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마약 밀매에 사형을 엄격히 적용하는 싱가포르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진
[월드 프리즘] 마약 밀매에 사형을 엄격히 적용하는 싱가포르의 많은 것을 보여주는 사진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0.23 06:49
  • 수정 2022.10.23 0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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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리 빈 라짐(64)이 지난 7월 싱가포르 교도소에서 처형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나지라 라짐 허츨릿 제공]
나제리 빈 라짐(64)이 지난 7월 싱가포르 교도소에서 처형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 [나지라 라짐 허츨릿 제공]

CNN방송은 22일(현지 시각), 마약 밀매로 사형 언도를 받고, 형 집행 전 가족들에게 보낼 마지막 사진을 찍은 싱가포르 한 사형수의 사연을 사진과 함께 게재하고, 마약 밀매에 특히 엄격한 싱가포르의 상황에 대해 보도했다.

나지라 라짐 허츨릿은 오빠인 나제리의 사진을 놓고 격정을 토로했다.

“너무 잘 생겼고, 당당한 모습 아닌가요?”

그녀는 캐주얼 차림의 오빠 모습을 담은 사진 여러 장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한 사진에서 사진 속 주인공은 꽃무늬 커튼을 배경으로 웃음을 머금은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어서 명랑한 분위기까지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사진들은 결코 즐거운 사진들이 될 수 없다.

이 사진들은 마약 밀매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나제리 빈 라짐(64)이 지난 7월 싱가포르 교도소에서 처형되기 전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들이었다.

2012년 헤로인 33.89그램을 밀매한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은 나제리는 새벽에 교수형이 집행되었다. 그는 올해 들어서 싱가포르 사형집행장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1명 중 5번째로 처형된 마약 밀매범이었다. 가장 최근에는 55세의 익명의 싱가포르 남성에게 10월 초에 교수형이 집행되었다고, 싱가포르 ‘중앙마약청(CNB)’은 밝혔다.

‘싱가포르 교도국(SPS)’은 CNN에 보낸 성명서에서 수감자들에게 “가족들이 보낸 옷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친지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의 최근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조치입니다.”

SPS 측은 이렇게 말했다.

“사진에 응할지 말지는 온전히 수감자 자신의 판단에 달렸습니다.”

이를 두고 나지라 라짐 허츨릿은은 “엄청난 잔혹함과 고통”을 안겨주는 사법 시스템 속에서 일말의 위안과 훈풍을 느끼게 해주는 조치라고 말했다.

“오빠는 행복해보였고, 강인한 태도를 잃지 않은 듯보였습니다.”

싱가포르 당국은 사형 제도가 마약 밀매를 방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공공의 안전을 위해 이 제도를 고수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번 주 싱가포르 내무부(MHA)는 싱가포르 국민이 마약 밀매와 같은 중범죄에는 사형 판결을 강력히 지지한다는 3건의 보도를 자세히 소개했다. 지난 2000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 이상이 마약 밀매 근절에는 종신형보다는 사형 제도가 더 효과적이라고 답했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다.

하지만 당국이 사형 판결과 집행을 강화하는 가운데에서도 인권운동가들은 최근 벌어지고 있는 마약 관련 수사의 규모와 횟수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가장 최근 교수형이 집행된 날에도 경찰은 두 곳을 급습해서 6명을 체포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104그램의 케타민과 10그램의 LSD, 그리고 2.28킬로그램의 대마초를 압수했다. 대마초 2.28킬로그램은 주말에 약 330명의 중독자들이 흡입할 수 있는 양이라고 싱가포르 ‘중앙마약청(CNB)’은 성명을 통해 밝혔다.

한편, 싱가포르 사형제 폐지 인권단체인 ‘정의실현 집단행동(TJC : Transformative Justice Collective)’ 회원인 로키 호웨는 사형 판결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데, 올해 들어서만 마약 관련 사범에게 최소 10건의 사형 판결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누군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 또 다른 마약 사범이 등장할 겁니다.”

호웨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는 질주를 멈춰야 하며, 정부 말대로 사형 제도가 진정으로 싱가포르의 마약 밀매 근절에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야 할 때입니다.”

싱가포르의 마약 밀매

싱가포르의 ‘마약 오남용 법’ 하에서 일정량의 불법 약물을 밀매 또는 수입, 수출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사형이 선고되게 되어있다.

메스암페타민(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또는 대마초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거래한 범죄자들에게는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싱가포르에서는 그 일정 수준이 헤로인의 경우 15그램 이상을 가리킨다. 반면에 미국 연방 마약 밀매자 처벌 조항은 초범일 경우 100~999그램의 헤로인을 밀매한 범인은 5~40년 형을 살게 되어있다. 물론 마약 거래가 사망이나 중상해로 이어질 경우에는 보다 혹독한 처벌을 내리게 되어있기는 하다.

싱가포르 집권당 소속 각료들은 국제 마약 거래의 온상이 되고 있는 주변국들로부터 싱가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사형 판결에 의한 억제가 필수불가결하다고 말한다.

지난 5월 ‘UN 마약범죄사무소(UN Office on Drugs and Crime)’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의 메스암페타민과 합성 약물 거래의 ‘규모와 범위’는 “상상을 초월한다”고 말했다. ‘아시아-태평양 메스암페타민류 약물 및 정보센터(APAIC)’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경우 2021년 메스암페타민이 우려 약물 목록에 올랐다고 한다.

