서방에 속하지 않은 많은 나라들의 문화와 그들이 경험한 주요 사건들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 역사의 식민 속국들은 고유한 영웅과 악당이 등장하는 독특한 20세기를 경험했다.

서구의 서사와 견주어, 비서구권의 20세기는 민족의식의 출현, 서구 식민 세력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한 투쟁, 그들만의 정치체제의 확립으로 특징지어진다.

본질적으로, 이들의 서사는 나치의 패배라는 권선징악이나 동유럽 공산주의의 몰락과는 양태가 다른, 훨씬 다양한 이야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비서구권 국가들의 부활

전후 수십 년 과정이 서방에게는 전후 회복과 성장, 공산주의에 대한 승리의 시기인 반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에게는 독립을 위한 투쟁, 내전, 정치적 갈등의 시대였다. 

그런데 서구의 20세기 역사에서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섰던 국가들이 동시기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종종 ‘잘못된 일’을 저질렀다.

1945년 연합국 승리의 일익을 담당했던 영국은 2차대전이 끝나자 ‘말레이 민족해방군(Malayan National Liberation Army)’의 저항을 짓밟았다. 또, 영국은 1950년대에는 케냐의 ‘마우마우 봉기(Mau-Mau uprising)’를 잔혹하게 진압했다.

뿐만 아니라 1947년 영국의 성급한 인도 분할로 대규모 난민이 발생하고, 엄청난 폭력이 이어졌다. 

그리고 프랑스는 1946년부터 1954년까지 군사적 수단을 동원해 인도차이나반도의 식민지 속국이었던 베트남의 통제권을 포기하지 않으려 하다가, 1975년까지 지속된 베트남 전쟁을 낳았다. 여기에 ‘알제리 독립전쟁(1954~1962)’에서도 프랑스군의 폭력과 탄압이 목격되었다.

또, 194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 혁명’에서 네덜란드 식민 지배 세력은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인정하기 전에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자들과 폭력적인 충돌을 빚었다.

중국은 엄밀히 말하면 식민지는 아니었지만, 영국과 러시아에게 강제로 무역과 영토를 할애하는 치욕(조계)을 맛보아야 했다. 

예를 들어, 1860년에 체결된 ‘베이징 조약(Convention of Peking )’은 중국이 현재 극동으로 알려진 지역의 일부, 특히 현대의 프리모르스키 지방과 남부 하바롭스크 지방을 러시아에 넘겨주도록 강요했다.

요컨대 인도, 중국, 중동 등의 비서구권 사회는 서구 국가와는 확연히 다른 독특한 굴욕과 승리의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들의 경험에는 서구 열강과의 대결이나 승리가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과거를 되돌아보면, 이러한 순간들에 소련은 그들의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이른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라고 불리는 약자 편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 다른 역사적 경험과 민족의식의 충돌은 언젠가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지난 19일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한 러시아 군인이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9일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한 러시아 군인이 지역을 순찰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다양한 역사관

다양한 역사적 배경과 민족의식의 충돌은 중동 지역의 갈등과 전쟁을 통해 반복적으로 표출되었다.

이스라엘 국가의 창설은 반히틀러 연합이 아직 붕괴되지 않았을 때 처음으로 등장한 광범위한 국제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미국과 소련 모두 새로운 이스라엘 국가 설립에 찬성표를 던졌다.

서방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2차대전 전과 전쟁 기간 동안 살길을 찾는 유대인들을 외면한 부끄러움으로부터 벗어날 구실을 찾으려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출현은 서구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칭찬받을 사건 중 하나였다. 거의 2,000년 동안 국가 없이 떠돌던 유대인들의 근대 몇 세대들의 노력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러나 비서구권에서는 이 사건이 다른 시각으로 투영되었다. 20세기 서구를 형성한 미국, 영국, 소련은 오랫동안 중동 정치에 관여해 왔다.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등의 관점에서 볼 때, 서방의 정책은 주로 그들(소련도 포함한 서방)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제국이 붕괴되자 서방은 이 지역의 국경과 자원을 자의적으로 재분배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스라엘이 건국되고 새롭게 그어진 국경을 이 지역 주민들은 일부 외부인이 자신들의 영토를 식민지로 다시 획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이 모든 과정에서 러시아는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억압받는 사람들의 해방자나 지지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러시아는 서방 세력의 한 축을 분명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모스크바의 자의적 게임은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사실은 러시아가 특히 비서구적 세계관에서 볼 때 유럽 최대의 식민 세력 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 지도자들은 국가의 대전략에서 반복되는 주제였던 ‘지정학적 기회주의(geopolitical opportunism)’라는 역사적 게임에 천착하고 있다. 

처음에는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지지했지만, 나중에는 이집트, 시리아 등의 아랍 국가의 후원자로서, 준식민지 종주국 지도자 역할을 했던 스탈린의 뒤를 이어 블라디미르 푸틴 행정부는 스스로 반서방 세력으로 자청하고 있다. 

그리고 더욱 역설적이게도, 크렘린 당국은 반서구 및 반식민지 정서를 특징으로 하는 중국, 이란과 동맹을 맺으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식민지 침략 전쟁을 벌이고 있다.

모스크바는 서구 식민 지배 권력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비서구 국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능숙하게 투사하여 중동 및 그 외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긍정적인 정서”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서구 세계의 승리관은 20세기 서사, 즉 권선징악이라는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 

그러나 과거 전체주의 세력이었던 러시아에게는 그러한 세계관이 없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서방의 역사적 서사에서 승자이자 패자였기 때문이다. 

현대 국제 정세에는 선과 악으로 미리 정의된 역할에 맞는 최종 승리가 보장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세계의 윤곽은 아직 파악하기 어렵고,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는 지금 이 순간을 활용하고 싶어한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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