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75주년에 되돌아보는 ‘특수 비밀작전 5’
제2차 세계대전 75주년에 되돌아보는 ‘특수 비밀작전 5’
  • 유진 기자
  • 승인 2020.06.23 09:44
  • 수정 2020.06.25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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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은 비밀 첩보전이 난무했던 전쟁이었다. [히스토리]
제2차 세계대전은 비밀 첩보전이 난무했던 전쟁이었다. [히스토리]

2020년, 세계 2차세계대전 종전 75주년을 맞아 승전국인 미국, 영국, 러시아 등에서는 크고 작은 승전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9월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략하면서 시작됐다. 독일을 주축으로 이탈리아, 일본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이 감행한 이 전쟁으로 인해 세계는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이 치유되기도 전에 다시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쟁이었다. 전쟁 중 사망자는 연합군과 패전국의 전투병력, 민간인을 합해 7,300만명에 달했고, 독일군에 의해 학살된 유태인은 600만명을 기록했다.

2차대전은 1945년 4월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한데 이어 8월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떨어뜨리면서 막을 내렸다.

이 전쟁에서는 역사상 진기한 작전들도 속출했다. 007영화를 방불케 하는 비밀 침투작전, 스파이들을 통한 후방 교란작전 등 대담하고도 특수작전들이 잇따랐다.

역사 전문 미디어인 <히스토리>는 ‘제 2차세계대전 특수 비밀작전 ’ 5가지를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1. 민스미트 작전(Mincemeat Operation)… ‘가짜정보’로 히틀러 교란

1943년 4월, 스페인 해안에서 영국 해병 대원의 시체가 물에 떠다니는 것이 발견되었다.

죽은 영국인의 손목에는 수상하게 보이는 케이스 가방이 묶여 있었고, 곧바로 독일인의 시선을 끌었다. 이들은 스페인 군대의 친나치 세력들과 공모해 그 가방을 뒤졌다.

그 케이스 가방 안에는 영국군 수뇌부가 튀니지의 한 영국 장교에게 앞으로 몇 주 안에 사르디니아와 그리스 침공을 감행하려 한다는 연합군의 비밀 계획을 설명하는 충격적인 편지를 발견했다.

죽은 사람의 문서는 한 작은 문제가 아니었다면 나치에게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는 기밀정보였다. 하지만 그 작은 문제는 바로 모두 가짜였다는 것이다.

1943년 스페인 해안에서 발견된 가짜 영국군 장교 신분증 [히스토리]
1943년 스페인 해안에서 발견된 가짜 영국군 장교 신분증 [히스토리]

영국의 첩보원들은 '민스민트 작전'(Mincemeat Operation)이라는 작전명으로, 버려진 시체를 윌리엄 마틴(William Martin)이라는 영국군 소령으로 위장했다.

첩보원들은 영국 해군 잠수함에서 시신의 서류 가방에 가짜 군사 계획을 채운 후, 나치를 속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스페인 해근에  몰래 시신을 버렸다. 결과는 완벽한 속임수였다.

독일인들은 연합군이 지중해를 공격할 장소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가로챘을 뿐만 아니라, 영국인들을 속이지 않고 그렇게 했다고 확신했다.

민스민트 작전(Mincemeat Operation)의 가짜 정보에 속아, 히틀러는 탱크 사단과 다른 부하들을 그리스로 돌려보냈다. 그 결과 1943년 7월 연합군이 16만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대신 침공했을 때 무방비로 당하고 말았다.

2. 아이헤 작전 (Operation Eiche)… 무솔리니를 구출하라

 ‘그란 사소 습격’(Gran Sasso Raid)으로도 알려진 1943년 아이체 작전은 독일 특공대원들이 펼친 베니토 무솔리니 구출작전이었다.

이 임무는 연합군의 이탈리아 침공이 있은 후, 파시스트 독재자가 권좌에서 쫓겨나고 이탈리아 국왕에게 체포되는 결과로 이어진데 따른 것이다.

