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경제부흥 이끈 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원칙·책임 내세운 참 경영인" (종합)
韓 경제부흥 이끈 구자경 LG 명예회장 별세…"원칙·책임 내세운 참 경영인" (종합)
  • 정예린 기자
  • 승인 2019.12.14 15:24
  • 수정 2019.12.15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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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초기부터 부친 도와 생산현장 누비며 LG 성장에 중추적 역할
회장 재임 기간 매출 1150배↑…국내외 생산기지 마련하고 글로벌 기업과 합작 경영도
연구개발·인재양성에 아낌없는 지원…70여 개 연구소·인화원 설립
향년 94세로 14일 오전 10시경 별세…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용히
구자경 명예회장(오른쪽 세번째)이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호 컬러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제공]
구자경 명예회장(오른쪽 세번째)이 미국 현지생산법인(GSAI)에서 생산된 제1호 컬러TV 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제공]

구자경 LG 명예회장이 14일 오전 10시경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1925년생인 구 명예회장은 경영일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45년간 원칙 중심의 합리적 경영을 통해 LG를 비약적으로 성장시키고 명예롭게 은퇴한 '참 경영인'으로 평가 받는다.
 
1945년 진주사범대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중이던 故 구자경 명예회장은 LG그룹 창업 초기인 1950년 스물 다섯의 나이에 모기업인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 입사해 부친인 구인회 LG 창업주를 도와 함께 회사를 일궜다. 이후 구 창업회장의 첫째 아들인 구 명예회장은 장남 승계 원칙에 따라 1970년 45세의 나이에 그룹 2대 회장에 취임했다.

구 명예회장은 창업 초기부터 합류해 그룹 회장에 취임할 때까지 20년간 생산현장을 도맡으며 사업 확장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재계에서는 구 명예회장이 부친을 도와 창업과 성장을 함께 주도한 1.5세대 경영인이라 평가한다.

1970년 1월, 취임 당시의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1970년 1월, 취임 당시의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LG는 1950년부터 1960년대 말까지 이르는 동안 부산의 범일동공장, 부전동공장, 연지동공장, 온천동공장 등 시설을 확장하며 국내 최초의 플라스틱 생활용품, 비닐제품, 라디오, 선풍기, TV 등 새로운 화학과 전자 제품을 탄생시켰다.

초창기부터 이 모든 것을 함께하며 풍부한 현장경험을 쌓은 구자경 명예회장은 회장 취임 후 주력사업인 화학과 전자 부문에서 부품소재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다. 이를 통해 원천 기술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수직계열화를 이루며 지금과 같은 LG그룹의 모습을 갖출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구 명예회장이 25년 간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그룹의 매출은 260억원에서 30조원대로 약 1150배 성장했다. 임직원 수도 2만명에서 10만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가운데)이 럭키(현 LG화학) 청주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제공]
구 명예회장(가운데)이 럭키(현 LG화학) 청주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살펴보고 있다. [사진=LG 제공]

고인은 누구보다 기술과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연구개발과 인재 육성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기술입국(技術立國)'의 일념 아래 럭키중앙연구소, 안양연구단지, LG화학 종합기술원 등 70여 개의 연구소를 설립했다. 그 결과 금성사는 19인치 컬러TV, 공냉식 중앙집중 에어컨, 전자식 VCR, 프로젝션 TV, CD플레이어, 슬림형 냉장고 등 영상미디어와 생활가전 분야에서 수많은 제품을 국내 최초로 개발해 국내 최고의 가전 회사로서 입지를 굳혀 나갔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 연구개발을 강조하면서 자연스럽게 우수 인재 유치와 육성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였다.

80년대 말 대덕연구단지에 LG화학 종합기술연구원 설립을 추진할 당시 구 명예회장은 "연구소만은 잘 지어라. 그래야야 우수한 과학자가 오게 된다"고 말하며 프로젝트 출범 초기부터 우수 기술인재 유치를 위한 통 큰 투자를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연구 개발 조직에 끊임없이 동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일에도 늘 적극적이었다. 그는 연구소에 관한 한, 우수 인력을 어느 곳보다 우선해서 선발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임원의 정원도 제한하지 않았다. 또한 연구소를 지원하거나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한 예산이라면 우선적으로 승인해 주었다.

