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정유에 나선 SK이노베이션이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투자를 본격화하고 나섰다. 전기차 배터리를 ‘제2의 반도체’로 점찍고 선제적인 투자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 내에서 전략통으로 불리는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진두지휘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4일 중국 배터리사업 합작 파트너인 베이징자동차ㆍ베이징전공과 함께 장쑤성 창저우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착공했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이 베이징자동차, 베이징전공과 함께 설립한 전기차 배터리 합작법인 ‘BESK’는 2020년까지 약 50억위안(약 8100억원)을 건설비 및 운영비로 투자할 계획이다. 외국 기업이 중국 회사와 손잡고 배터리 생산 공장을 짓는 건 SK이노베이션이 처음이다.
창저우 공장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선점을 노리는 SK이노베이션의 핵심 카드다.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경쟁사와의 간극을 좀처럼 줄이지 못했다. LG화학과 삼성SDI가 국외에 전기차 배터리 공장들을 세우고 일찌감치 물량 확대를 꾀한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생산 설비가 국내에 한정된 탓이었다.
설비 부족은 곧 경쟁사 대비 턱없이 부족한 출하량을 의미한다. LG화학과 삼성SDI의 올해 상반기 기준 배터리 출하량은 각각 2707MWh, 1302.7MWh에 달하지만 SK이노베이션은 246.7MWh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전년 대비 세 자릿수 성장률(124.7%)을 기록한 데 따른 결과물이다.
하지만 창저우시 공장에서 계획대로 2020년부터 양산이 이뤄지면 이곳에서만 7.5GWh 규모의 연간 생산량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전기차 약 25만대에 탑재 가능한 수준이다.
충남 서산 공장도 생산 규모를 1.1GWh에서 4.7GWh까지 늘리기 위해 증설 중이다. 여기에 2022년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인 헝가리 공장이 본격 가동하면 SK이노베이션의 연간 배터리 생산량은 한층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은 2022년까지 전기차 배터리 생산량을 20GWh까지 늘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업계는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무엇보다 김준 총괄사장이 직접 나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챙긴다는 점을 주목하는 분위기다.
김 사장은 그룹에서 ‘전략 전문가’로 인정받던 인물이다. 국제유가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예측모델을 만드는 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 게 대표적이다. 김 사장의 시장 흐름을 읽는 능력은 궁극적으로 최태원 SK 회장의 중요 브레인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했다. 이런 김 사장이 취임 직후부터 핵심과제로 손꼽은 게 바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다. 김 사장의 이 같은 의중은 올해 초 신년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당시 김 사장은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글로벌 배터리 시장을 선점함으로써 리딩 플레이어로 빠르게 성장하겠다"고 언급했다. 지난 20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이천포럼’에서 “반도체 다음의 기회는 배터리밖에 없다”고 강조했던 사례에서도 전기차 배터리 사업에 대한 김 사장의 소신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김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SK이노베이션은 전기차 배터리의 원재료 확보에 한층 공격적인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 2월 호주 광산회사 오스트레일리안마인즈와 황산코발트와 황산니켈 등을 공급받는 계약을 맺었다. 배터리 제조의 필수 원료를 최장 13년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셈이다.
눈여겨볼 점은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 구상이 철저한 계산에 따라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창저우에 들어설 배터리 공장 역시 본격 가동이 2020년에 맞춰져 있다는 점이 이를 대변한다.
그간 중국 정부는 한국산 배터리가 장착된 전기차에 보조금 지급을 불허했다. 사실상 사드보복 차원에서 이뤄진 결정이다. 전기차 보조금이 차량 가격의 절반에 이르는 만큼 보조금을 받지 못하면 현지 판매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한국산 전기차 배터리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 보조금은 지난해 20%, 올해는 30%, 2019년 40% 삭감에 이어 2020년에 완전히 폐지된다.
업계 관계자는 “정유업계는 어쩔 수 없이 국제유가와 환율 등 외부요인에 크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며 “물론 배터리사업 역시 불확실성은 남아 있지만 중국내 보조금 철폐 때까지 버틸 여력만 된다면 충분히 반등을 노릴 만하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양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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