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의 “땡큐”, 천 냥 빚 될까
[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의 “땡큐”, 천 냥 빚 될까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4.27 13:36
  • 수정 2019.04.27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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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까?
말실수가 가져온 동서독의 통일
한반도 문제 개입기회 엿보던 露
푸틴, 金에 '6자회담' 필요성 언급
트럼프, '땡큐'로 중-러 역견제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연합뉴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서인지 쉽게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물론 말을 ‘곱게, 잘’ 하면 어려운 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인지는 잘 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말 한마디로 빚이 생길 수도 있는 세상이 됐다. 과학기술도 발달해 누구나 휴대폰으로 녹음할 수 있다. 방송과 인터넷의 발달로 정치인이나 유명인들이 짊어지는 말의 무게는 더욱 커졌다.

말실수로 ‘훅 간’ 인물들을 떠올려 보자.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은 말 한마디로 파면됐다. 그가 2016년 한 언론사 기자들과 저녁식사에서 “민중은 개ㆍ돼지”라고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그는 작년에 한 단계 직급을 낮춰 복직했다고 한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시절 강용석 변호사는 ‘아나운서가 되려면 다 줘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해 아나운서협회로부터 고소까지 당했다. 한나라당으로부터 제명당할 뻔하기도 했다.

물론 말실수가 기적 같은 결과를 낳은 사례도 있다. 바로 동서독의 통일이다. 1989년 11월 9일 동독 정부의 정치국 대변인 귄터 샤보브스키는 '외국 여행 규제 완화' 정책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말실수를 한다. 정책심의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그는 “’서독을 포함한’ 외국 여행을 자유화한다"고 공표해 버렸다. 이어 "언제부터 시행하느냐"는 한 이탈리아 기자의 질문에 "지금 당장"이라며 또 말실수를 했다. 

방송을 본 동서독 시민들은 당장 뛰쳐나와 베를린 장벽으로 향했다. 시민들을 막던 경계병들도 방송을 믿고 국경을 개방했다. 동서독 시민들은 망치로 장벽을 부쉈고 그렇게 베를린 장벽은 붕괴했다. 이후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마침내 통일을 이뤘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어떨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침없는 수사법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구설수도 많았다. 대선후보 시절 그의 대선토론, 연설, 트위터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불안하다. 특히 한반도의 정세가, 그리고 우리의 안보가 그의 ‘말, 말, 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가끔 ‘서프라이즈’로 우리 정부를 놀라게 한다.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워 게임들을 중단할 것이다(we will be stopping the war games). 그렇게 하면 막대한 비용이 절감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애매한 ‘워 게임’이라는 용어를 두고 국내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사전에 우리 정부와 합의하지 않은 ‘서프라이즈’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워 게임’이 한미연합훈련이 아닌 지휘소연습만을 의미한다며 자의적이고 자위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국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시사한 발언인 것으로 드러났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홈페이지에 전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은 26일 홈페이지에 전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린 북러정상회담 사진을 공개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사진=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는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북러 정상회담과 관련해 "나는 어제 있었던 푸틴 대통령의 성명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언급한 푸틴 대통령의 성명은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의) 정치·외교적 해결 진전에 기여하기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의 직접 대화 구축과 남북한 관계 정상화를 위한 북한 지도부의 행보를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

일견 평범해 보이는 발언이다. 특히 북한이 이번 러시아 방문에서 예상대로 큰 소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렇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고 러시아로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은 정치적 상징성이 더 크다. 러시아는 북한의 옛 사회주의 혈맹이자, 6자회담 당사국이고, 중국과 함께 (미국에 경도된) 통일한국의 등장에 반대하는 국가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중국과 미국 중심의 체제를 극복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유럽과 중동 현안에서는 러시아가, 동북아 현안에서는 중국이 앞장서며 양국이 서로 지원하고 있다는 전문가 분석도 나온다. 

그래서 푸틴 대통령이 북러 정상회담에서 6자회담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체제를 보장하는 것으로 부족하다면 6자 회담이 필요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 상황은 러시아에게는 호재다. 중국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미 운신의 폭이 좁아져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다. 6자회담이 열린다면 러시아는 큰 수고없이 협상테이블에 앉아 한반도 문제에 대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중국에 편승함으로써 자국의 취약한 입지를 극복해온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에, 그리고 나아가 동북아에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를 잡을 절호의 기회일 수 있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푸틴 대통령이 ‘땡큐’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너무 앞서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의 '땡큐'가 6자회담이라는 멍석이 깔릴 계기가 될까?

‘협상의 대가’인 트럼프 대통령의 심오한 뜻을 기자가 어찌 알겠느냐만 불안하다. ‘땡큐 전략’으로 중국과 러시아를 우군으로 확보함으로써 북한을 ‘역견제’하겠다는 걸까? 트럼프 대통령의 매력이 유라시아 대륙을 뒤흔들 정도인지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의 원래 뜻대로 ‘잘 협력해보자’는 외교적 수사일 수도 있겠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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