구 명예회장이 그룹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인재 양성기관인 ‘LG인화원’의 설립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인화원을 건립하면서 ‘기업의 백년대계를 다지는 가장 확실한 투자’라는 표현으로 그룹 차원의 관심과 협력을 당부키도 했다.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 제공]
1995년 2월,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 명예회장(왼쪽)이 고 구본무 회장에게 LG 깃발을 전달하는 모습. [사진=LG 제공]

구 명예회장은 1975년 금성사 구미 TV 생산공장을 비롯해 현재 LG의 국내 주요 생산거점이 되고 있는 전자 및 화학 분야의 수많은 공장 건설에도 박차를 가했다.

구미공장에 이어 1976년에는 냉장고, 공조기, 세탁기, 엘리베이터, 컴프레서 등의 생산시설이 포함된 국내 최대의 종합 전자기기 공장인 창원공장을 건립했다. 1983년부터 1986년 말까지는 미래 첨단기술시대에 대비해 컴퓨터, VCR 등을 생산하는 평택공장을 구축하며 오늘날 전자 산업 강국의 기틀을 닦았다.

화학분야에서는 1970년대 울산에 하이타이(가루비누), 화장비누, PVC(폴리염화비닐)파이프 등 8개의 공장을 잇달아 건설하면서부터 종합 화학회사로의 발돋움을 본격화했다.

또 전남 여천 석유화학단지에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PVC레진,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 납사(나프타) 분해공장 등을 구축해 정유(당시 호남정유)부터 석유화학 기초유분 및 합성수지까지 석유화학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늘어나는 제품 수요에 대응하고 전국적 제품 공급을 원활히 하기 위해 한반도의 중간지점인 충북 청주에 치약, 칫솔, 모노륨, 액체세제 등을 생산하는 생활용품 종합공장인 럭키 청주공장을 건설했다.

아울러 구 명예회장은 다른 기업들보다 한 발 앞서 우리나라 기업의 활동 지평을 세계로 확장시켜, 재임하는 동안에만 50여 개의 해외법인을 설립했다. 특히 1982년 미국 알라바마주(州)의 헌츠빌에 컬러TV 생산공장을 세웠다. 이 공장은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설립된 해외 생산기지였다.

해외투자에 그치지 않고 독일의 지멘스, 일본 히타치·후지전기·알프스전기, 미국 AT&T 등 세계 유수의 기업들과 전략적 제휴를 통한 합작 경영도 적극적으로 전개했다. 

1983년 2월, 금성사 창립25주년을 맞아 적극적인 고객서비스를 위해 마련한 서비스카 발대식에서 서비스카에 시승해 환하게 웃고 있는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1983년 2월, 금성사 창립25주년을 맞아 적극적인 고객서비스를 위해 마련한 서비스카 발대식에서 서비스카에 시승해 환하게 웃고 있는 구자경 명예회장. [사진=LG 제공]

구자경 명예회장은 기업의 외형적 성장뿐만 아니라 선진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천했다.

특히 1988년 21세기 글로벌 초우량기업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한 '21세기를 향한 경영구상'이라는 변혁방향을 발표하며 기업체질을 갖추기 위한 경영혁신을 단행했다.

이는 조직구조, 경영스타일, 기업문화에 이르기까지 그룹 전체에 선진화된 경영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을 담은 것이다. 특히 회장 1인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관행화 된 경영체제를 과감하게 벗어 던지고 '자율과 책임경영'을 절대절명의 원칙으로 내세웠다.

1990년 2월에는 ‘고객가치 경영’을 기업 활동의 핵심으로 삼은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 ‘인간존중의 경영’을 선포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재계의 큰 어른으로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LG를 이끈 경영인으로서 보여준 성과뿐만 아니라 재계에서는 처음으로 스스로 회장직을 후진에게 물려주어 대한민국 기업사에 성숙한 후계 승계의 모범 사례를 제시했다.

1995년 스스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인재양성을 위한 사회 공익활동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 경영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대신 분재, 난 가꾸기 등을 하며 자연을 벗삼아 간소한 여생을 보내며 지냈다.

유족으로는 장녀 구훤미씨, 차남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삼남 구본준 LG 고문, 차녀 구미정씨, 사남 구본식 LT그룹 회장 등이 있다. 장남인 구본무 LG 회장은 지난해 5월, 부인 하정임 여사는 지난 2008년 1월 별세했다.

한편, 구자경 명예회장의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들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치뤄진다. LG그룹 관계자는 "유족들이 온전히 고인을 추모할 수 있도록 별도의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사양한다"며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인 장례 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정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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