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줌인] 우크라이나가 갈등의 현장이 된 역사(상)... 갈등과 분쟁, 반란, 외침, 유대인 학살로 얼룩지다
[우크라 줌인] 우크라이나가 갈등의 현장이 된 역사(상)... 갈등과 분쟁, 반란, 외침, 유대인 학살로 얼룩지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08 06:59
  • 수정 2022.10.08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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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이 지난 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점령 4개 주 병합 선언 후 하루 만인 1일 탈환한 병참 요충 도네츠크 리만에서 장갑차에 국기를 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리만 등 동부 지역에 이어 남부 헤르손의 주요 소도시를 속속 탈환하며 수복지를 넓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크라이나군이 지난 4일(현지시간) 러시아의 점령 4개 주 병합 선언 후 하루 만인 1일 탈환한 병참 요충 도네츠크 리만에서 장갑차에 국기를 달고 있다. 우크라이나군은 리만 등 동부 지역에 이어 남부 헤르손의 주요 소도시를 속속 탈환하며 수복지를 넓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2년 자행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땅에서 벌어진 끊임없는 갈등과 분쟁, 반란, 외침(外侵), 그리고 유대인 학살 역사의 한 장면일 뿐이다.

‘히스토리채널’의 웹사이트는 우크라이나가 이처럼 갈등과 분쟁의 영토가 되어왔던 역사를 되짚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위키리크스한국은 이를 2회에 걸쳐 소개한다.

현대 우크라이나 국경 지대의 미국 텍사스주 크기만 한 지역은 종종 ‘유럽의 곡창지대’라고 불리며 주변 지역 강대국들의 패권 다툼의 현장이 되어왔다. 고대에는 스키타이, 사르마티아제국 같은 덜 알려진 외세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제국, 훈족 등이 한 시기 이 땅의 주인을 자처해왔다.

그리고 중세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더욱 최근에는 바이킹, 몽골족, 리투아니아, 폴란드, 러시아, 오스만제국, 스베아족(게르만계), 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루마니아, 체코슬로바키아가 이 곳을 차지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반(半) 자치권을 행사한 적은 있었지만, 구소련 붕괴 이전까지 한 번도 완전한 독립을 이룬 적이 없던 우크라이나는 흩어졌다가 뭉치기를 반복했다. 그런 역사에 걸맞기라도 하듯이 ‘우크라이나(Ukraine)’라는 국가명에는 ‘첨단’이나 ‘국경 지대’라는 의미가 숨어있으며, 이 나라의 애국가에는 ‘우크라이나는 아직 멸망하지 않았다.(Ukraine has not yet perished)’는 구절이 등장한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정체성은 수많은 논란거리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데, 2022년의 러시아 침공을 두고는 그 정도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

예를 들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국민과 러시아 국민은 ‘같은 동포’이며 우크라이나는 ‘실체적 국가’가 아니라고도 선언했는데, 이는 우크라이나를 ‘리틀 러시아’로 간주했던 지난 세기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이 같은 성격 규정에 강력히 반발하며 우크라이나는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화, 전통 및 공통의 시민 정신을 지닌 분명한 국가임을 주장한다.

“푸틴과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는 자신들 조상의 영토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정말 수많은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미시시피 주립대학에서 러시아 역사를 가르치는 스티븐 브레인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그는 나아가 “아주 긴 기간 동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같은 국가에 속해있었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브레인 교수는 “키이우(Kiev)는 모스크바가 생성되기 이전부터 자신들 나라의 수도였다.”고 말한다.

현대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통제 밖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으며, 브레인 교수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신들이 별개의 국가에 속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음에서 오늘의 우크라이나에 이르기까지 천년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우크라이나의 밀밭 : 우크라이나 루간스크에 위치한 밀밭 [사진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의 밀밭 : 우크라이나 루간스크에 위치한 밀밭 [사진 = 연합뉴스]

바이킹, 몽골족, 리투아니아, 폴란드

1937년, 키예프 루스(Kievan Rus) : 재건축된 형태로 지금도 우뚝 서있는, 키이우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Saint-Sophia Cathedral)은 키예프 루스 공국의 번영을 상징한다. 9세기 바이킹이 세웠다고 알려진 키예프 루스 공국은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및 러시아 일부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영토를 형성했다. 역사가인 안나 레이드가 지적하듯이 키예프 공국은 ‘동부 슬라브족의 최초 거대 문명’이었으며 당대 유럽 내 최대의 왕국이었다.

오늘날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러시아 사람들은 모두 문화의 뿌리를 이 키예프 루스 공국으로 거슬러 올라가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우크라이나가 한때 러시아의 일부였는지, 반대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일부였는지를 놓고 해답 없는 격렬한 논쟁을 야기하고 있다고,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러시아 및 구소련 이후 역사 전문가 요시코 헤레라 교수는 말한다.

1240년, 몽골의 침략 : 징키스칸의 손자 바투칸이 거느린 몽골군이 유럽을 전광석화처럼 쳐들어가서 키이우와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그 결과 오늘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일부가 이른바 ‘금장 칸국(Golden Horde)’의 손에 들어가면서 거대한 몽골제국의 일부를 형성했다.

1363년, 리투아니아 : 리투아니아 군대가 ‘블루 워터 전투(Battle of Blue Waters)’에서 몽골을 물리치고 현대 우크라이나 대부분의 영토를 ‘리투아니아 대공국(Grand Duchy of Lithuania)’에 합병했다. 이후 수백 년 동안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점점 통일된 형태를 이루면서 이 지역에서 패권을 행사했다.

1476년, 이반 3세 : 모스크바 대공국(Muscovy)의 이반 3세가 ‘금장 칸국’에 바치는 조공을 거부하며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이반 3세는 오늘날 우크라이나 영토 일부의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리투아니아와 정면으로 충돌하게 된다. 이로써 이반 3세는 우크라이나 소유권을 주장하는 최초의 러시아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1569년,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 리투아니아와 폴란드가 러시아와 대항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합병을 선언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을 형성하였다.

1648년 코사크족의 반란 :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통치에 반발하는 코사크족이 반란을 일으켜 초기에 놀라운 성공을 거두면서 ‘코사크 수장국(Hetmanate)’이라 알려진 반(半) 자치 형태의 국가를 형성하였다. 이후 우크라이나의 민족주의자들은 ‘코사크 수장국’에서 우크라이나 정체성의 영감을 얻게 된다. 하지만 코사크 사람들도 유대인 학살에 가담해 몇 달 사이에 14,000-20,000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했다. 이와 관련해 역사가 세르히 플로키는 “거의 모든 유대인 공동체가 지도에서 사라질 정도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654년, 폐허의 전쟁(The Ruin) : 크림반도의 타타르족에게 버림을 받은 코사크족은 종족 보존을 위해 자신들을 적대시하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보다는 러시아와 손을 잡는다. 이를 두고 “그들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브레인 교수는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은 절대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는다고 자신했지만 모스크바는 생각이 달랐다.” 그 이후 수년 동안 러시아, 폴란드, 오스만제국, 코사크가 오늘날 우크라이나를 놓고 패권을 다투는 전쟁을 벌였다. 역사가들은 이 전쟁을 ‘폐허의 전쟁(The Ru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667년, 분열 : 그때까지 이럭저럭 어느 정도 자치를 누리고 있던 코사크족과 상의 없이 러시아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휴전을 체결하고 드네프르 강을 경계로 우크라이나를 분할하였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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