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아직도 폴 포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
[WIKI 프리즘] 아직도 폴 포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캄보디아
  • 최석진 기자
  • 기사입력 2019.05.19 06:10
  • 최종수정 2019.05.17 16: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캄보디아가 폴 포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1975년 당시 상황. [연합뉴스 자료사진]
캄보디아가 폴 포트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1975년 당시 상황. [연합뉴스 자료사진]

캄보디아에서 잔혹했던 폴 포트 정권이 붕괴된 지 40년이 흘렀다. 그러나 폴 포트가 남긴 상처는 끈질기게 자리 잡고 있다.

강성 공산주의 정권이었던 크메르루즈는 1975년부터 1979년까지 동남아시아 일대를 공포에 몰아넣으며, 300만명에 달하는 인명을 학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크메르루즈는 계급이 사라진 농업 사회 건설을 목표로 삼았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국에 산재한 집단 노동수용소나 감옥, 또는 킬링필드로 끌려가 고문이나 질병, 기근 등으로 죽어갔다.

크메르루즈는 1979년 1월 7일이 되어서야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반군의 공격을 받고 정글로 패퇴했다.

그러나 약 16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개발도상국가 캄보디아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과거와 제대로 화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크메르루즈 통치 기간의 끔찍한 비극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던 내전의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UN 특별재판관은 대량학살의 주범인 지난 정권 지도자 두 명을 기소하는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인해 대량학살 정권이 남긴 유산이 현재의 캄보디아에서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있음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크메르루즈 정권 붕괴 40년을 맞이해서 타임지는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 사태에서 인류가 유념해야할 내용과 캄보디아가 그 후유증을 어떻게 치러내고 있는지에 대해 보도했다.

크메르루즈 치하에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가?

1975년 4월 크메르루즈 반군은 미국의 지원을 받던 우익정권을 물리치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을 장악했다. 마르크스 이념을 따르던 반군을 이끌던 인물은 폴 포트라는 공산주의자였는데, 그는 프랑스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프랑스 공산당원이 되었다. 폴 포트는 고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공산당 비밀조직의 우두머리 반열에 올라섰다.

크메르루즈는 1975년 정권을 잡자 곧바로, 이상적인 농업사회를 건설한다는 기치 아래, 수백만 명을 집단 농업수용소로 보냈다.

캄보디아에서는 1975년을 ‘원년(Year Zero)’이라 부른다. 집단학살은 주로 베트남 인종과 참족 무슬림들을 포함해서 의사나 변호사, 언론인, 예술가, 학생 등의 중간계급과 지식인들을 대상으로 자행되었다.

사유재산과 화폐제도, 종교, 그리고 전통문화는 폐지되었으며, 국가는 ‘민주 캄푸치아(Democratic Kampuchea)’로 새로 명명되었다.

이때 저질러진 살육으로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5분의 1이 지워졌다.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참상. [연합뉴스]
크메르루즈 정권 당시 참상. [연합뉴스]

크메르루즈의 통치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것은 1979년 1월 7일 베트남이 수도에 침공하고 나서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크메르루즈는, 서부 일원에서, 캄보디아를 장악한 베트남인들에게 강력한 도전 세력으로 남아있었으며, 미국 및 다른 서방 국가들의 군사적 지원 등을 받고 있었다.

1979년부터 1990년까지 크메르루즈는 UN총회의 의석을 유지하고 있었고, 캄보디아의 유일한 합법 대표의 대우를 받았다. 폴 포트는 1998년 죽을 때가 되어서야 국제 사회의 사법 재판대 앞에 설까말까 했다.

오늘날까지도 크메르루즈의 전임 관리들은 권좌를 지키고 있다. 그 중에는 훈센 총리도 있다. 공산당인 ‘캄보디아 인민당’을 1985년부터 이끌고 있는 훈센은 세계에서 가장 장기집권하는 총리이다. 훈센 총리는 최근에 치러진 재집권 선거에서 대대적으로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고 당선되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렇듯이 캄보디아의 민주주의는 갈 길이 멀다.

캄보디아 대량학살의 유산은 오늘날 어떤 식으로 남아있는가?

20세기에 벌어진 참혹한 대량학살 사태의 하나로 기록될 인종학살의 망령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캄보디아를 괴롭히고 있다.

캄보디아 역사학자 데이비드 챈들러는, 캄보디아인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과거의 상처를 차츰 극복해가고 있다고 말한다.

“아픈 역사는 과거로 천천히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캄보디아는 인구의 거의 반 이상이 24살 이하인 젊은 국가에 속한다. 대부분의 캄보디아 사람들은 과거의 아픈 상처를 직접 경험하지 않았다. 역사의 상처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50대 이상의 사람들로, 이들 중장년층의 인구비율은 10%가 채 못 된다.

“적어도 그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대량학살의 유산은 제한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챈들러는 이렇게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크메르루즈가 패퇴한 1979년 1월 그 순간부터 그들의 유산은 정치 이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언론인이자 「훈센의 캄보디아」의 저자 세바스찬 스트란지오는 이렇게 말했다.

크메르루즈의 몰락은 현정부의 존립 기반이 되고 있다. 그 이유는 ‘캄보디아 인민당’이 크메르루즈의 공포정치를 딛고 자력으로 캄보디아를 재탄생시킨 정당을 자처하기 때문이라고 스트란지오는 밝히고 있다.

총리의 권력은 공고하며, ‘캄보디아 인민당’의 영향력은 권력 중심부를 넘어, 전쟁에 신물이 난 사람들의 보수적 정서를 부추기며 국민들의 윤리의식에까지 스며들고 있다고 스트란지오는 주장한다.

“어떤 종류이든지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지난 30년간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과거의 유혈과 폭력의 아수라장으로 퇴행하려는 시도로 치부됩니다.”

스트란지오는 이렇게 말했다.

“자유가 찾아왔을 때 사람들은 떼를 지어 익숙한 곳으로 찾아들었지요. 전통과 불교로 피신처를 찾아들었으며, 보수적 정서를 선호하고 정치에서는 위험을 회피하고자 하는 경향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크메르루즈에 의해 저질러진 폭정 수준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세바스찬 스트란지오에 따르면 정부의 정보 통제는 사태의 객관적 파악을 불가능하게 할 정도로 심각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캄보디아가 역사를 제대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아직도 더 많이 시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의 캄보디아 정치 풍조 내에서는 크메르루즈의 실체에 대해서 자유롭고 진지한 토론이 무척 어렵습니다.”
스트란지오는 이렇게 밝혔다.

“사람들이 그러한 토론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정치 지향적인 세대가 흘러가야 할 겁니다.”

 

6677sky@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