무솔리니가 이탈리아를 전쟁 상태로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판단한 아돌프 히틀러는 와펜 나치 장교 오토 슈코르체니에게 평화 협정의 일환으로 연합군에 넘겨지기 전에 일 두체(무솔리니)를 석방하도록 협상하라고 지시했다.

몇 차례 잘못된 출발과 막다른 골목 끝에, 슈코르체니와 그의 팀은 무솔리니를 따라 아펜나 산맥의 외딴 산 정상에 위치한 스키 리조트인 호텔 캄포 임페라토레로 갔다.

땅에서 리조트에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슈코르체니는 위험한 공중 공격을 선택했다.

1943년 9월 12일, 그와 특공대 팀은 12개의 글라이더를 타고 산에서 조용히 내려가 호텔을 덮쳐 무방비한 이탈리아 경비병들을 쉽게 제압했다.

나치 특공대에 의해 구출된 무솔리니. [히스토리]
나치 특공대에 의해 구출된 무솔리니. [히스토리]

특공대원들은 초소의 무선 장비를 파괴한 후, 무솔리니를 발견했다. 그는 "친구 아돌프 히틀러가 나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 것을 알았다!"고 외쳤을 것이다.

증원군이 도착하기 전에 도망치려고 하던 슈코르체니는 자신을 지원키로 한 항공기 중 정찰기 한 대를 험준한 산꼭대기에 위태롭게 착륙시킨 다음, 무솔리니를 오스트리아에서 안전지대로 호송했다. 이 독재자는 1945년 4월  연합군측 세력이 그를 붙잡아 살해하기 전까지 북부 이탈리아에서 꼭두각시 지도자로 수개월을 보냈다.

3. 거너사이드 작전 (Operation Gunnerside)… 핵시설 폭파작전

잘 알려지지 않은 거너사이드 작전은 1943년 2월 영국 훈련을 받은 노르웨이 망명자들로 구성된 소규모 팀이 노르웨이의 노르스크 하이드로 베모크 공장 근처의 얼어붙은 고원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가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나치가 지배하던 이 곳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수 생산지였다. 중수는 핵무기 개발에 핵심적인 물질이었다. 이 공장에서 나치 독일군은 원자핵 연구의 혁신을 거듭했다.

하지만 윈스턴 처칠과 연합군은 나치가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다.

노르웨이 노르스크 하이드로. 나치 중수시설이 건설돼있었다. [히스토리]
노르웨이 노르스크 하이드로. 나치 중수시설이 건설돼있었다. [히스토리]

2월 27일 밤, 노르웨이 특공대는 노르스크 하이드로로 스키를 타고 협곡으로 내려간 후, 빙판을 건너 베모크 외곽으로 위험천만한 등반을 했다.

이들은 독일 보초와 지뢰밭을 우회한 뒤 케이블 덕트를 통해 공장으로 들어가 중수실에 폭발물을 설치했다. 요원들이 도주하면서 폭탄 버튼을 눌렀고, 시설을 파괴하는 데 성공했다.

거너사이드 작전은 약 6개월 동안 독일 중수 생산을 중단시켰다. 독일 원자력 연구에 대한 노르웨이인들의 방해 공작은 이 뿐이 아니었다. 1944년 2월, 독일로 많은 중수를 운반하려 할 때 첩보원들은 폭발물을 이용해 배를 침몰시키기도 했다.

4.그리프 작전 (Operation Greif)… 연합군을 혼란에 빠뜨리다

1944년 12월 벌지(Bulge) 전투의 진입 단계에서 아돌프 히틀러는 오토 슈코르체니를 특공대장으로 파견해 연합군의 통신과 사기를 떨어뜨리는 비밀 임무를 수행했다. 오토 슈코르체니는 1943년 9월 베니토 무솔리니를 구출했던 인물이다.

