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생활고 때문에 자녀들을 팔 수 밖에 없었던 1948년 미국의 한 가정 스토리
[월드 프리즘] 생활고 때문에 자녀들을 팔 수 밖에 없었던 1948년 미국의 한 가정 스토리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1.08 06:42
  • 수정 2023.01.0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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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가린 루실리 샬리푸와 4명의 자녀들. 상당 왼쪽부터 라나(6)와 라에(5), 하단 왼쪽부터 밀튼(4)과 수 엘렌(2) [사진 = ATI]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가린 루실리 샬리푸와 4명의 자녀들. 상당 왼쪽부터 라나(6)와 라에(5), 하단 왼쪽부터 밀튼(4)과 수 엘렌(2) [사진 = ATI]

1948년에 미국 시카고에서 자녀를 공개적으로 팔겠다는 것처럼 보이는 한 장의 사진이 파문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뉴스거리를 찾아 소개하는 웹사이트 ‘allthatsinteresting’은 세계 최강국 미국에서도 이런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 일화를 소개했다.

20세기 미국에서 포착된 가장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이미지 중 하나가 있다. 바로 집 앞 계단 아래 앉아 천진난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4명의 어린 자녀들과, 부끄러움 때문에 얼굴을 가린 젊은 어머니의 사진이다.

이 어머니는 당시 새로운 아기를 임신 중이기도 했다. 이 사진 맨 앞에는 크고 굵은 글씨로 “아이들 4명을 팝니다. 자세한 것은 안으로 들어와서 문의하세요.”라는 표지판이 내걸려 있다.

이 사진은, 연출되었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 가족이 당시 내몰렸던 최악의 상황을 암시한다. 

이 사진은 1948년 8월 5일 인디애나주 발파라이소에 기반을 둔 지역 신문 ‘비데트 메신저(Vidette-Messenger)’에 처음 등장했다. 해당 부모는 실제로 어린 자녀들을 매물로 내놓았고, 정말로 이 아이들을 다른 가족들이 구입했다.

그리고 몇 년 뒤, 팔려갔던 아이들이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사진에 얽힌 애절한 사연

이 사진은 ‘비데트 메신저’에 처음 등장했을 때 다음과 같은 설명을 달고 있었다.

“한 시카고 가정집 현관 앞에 커다랗게 내걸린 ‘매물’ 표지판은 이 집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 레이 샬리푸(Ray Chalifoux) 부부의 참혹한 상황을 암묵적으로 보여준다. 광산 트럭 운전사로 일하다가 실직해 하릴없어진 가장과 그의 아내는 네 자녀를 팔기로 마음먹었다. 부인인 루실리 샬리푸는 카메라 앞에서 부끄러움 때문에 고개를 돌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의 아이들은 어리둥절 쳐다만 보고 있다. 계단 맨 위에는 라나(6)와 라에(5)가 앉아있고, 그 아래 밀튼(4)과 수 엘렌(2)이 앉아있다.”

‘노스웨스트 인디애나 타임스(The Times of Northwest Indiana’에 따르면 이 표지판이 얼마나 오랫동안 걸려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사진 촬영을 위해 잠시 내걸렸을 수도 있고, 몇 년 동안 계속 남아 있었을 수도 있다.

이 부부의 일부 가족은 루실리 샬리푸가 사진을 연출해주고 돈을 받았다고 비난했지만,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아이들 4명을 팝니다.”는 광고는 각각 다른 구매자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 사진은 결국 전국의 신문에 퍼지게 되었고, 며칠 후 ‘시카고 하이츠 스타(Chicago Heights Star)’지 는 시카고 하이츠에 사는 한 여성이 아이들에게 집을 개방하겠다고 제안했으며, 샬리푸 가족에 직장을 제공하고, 성금이 답지했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대중의 온정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다. 사진이 최초 보도된 지 2년 후 루실리가 배고 있던 태중의 아이를 포함해 모든 아이들이 이 가정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샬리푸 자녀들의 그 후 삶은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아이들 4명을 팝니다.”라는 광고에 대한 기사가 실린 날의 ‘비데트 메신저(Vidette-Messenger)’지 [사진 = public domain]
“아이들 4명을 팝니다.”라는 광고에 대한 기사가 실린 날의 ‘비데트 메신저(Vidette-Messenger)’지 [사진 = public domain]

인자하면서도 엄혹했던 집으로 보내진 막내 데이비드

‘뉴욕포스트(New York Post)’에 따르면 샬리푸 가족의 가장 레이 샬리푸는 자녀들이 어렸을 때 가족을 버리고, 범죄 이력 때문에 집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웹사이트 ‘Creating a Family’에 따르면 루실리 샬리푸는 1949년 정부 지원하에 다섯 번째 자녀인 데이비드를 낳았다. 그러나 불과 1년 뒤, 데이비드도 다른 형제들처럼 가정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비드는 1950년 7월 루엘라와 해리 맥다니엘 부부에게 합법적으로 입양되었으며, 입양 당시 데이비드의 모습은 그가 얼마나 열악한 상태에서 살았는지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뉴욕포스트’에 따르면 그는 나중에 “온몸을 빈대에 물렸습니다. 아마, 정말로 처참한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회상한 것으로 되어있다.

