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비상] 홍성열 회장 "위기 속에 새로운 기회 있다"
[코로나 비상] 홍성열 회장 "위기 속에 새로운 기회 있다"
  • 박영근 기자
  • 승인 2020.04.13 10:18
  • 수정 2020.04.13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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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를 '도심형 아울렛' 아이디어로 역전시켜
전문가들,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도전경영 – 홍성열 회장 혁신경영 '일맥상통' 평가

코로나 위기에 주목받는 도심형 아울렛 '마리오아울렛'과 홍성열 회장. [마리오아울렛 제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세계 구석구석으로 확산되면서 수출을 주력으로 하는 한국 경제에 초비상이 걸렸다.

한국의 주요 수출시장인 아메리카, 유럽의 국가들이 잇따라 국경을 폐쇄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조하면서 글로벌 소비가 최악의 상황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글로벌 시장은 물론 국내 소비시장도 침체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

IMF 위기를 '도심형 아울렛'이라는 역발상으로 역전시켜 주목을 받아온 마리오아울렛 홍성열 회장은 "이번 코로나 위기가 한국 경제에 엄청난 고통으로 다가왔지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마리오아울렛의 관계자는 13일 "홍 회장은 사내 임직원들은 물론, 사업이 위기에 빠졌다고 하소연하는 중견기업,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위기는 새로운 기회'를 강조하면서 사기를 북돋우고 있다"고 말했다.

홍 회장은 1998년 대한민국이 IMF 위기 속에 빠지며 서울 서남부의 구로공단에서 매물이 쏟아져나오자 공단부지에 대규모 패션아울렛을 짓겠다는 역발상을 통해 주변 일대를 종합 의류쇼핑단지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마리오아울렛은 총 면적 13만2천m²의 도심형 아울렛이다. 마리오아울렛의 연간 매출은 3천억 원에 이른다.

홍 회장은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경영인으로 꼽힌다. 형제들로부터 200만원을 빌려 1980년 7월 편물기 4대를 구입, 서울 대방동에서 직원 4명을 데리고 니트사업을 시작한 그는 1985년 자체 패션브랜드 '까르뜨니트'를 출시했고 이를 바탕으로 1980년대 후반 국내 니트시장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하게 됐다.

홍 회장은 당시 일본 바이어들로부터 '슈퍼마리오'라고 불렸다. 홍 회장이 어떤 일이 있어도 주문 약속을 지키고 작은 문제가 생겨도 일본까지 직접 찾아가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준데 따른 닉네임이다.

1998년 대한민국에 IMF 위기가 닥쳐왔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랐다. 홍 회장의 기업 역시 IMF 때 무너질 뻔 했지만 겨우 수습했다.

IMF 충격으로 구로공단에서 망한 공장들이 매물로 쏟아져 나왔다.

그는 주변의 반대를 뿌리치고 모든 여력을 모아 마리오아울렛을 지었다. 2001년 7월 개장한 마리오아울렛은 홍 회장에게 인생 최대의 도박이었다.

홍 회장이 생각해 낸 것은 당시에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도심형 아울렛'이었다. 백화점처럼 도심에 위치하되 각종 브랜드의 이월상품을 저렴하게 파는 모델이었다.

수출제조업체로 가득 차 있던 구로공단에 아울렛이라는 '유통업'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조가 3차 산업 방향으로 재편되고 있고 동시에 좋은 의류 브랜드를 저렴하게 소비하는 트렌드가 도래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시 구로공단 주변은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공장지대였지만 마리오아울렛은 개장하자 마자 입소문을 타며 고속성장을 해나갔다. 마리오아울렛은 2001년 첫해 매출 500억원을 거둔데 이어 2004년에 매출 1200억원을 넘어섰다.

홍 회장은 이후 마리오아울렛을 2관, 3관으로 확장해나갔다. 홍 회장의 성공을 확인한 경쟁업체들이 주변에 모여들면서 지금 가산디지털단지역 일대는 서울에서 최대 규모의 아울렛단지로 탈바꿈했다.

라이프스타일몰로 변신하고 있는 마리오아울렛.
라이프스타일몰로 변신하고 있는 마리오아울렛. [패션 채널]

500여개 유명브랜드 입점…언론사 주최 '브랜드 대상' 잇따라 수상

지하철 1∙7호선 역세권의 가산 구로디지털단지(G밸리) 내 랜드마크인 마리오아울렛은 현재 500개 이상의 국내외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대규모 도심형 아울렛으로 자리매김했다.

쇼핑 뿐만 아니라 오락, 여가, 문화, 식사 등을 모두 아우르는 라이프스타일 체험 공간을 선보이고 있다. 3개의 쇼핑관으로 구성된 도심 속 복합문화 공간으로 1관은 『패션 전문관』, 2관은 『레저 전문관』, 3관은 『라이프스타일몰』로 특화되어 있다.

