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교황, 우크라이나에 백기 협상 논란 확산...가디언 "러시아에게 무한 전쟁의 권한을 주는 것”
[우크라 전쟁] 교황, 우크라이나에 백기 협상 논란 확산...가디언 "러시아에게 무한 전쟁의 권한을 주는 것”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4.03.15 06:32
  • 수정 2024.03.15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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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13일(현지 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해 5월 13일(현지 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바티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접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항복을 의미하는 ‘백기’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우크라이나전 종전 협상을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한 이후 우크라이나가 반발하는 등 파문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간 <가디언>은 14일 칼럼을 게재하고, 우크라이나에 항복을 권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긴 교황은 러시아에게 무한 전쟁의 권한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칼럼은 이와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서구적 스탠스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데, 그의 새로운 워딩은 평화가 아니라 위험의 고조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칼럼의 필자 나탈리 토치(Nathalie Tocci)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이자 <가디언>의 칼럼니스트이다. 다음은 이 칼럼의 전문이다.

우크라이나가 “백기(white flag)”를 들고 러시아와 합의(즉 항복)에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주장은 키이우 당국과 동맹들에게 깊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에 대해 우크라이나 외무장관 드미트로 쿨레바는 키이우가 게양할 유일한 깃발은 우크라이나 국기 뿐이라고 격하게 반응했다.

어떤 사람들은 교황의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노골적으로 친러시아적 스탠스를 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며, 러시아에 납치된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석방과 관련한 바티칸의 중재도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했다.

따라서 교황의 신념은 이미 알려져 있고, 이번 전쟁에서 인도주의적 결과를 이끌어내려는 그의 실질적인 노력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발언 또한 별 의미가 없다는 평가이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보면 교황의 말은 이번 전쟁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 크다. 

첫째, 교황의 발언들은 미국의 트럼프 공화당부터 유럽의 민족주의 우파와 포퓰리즘 좌파, 그리고 이탈리아 같은 나라에서는 거의 주류가 될 정도로 서방의 일부에 깊숙이 퍼져 있는 친크렘린 노선에 도덕적 보호막을 제공한다.

이번 전쟁은 오직 우크라이나의 항복으로만 끝날 수 있다는 주장은 바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년 넘게 설파해온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바티칸과 같은 권위 있는 종교적 실체가 푸틴의 노선에 동조한다는 사실은 크렘린과 유럽 및 그 외 지역의 치어리더들에게 놀라운 정치적 무기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교황의 발언은 남반구(global south)에 널리 퍼져 있는 견해를 반영하기 때문에 중요하다. 사실 교황이 내세우는 것은 친러시아적 정서라기보다는 뿌리 깊은 반서구주의에 가깝다.

결과적으로 이런 세계관은 나토의 잘못과 서구 군산복합체의 부당함을 강조하면서 이번 전쟁에 대한 그의 잘못된 신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방이 남반구 국가들을 상대로 설득력 있게 그들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것은 서방 스스로의 문제이다.

이는 특히 오늘날의 국제 관계에서 남반구의 견해와 목소리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면 더욱 안타까운 사실이다. 이런 세계관은 미국과 유럽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중단시키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더욱 악화하고 있다.

교황의 말이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그가 왜 틀렸는지를 지적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필자는 교황이 과거에도 틀렸고, 현재도 그러하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미래에도 틀릴 것이라고 믿는다. 교황은 때로는 인정하면서 또 때로는 눈을 감아버리면서 이번 전쟁의 원인과 관련된 과거 자신의 근본적인 신념을 배신했다.

침공이 시작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따라서 어떤 사람들은 교황의 항복 권고는 순수한 정치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발언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즉, 패배를 견디기보다는 지금 굴복하는 것이 낫다는 현실적 판단을 근거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교황의 이번 발언이 순수하게 현실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그는 어째서 전쟁 초기 러시아가 어려움을 겪을 때 러시아에게는 항복을 권하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우크라이나를 정복하려는 첫 번째 시도가 실패하고 우크라이나가 침공 첫 몇 주 동안 잃었던 영토의 약 절반을 탈환했을 때 왜 그는 러시아에게 항복하고 철수할 것을 촉구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교황이 러시아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우크라이나에게 백기를 권고할 때, 실제로 그의 워딩은 러시아를 자극한(예를 들어 나토 가입을 열망함으로써) 우크라이나와 서방을 비뚤어지게 비난하는 것이 된다. 그는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게 만든 크렘린의 제국주의적 야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2015년 6월 10일 교황청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2015년 6월 10일 교황청에서 만난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사진 = 연합뉴스]

그러나 과거는 과거이고, 전쟁의 원인에 대한 강한 신념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서방에 모든 책임이 있다고 믿는 교황과 같은 사람들은 그 반대 증거를 들이대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황의 실수는 전쟁의 원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처한 현재의 역동성, 특히 우크라이나가 처한 최전선의 상황은 교황이 비난하는 서방의 군산복합 시스템이 역설적이게도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서구의 방위산업이 이번 전쟁을 부추긴다기보다 우크라이나의 최근 어려움은 인력 부족, 특히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낼 무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방위산업은 (러시아와 달리) 전시 체제에 돌입되어 있지 않고 있으며, 미국 의회는 여전히 국내 정치적 논쟁에 발목이 잡혀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 600억 달러 패키지를 인질로 잡고 있다.

교황이 암시한 것처럼 이번 전쟁의 결과는 아무것도 예단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가 패한다면 이는 포병 능력이 지난 여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서방이 머뭇거리는 동안 러시아는 군사력을 강화했다. 북한은 모스크바에 약 150만 발의 포탄을 보내기도 했다. 반면에 우크라이나는 최전선을 방어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교황이 소중히 여겨야 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서도 무기가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드론과 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민간인과 인프라를 보호할 수 있는 것은 서방의 방공 시스템 원조 덕분이다. 지난해 러시아가 흑해 곡물 주도권 싸움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흑해 함대의 약 3분의 1을 격파하면서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계속 남반구로 유입될 수 있도록 한 것도 서방의 군사 능력 덕분이다.

교황은 미래를 예단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항복만이 전쟁을 종식시킬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5개 지역과 그 외 오데사 등에 대한 통제권을 이양하는 거래를 통해 이루어질 공산이 크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도 반길 거래일 것이다. 물론 미래를 점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과거 행동을 미루어 추측해본다면 우크라이나의 백기 투항이 전쟁의 종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교황이 망각하기로 작정한 것은 2008년 조지아, 2014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부터 시작된 이 전쟁이 푸틴 대통령이 유럽에서 벌인 첫 번째 전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서방이 러시아의 위협에 눈을 감을 때마다 모스크바는 다시 돌아와서 더 큰 파이를 요구했다. 마찬가지로, 교황은, 유럽 정보기관이 주장하는,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이 몇 년 안에 나토(NATO)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요컨대, 서방이 교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우크라이나를 모른 체하는 비윤리적 시나리오를 따른다고 해도 그 결과가 유럽의 평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반대로 그 결과는 유럽을 이 부당한 전쟁의 훨씬 더 위험하고 치명적인 국면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높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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