데이비드를 입양한 맥다니엘 가정의 분위기는 자애롭기는 했지만 엄혹한 부모였던 것 같다. 그는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반항적인 10대를 보냈고, 16세에 가출해 20년을 군대에서 보냈다.

그 후 그는 트럭 운전사로 일하며 평생을 보냈다.

데이비드는 또한 친 형제자매인 라에앤 밀스 및 밀튼 샬리푸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성장했다. 그는 심지어 여러 차례 그들과 만나기도 했지만, 형제자매들의 상황은 자신보다 훨씬 더 나빴다.

헛간에 묶여 노예로 취급된 라에앤과 밀튼

라에앤 밀스는 생모가 푼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을 2달러에 팔았다고 말했다. 그 2달러는 존과 루스 조트만 부부에게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조트만 부부는 원래 라에앤만 구입하려고 했지만, 근처에서 밀튼이 울고 있는 것을 보고 그도 데려가기로 했다. 분명한 사실은 조트만 부부가 이 아이들을 사람보다는 돈 주고 산 물건 취급을 했다는 점이다.

“기억조차 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이 어린 시절에 벌어졌습니다.”

밀튼 샬리푸는 이렇게 회상했었다.

조트만 부부는 밀튼의 이름을 케네스 데이비드 조트만으로 개명했다.

아이들을 집에 데리고 온 첫날, 존 조트만은 밀튼을 묶고 때리면서 농장에서 노예로 일해야 한다고 을러댔다.

“알았다고만 대답했습니다. 너무 어려서 노예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하지만 부인인 루스 조트만은 밀튼을 학대한 뒤 씻겨주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고, 그럴 때마다 밀튼은 “말 잘 듣는 아이가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조트만 부부는 라에앤의 이름도 비벌리 조트만으로 바꾸었다. 라에앤은 조트만 부부의 집이 아이들을 학대하는 사랑 없는 가정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들은 항상 우리를 사슬에 묶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어린 시절 우리는 공사판 노동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라에앤 밀스의 아들 랜스 그레이는 어머니의 삶을 공포 영화로 묘사하곤 했다. 라에앤 밀스는 충격적 환경하에서 양육되었을 뿐만 아니라 10대 후반에 납치, 강간, 임신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이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라에앤 밀스는 자애로운 어머니가 되었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인생이 자신처럼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라에앤의 아들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어머는 강인한 삶을 살았습니다.”

웹사이트 ‘Rare Historical Photos’가 전하는 대로 밀튼에게 가해진 학대는 그가 10대에 접어들면서 폭력적인 분노로 표출되는 경우가 잦았다.

밀튼은 한때 재판에 회부되어 “사회의 위협”으로 판명받은 다음 정신병원으로 갈지 소년원으로 갈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했다. 그는 정신병원 행을 택했다.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그는 이후 1967년 병원을 나와 결혼한 뒤 아내와 함께 시카고에서 애리조나로 이주했다.

밀튼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그는 애리조나주 투손에 남아있기로 했다.

라에앤(맨 왼쪽)과 밀튼(맨 오른쪽)을 입양한 조트만 부부 [사진 = public domain]
라에앤(맨 왼쪽)과 밀튼(맨 오른쪽)을 입양한 조트만 부부 [사진 = public domain]

불운했던 형제자매들의 재결합

밀튼과 라에앤은 성인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1998년에 암으로 사망한 맞이 라나만은 그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후 수 엘렌과 연결이 되었고, 그녀가 원래 친부모의 집에서 멀지 않은 시카고의 이스트 사이드에서 자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13년에 형제자매들이 성인이 되어 서로를 다시 찾았을 때 수 엘렌은 폐암 말기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그녀는 어렵지만 필담을 나눌 수는 있었다. 라에앤과 재회한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녀는 “굉장하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답했다.

그리고 생모에 대한 기억을 묻자 수 엘렌은 “그녀는 지옥 불에 타야 한다”고 적었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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