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에 대한 법원의 심판이 윗선으로 향할 수 있을까.
27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심에 서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됐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검찰과 피의자 측의 6시간여 공방전 끝에 ‘사법농단’ 핵심 피의자에 대한 첫 구속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임 전 차장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임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한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 및 역할, 현재까지 수집된 증거자료, 수사 경과 등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 우려가 있으므로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 요직인 기획조정실장과 행정처 차장을 맡으면서 사법 농단에서 중간 책임자로서 실무를 담당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임 전 차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관련 행정소송,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의료진 소송, 원세훈 전 국정원장 댓글 사건, 옛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KTX 승무원 해고 등 재판의 동향을 파악하고 개입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재판 개입 및 거래 외에도 법관 동향 파악, 자금 조성, 재판 대응 방안 문건 작성, 헌법재판소 내부 동향 파악, 법조 비리 사건 은폐, 수사기밀 유출 등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검찰은 지난 23일 그동안의 수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십여 개에 이르는 범죄사실을 담은 230여 쪽 분량의 구속영장 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고영한, 박병대, 차한성의 지시로 임 전 차장의 범행이 이뤄졌다고 보고 이들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임 전 차장 측은 재판 개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법리상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범죄성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구속의 필요성이 없다는 것이다. 불구속수사의 원칙,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는 점, 형사상 구속할만한 점이 없다는 부분도 강조했다.
임 전 차장은 "검찰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은 징계나 탄핵 대상이 되는 사법행정권의 일탈·남용에 해당할지 몰라도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형사 처벌할 대상은 아니다"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법원은 그동안 전·현직 판사들에 대한 영장을 거듭 기각해 ‘방탄판사단’이라는 비판을 들어왔다. 앞서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피의자로 입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주거지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법원의 영장기각으로 불발된 바 있다.
이번에 사법 농단의 핵심인물이 구속된 만큼 전 대법관들의 개입 여부가 밝혀져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윗선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을지 주목되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을 비롯한 수뇌부들이 공범으로 적시된 만큼 이들에 대한 본격 수사로 이어질 수 있을 전망이다.
[위키리크스한국=황양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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