APAIC는 싱가포르에서 메스암페타민의 사용과 적발 건수가 2021년에는 줄어들기는 했지만, 헤로인 사범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약물 수요 지표도, 2012년 이래 그 사용이 최고에 이르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헤로인 사용이 증가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APAIC 보고서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헤로인 약물 치료를 위해 입원하는 환자의 수 또한 2013년 이래 처음으로 500명을 넘어서며 증가하고 있다.”

한편, 사형 판결 및 집행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에서는 대마초 사범의 대량 적발 뉴스 또한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기록적인 대마초 거래량이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하기도 했는데, 가장 큰 거래는 미화 170만 달러 이상을 기록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내무부(MHA)는 정부 자료 및 통계와 연계된 5장짜리 성명서를 CNN에 보내 “사형제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약 밀매가 증가한다는 결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성명은 “반대로 사형이 없다면 마약 밀매자들은 싱가포르에서 더 대담해지고 더 많은 양의 마약을 밀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싱가포르에서 적발된, 화재 소화기 속에 밀반입된 마약류 [싱가포르 ‘중앙마약청(CNB)’ 제공]
최근 싱가포르에서 적발된, 화재 소화기 속에 밀반입된 마약류 [싱가포르 ‘중앙마약청(CNB)’ 제공]

그럼에도 불구학 수그러들지 않는 마약 거래

최근까지 일부 인접국은 싱가포르와 보조를 맞춰 마약과의 전쟁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싱가포르 인접국 중에서는 베트남이 가장 큰 사형집행국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각 나라들은 사형집행을 기밀에 붙이고 있지만, 2017년 베트남 공안부가 국영 언론에 공개한 흔치 않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6년 사이에 전국 교도소에서 429건의 사형이 집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현재 몇 명의 사형수가 수감 중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고 인권단체는 말한다.

미얀마 군부도 2021년에는 실시하지 않았던 사형 집행을 올해 감행했다. 두 명의 저명한 미얀마 민주 운동가가 군부에 의해 “테러범”으로 고발된 후 지난 7월에 처형되면서 아직 처형되지 않은 사형수들의 공포를 자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밖의 나라들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말레이시아는 2018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범죄 목록에서 마약 밀매를 삭제했으며, 6월에는 의무 사형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처럼 테러, 살인, 마약 밀매 와 같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오랫동안 처형해 온 인도네시아는 이제 “사형 유예 제도”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범죄자가 “개전의 정”을 보이거나 범죄에서의 역할이 크지 않을 경우 10년의 유예 기간을 두고 사형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을 판사에게 일임하는 내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마약 사범에 대한 대처 방식이 싱가포르가 금융 및 여행 허브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는 싱가포르 정부는 마약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싱가포르 경영대학의 유진 탄 부교수는 “모든 국가는 사형을 포함해 중범죄자를 취급하는 자신들만의 방식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고 말했다. 한때 싱가포르 의회 의원으로 지명되기도 했던 탄 교수는 그렇다고 해서 싱가포르 법원이 “사형 선고를 가볍게 내리지는 않습니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에 대한 정부의 비타협 노선은 법과 질서에 대한 오랜 약속에서 비롯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싱가포르가 주변국의 많은 마약 생산지와 가까운 주요 교통 허브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처럼 유연한 마약 정책을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라고 탄 교수는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 정부는 최근 다른 나라들처럼 입장을 완화하면 마약 상황이 급격히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고도 말했다 .

‘UN 마약범죄사무소’의 동남아시아 대표인 제레미 더글러스는는 지난 5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마약 거래를 근절하고자 한다면 문제에 대한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각국 정부는 “공중보건 교육, 정신 위생 치료, 돌봄 및 지원, 재활 및 재통합 프로그램”을 통해 마약 사용과 의존을 범죄 문제가 아니라 건강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형으로 마약 밀매가 억제된다는 징후도 없다”고 덧붙였다.

‘국제앰네스티 대변인’은 싱가포르가 일반적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양의 약물 거래”에 사형을 판결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이는 유죄 판결을 받은 마약 밀매범이 “마약 밀매 조직에서 낮은 지위”에 있음을 나타낸다고 말했다.

대변인은 그들의 처형이 “마약 거래를 실질적으로 저지”하는 쪽으로 이어질 것인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CNN에 보낸 성명에서 싱가포르의 내무부는 얼마나 많은 마약 매매범들이 법적 제재 기준량 이하로 교묘하게 마약을 밀거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들이 있다고 말했다.

“마약 밀매범들은 사형 선고를 받을지를 알면서도 돈을 위해 거래한다.”

내무부는 이렇게 밝히고 있다. 

“인신매매범들은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라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마약을 밀매하는 얄팍한 속셈에 의존한다.”

나제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지 3개월이 지났다.

그의 여동생은 휴대전화에 오빠의 처형 전 사진 중 일부를 보관하고 있다. 그녀는 “오빠가 그리울 때마다 사진을 본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지는 않았지만 교도소 측이 괜찮은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오빠가 마지막 사진을 찍기 전 가족들이 의상을 보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덧붙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관행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왜 사진이 찍혔는지 모르지만 교도 행정과 사법 시스템이 얼마나 단절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그녀는 말했습니다.

“결국은 그들이 오빠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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