'그리프 작전'으로 명명된 이 미션을 위해 슈코르체니는 영어권 독일인들을 포획해 미국 제복을 입혀 위장시킨 후 그들에게 위조된 미 육군 문서를 주었고, 적진 후방에서 비밀 임무를 맡겼다.

며칠 만에 가짜 병사들은 성공적으로 탱크와 호송 차량을 잘못된 길로 유도하고 탄약고를 파괴하고 도로 표지를 바꾸고 전화선을 파괴했다. 모두 연합군의 코 앞에서 감행한 일이었다.

그리프 작전을 지휘한 오토 슈코르체니. 1948년 전범교도소에서 촬영됐다. [히스토리]
그리프 작전을 지휘한 오토 슈코르체니. 1948년 전범교도소에서 촬영됐다. [히스토리]

슈코르체니의 특공대원들은 어떤 중요한 군사적 목표도 달성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소동은 미국 계급 내에서 혼란과 공황을 부추기는 데 성공했다.

가짜 부대의 소문이 퍼지자 미군들은 주요 도로를 따라 검문소를 설치하고 미군으로 가짜 위장한 군인들을 따돌릴 생각으로 동료 군인들에게 야구와 대중문화에 대한 퀴즈를 내기 시작했다.

경비가 멈추면 혼란이 고조될 뿐이었다. 많은 연합군이 바로 체포되거나 구금되었고, 작전은 잠시 중단되었다.

독일군 몇 명이 검거망에 잡혔을 때, 그들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장군을 살해하기 위해 파리로 가는 특공대가 있다고 주장하는 계략을 펴기도 했다.

그 결과 연합군은 아이젠하워 장군을 암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정기간 가택 연금시켜야 했다.

슈코르체니의 남은 특공대원들은 나치 공세가 교착상태에 빠지자 12월 말 마침내 적진에서 철수했지만 연합군은 독일군의 사기꾼에 대한 광적인 수색을 몇 달 더 계속해야 했다.

5. 포티튜드 남부작전 (Operation Fortitude South)… 독일군을 속여라

디데이(D-Day)는 세계 군사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육지침투작전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다. 이에 앞서 정교한 속임수로 알려진 포티튜드 작전이 전개됐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영국이 주도한 남부 포티튜드 작전은 연합군이 노르망디 대신 파 드 칼레(프랑스 북부의 주) 프랑스에 상륙할 것이라고 독일군이 생각하도록 설계된 계략이었다.

속임수를 성공시키기 위해, 연합군은 ‘미 제1군단’으로 알려진 허구의 침략군을 만들어내 유령군이 파 드 칼레에 대한 공격을 주도할 것이라는 가짜 정보를 독일군에 제공했다.

공작원들은 파 드 칼레 공격을 위한 가장 유력한 집결지인 영국 켄트에 미 제1군단이 집결되어 있다고 믿도록 정찰 비행사들을 속이기 위해 팽창식 탱크, 목제 비행기, 더미 연료 저장소를 이용했다.

독일군을 속이기 위한 연합군의 가짜 탱크. [히스토리]
독일군을 속이기 위한 연합군의 가짜 탱크. [히스토리]

그 외에도 그들은 심지어 많이 알려진 조지 패튼 장군을 가짜 군대의 책임자로 배치해 진실된 분위기를 더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작한 이후에도 남부 포티튜드 작전은 계속됐다. 연합군은 노르망디 대신 파 드 칼레에 많은 폭격기들을 집중 배치했고, 비밀요원들은 독일인들에게 디데이(D-Day) 침공이 남쪽으로부터 두 번째로 더 큰 공격을 가하기 위해 고안된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정보를 제공해 혼란을 야기시켰다. 

영국의 작전은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의 해변을 습격했을 때, 독일군은 노르망디 대신 파 드칼레에서 대대적인 공격이 이뤄질 것으로 믿고 병력을 파 드 칼레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 공격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고, 이 작전으로 독일군은 급속히 패망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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