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건강 책] 마음의 여섯 얼굴
[의사의 건강 책] 마음의 여섯 얼굴
  • 김민정 칼럼
  • 승인 2022.02.07 10:19
  • 수정 2022.02.0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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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제공=건강책방 일일호일]

수십년을 익숙하게 바라본 내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나에게는 엄마로서의 내 모습이 그러했다. 누군가를 보살피고 챙기는데 능숙하지 않았던 내가, 한 생명체를 이토록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무고한 잠든 얼굴에 마음이 충만해 하고, 몸짓 하나하나에 애달파 할 줄이야. 하지만 아이를 통해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나란 인간의 바닥을 보는 기분이라 해야 할까. 나에게 실망하게 되는 일이 더 많았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아이에게 전이해 익숙한 일에 폭발해 난리 난리를 치다가, 울다 지쳐 잠든 아이의 젖은 속눈썹을 닦아주며 오열하고, 요맘때 아이들이 엄마 말 하나하나를 귀 기울여 듣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한 자격지심에 내가 이렇게 나를 희생하고 너를 위해 노력하는데, 너는 내 말 하나를 안 들어주냐며 자격지심을 부리는 알 수 없는 나. 낯선 나, 나이고 싶지 않은 내 모습을 여러 번 마주했다. 그렇게 나 사이의 괴리에 힘들어하던 시절 이 책 ‘마음의 여섯 얼굴’을 만났다.

정신과의사인 김건종 원장이 쓴 ‘마음의 여섯 얼굴’은 우리 마음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탐색하는 책이다. 임상가이자 진지한 분석가인 저자는 외면하고 싶은 감정이자 마음의 병, 질환으로 여겨지는 우울, 불안, 분노, 중독, 광기의 감정들이 가장 어려운 감정이면서도 가장 닿고 싶은 감정인 사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이야기한다.

사실 마음을 정의하고, 마음을 토닥이는 책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유효기간이 짧은 달콤한 위로만을 전하거나, 다 괜찮다는 말로 성찰보다 회피를 권유하는 느낌을 받는 책들도 적지 않다. 노란색의 예쁜 표지와는 달리, 이 책은 소위 벽돌책처럼 두껍지는 않지만 묵직한 무게가 있고, 매혹적이고 잘 읽히지만,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저자는 정신분석학, 뇌과학, 진화론, 예술작품과 예술가의 이야기를 넘나들며 고된 삶의 순간순간 저자가 겪어낸 감정들을 내밀하게 고백한다. 프로이트는 물론 라캉, 위니 코트, 멜라니 클라인 등 낯선 정신분석학 해석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잘 읽히는 것은 낯선 내 마음의 얼굴들을 외면하지 않고 파고들며 해석하고 성찰해 왔던 저자의 무수한 밤의 시간이 스며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부가 마취되면 고통은 피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도 시원한 바람의 흐름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우리의 정신도 마찬가지다. 괴로움을 피하면 기쁨도 사라진다.”

때문에 이 책은 초콜릿 같은 달콤함으로 고통을 지우길 권하지 않는다. 저자는 멋지고 동경하는 삶의 태도가 되어버린 ‘쿨’함 역시 상실에 대한 부인이고 마음의 상처를 느끼는 것이 두려워 비겁하게 미리 피하는 것이라 말한다. 슬픔을 내 몸과 마음으로 겪어내는 대신, 피상적인 긍정성으로 도피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독자들 역시 책을 읽으며 내 삶 속에서 마주한 낯선 감정들을 성찰하는 과정을 통해 슬픔이나 우울이 피해야 하고 치료해야 하는 병환이 아니라 통과해야 하는 진실한 삶의 일부일 때도 있음을 깨닫는다.

“질병이 없는 상태가 건강일지 몰라도 그것이 삶은 아니다.”

우리는 완벽히 건강한 몸을 꿈꾸듯, 완벽하게 건강한 정신을 희망하곤 한다. 건실하고 안정적이며 평안한 삶.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굴복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모든 충동과 욕망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는 삶. 하지만 조금의 출렁임도 없이 평온하기만 한 마음이 가능할까. 책이 인용한 위니 코트의 말처럼 그러한 삶이 행복할까.

저자는 삶에서 그늘이 사라지면 삶 자체의 질감과 두께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이야기하며 멀리서 바라보기에 부러운 그들의 삶이 고통을 떠맡아버린 주변인들의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그리고 그들 역시 깊은 공허에 부딪쳐 몸서리치는 순간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렇게 삶이란 참 어렵다. 병리가 깊어지면 고통과 만나는데, 너무 정상적이어도 정상이 아니다. 그래서 삶이란 참 재미있다.”

무엇보다 이 책의 미덕은 피하고 싶고 외면하고 싶었던 내 마음의 감정, 모순과 괴리의 순간 들을 마주볼 수 있게 하는데 있다. 거울 앞에 선 사람처럼, 내 마음의 다양한 얼굴들을 오롯이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어쩐지 미워지는 나를 보듬고 다듬어갈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그렇게 깊어진 눈으로 우리는 내가 아닌 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가 분노할 수 없고, 중독될 수 없고, 우울할 수 없고, 불안할 수 없다면, 우리는 사랑도 할 수 없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스스로에게 분노와 우울과 불안을 허락할 수 있어야만 사랑을 하는 힘이 생긴다.”

/건강책방 일일호일 책방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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