마리오아울렛의 평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이 지난달 개최한 '대한민국 명품 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마리오아울렛은 2년 연속 쇼핑몰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또 동아일보가 지난 2월 주최한 '2020 국가 소비자중심 브랜드 대상' 시상식에서 패션쇼핑몰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마리오아울렛의 온라인 쇼핑몰인 '마리오몰'은 한 달에 약 180만 명의 고객이 찾는 합리적 가격의 쇼핑 플랫폼으로 급부상했다.

온라인 마리오몰의 월 방문객은 전년에 비해 60% 신장했고, 회원수는 전년 대비 43%나 증가했다. 마리오몰은 고객 맞춤형 개인화 서비스를 통한 온사이트 마케팅으로 지난 해 한국유통대상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홍 회장은 가산동 일대를 패션 중심지에서 문화 중심지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품고 있다.

현재의 마리오 아울렛도 연 3,000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성공적인 사업 모델이지만 미래에는 생활, 레저 등 다양한 요소를 포괄하는 오프라인 쇼핑 수요가 늘어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마리오아울렛을 모든 라이프스타일을 구매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몰로 이끌어가고 있다. 마리오 아울렛에 이마트의 노브랜드를 입점시켜 신선식품을 판매하고 게임장, 어린이 테마파크, 서점을 개장하는 것도 홍 회장 전략의 일환이다. 홍 회장은 "유통업계도 지속적인 혁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 3월 동아일보 주최 2020 국가 소비자중심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마리오아울렛.
지난 3월 동아일보 주최 2020 국가 소비자중심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마리오아울렛.

정주영 현대 창업주 '도전경영' vs 홍성열 회장 '혁신경영'

홍성열 회장을 잘 아는 경제전문가, 언론인들은 "홍 회장은 경제 불모지에서 대한민국 산업을 일으킨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도전정신을 잇고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학벌이나 인맥보다는 오로지 근면함과 노력으로 성공한 '자수성가형 CEO'라는 점,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탁월한 경영자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서강대)에서 명예 박사학위를 받은 점도 주목된다.

위기 속에서도, 불모지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거듭한 아산 정주영의 도전정신은 대한민국 산업 역사에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1950년부터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된 가운데, 정주영은 불도저 같은, 포기하지 않는 도전정신으로 현대그룹의 기틀을 닦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전쟁 당시 정주영의 비범한 정신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줬던 프로젝트가 부산 유엔 참전용사 묘지였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유엔군은 1951년 4월 부산에 묘지를 마련했다. 하지만 황량한 흙밭에 묘지임을 알리는 하얀 십자가만 줄지어 있어 을씨년스럽게 그지없었다. 이에 미군은 '묘지를 녹색으로 덮을 수 있는 건설업체'를 공고했다.

그러나 한겨울이어서 선뜻 나서는 건설회사가 없었다.

미군은 현대건설에 묘지 단장 공사를 맡기며 일대를 파란 잔디로 덮어 달라는 특별 주문을 했다. 참배일까지 단 5일의 여유가 있을 뿐이었다.

엄동설한에 파란 잔디를 구할 수 없었던 정주영. 뜬 눈으로 밤을 새며 묘안을 찾던 정주영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로 겨울에 싹이 돋는 보리를 묘지에 심는 것이었다.

아산은 곧바로 낙동강변의 보리밭을 사들여 보리 포기를 옮겨 심었고, 이를 본 미군은 "원더풀! 원더풀!"을 연발했다. 이후 현대건설은 미군 공사들을 독점하면서 기틀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엔기념공원 전시실에 걸려 있는 1951년 설립 기념식(위)과 오늘날 공원의 모습. [연합뉴스]
유엔기념공원 전시실에 걸려 있는 1951년 설립 기념식(위)과 오늘날 공원의 모습. [연합뉴스]

아산은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할 법한 아이디어를 종종 내곤 했다. 충남 서산 간척사업 물막이 공사도 그 중 하나다. 1978년 시작된 간척사업은 총 연장 6400m의 방조제 공사에서 최후로 남아 있던 270m 길이의 물길이 난제로 떠올랐다. 초속 8m에 달하는 급류에 바위덩이나 철사로 엮은 돌망태기까지 쓸려 내려 가버렸기 때문이었다. 현대건설로서는 최대 난제에 맞닥뜨렸다.

고심을 거듭하던 아산은 고철로 쓰려고 정박시켜 놨던 폐유조선을 끌어다 가라앉혀 놓고 바위덩어리를 투하할 것을 지시했다. 공사는 완벽하게 성공했다.

여의도 면적의 33배에 달하는 땅이 확장됐다. 유조선을 이용한 물막이는 이후 '정주영 공법'이라고 불리며 미국의 유명 잡지 뉴스위크와 타임에까지 소개됐다.

[위키리크스한국= 박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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