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김재형 "변희재 무죄면 박래군 무죄" 표현의 자유엔 左右 없다
[WIKI 프리즘] 김재형 "변희재 무죄면 박래군 무죄" 표현의 자유엔 左右 없다
  • 윤여진 기자
  • 승인 2021.03.26 11:24
  • 수정 2021.03.2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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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朴, 세월호 7시간 보톡스 시술'은 허위사실 아냐
'이정희는 종북·주사파' 허위사실 아닌 것과 같은 이치
'공론의 장' 나선 '전면적 공인'은 '공적 사안' 극복해야
언론법 권위자 김재형, 잇따라 '한국형 공인이론' 도입

"대법관 박정화, 대법관 민유숙, 대법관 김선수, 대법관 이동원, 대법관 노정희의 반대의견이 있는 외에는 관여 법관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총선거 당시 서울 관악구 서림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하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 [출처=연합뉴스]
2012년 4월 11일 국회의원총선거 당시 서울 관악구 서림동 제2투표소에서 투표하는 이정희(오른쪽) 통합진보당 공동대표와 남편 심재환 변호사. [출처=연합뉴스]

지난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대법정. 진보 성향 대법관 전부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판결 반대편에서 소수의견을 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재판 쟁점은 친북 성향인 정당 대표를 '종북세력'이라 부르는 게 명예훼손인지였다. 전원합의체는 8대5 의견으로 '종북'은 "의미를 객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며 명예훼손 전제인 사실적시마저 부정했다. 다수의견은 사실적시를 인정해도 "진실하다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며 손해배상 요건인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소수의견은 "민주적 토론의 대상에서 배제하기 위한 공격의 수단"이라며 명예훼손을 수긍했다. 보수·중도 대법관은 다수의견에, 진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 섰다. 유일한 예외는 진보 대법관 4명과 소수의견을 구성한 보수 이동원 대법관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게 자연스러운 진보 대법관이 '북한을 추종하는 표현'을 금지하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당시 소송 원고는 2014년 헌법재판소가 "북한식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이라며 해산한 통합진보당의 마지막 당대표 이정희(위 사진) 변호사와 남편, 피고는 <미디어워치> 변희재 대표였다. 변 대표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가 결합한 뉴라이트를 자처하는 보수 인사다. 변 대표 트위트를 기사에 인용한 <조선일보> 기자도 "종북·주사파임을 암시하거나 강조했다"는 이유로 함께 피소됐다. 

◇ 중도 김재형의 '진보를 포개는 길'
2018년 말 대법원은 보수(조희대 이기택 이동원)도 진보(박정화 민유숙 김선수 노정희)도 단독과반을 만들지 못해 중도(김소영 권순일 박상옥 김재형 조재연)가 다수의견을 결정하는 구도였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본인 성향을 드러내지 않고 매번 과반수 7명을 채우는 쪽에 이름을 올렸다. 이 변호사 부부가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 상고심 주심은 중도에서도 진보 대법관과 가장 가까운 김재형(아래 사진) 대법관이 맡았다. 다수의견 집필을 맡은 김 대법관은 서울대 교수 시절인 2005년 '언론에 의한 인격권 침해에 대한 구제수단' 논문으로 한국언론법학회가 만든 '철우(哲宇)언론법상'을 수상한 언론법 권위자다. 표현의 자유에서 파생하는 언론의 자유를 폭넓게 포장해야 한다는 입장인 김 대법관으로선 결론을 달리한 진보 대법관들도 만족할만한 법리를 내놔야 했다. 그 결과가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 이론이다. 

김재형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김재형 대법관. [출처=연합뉴스]

김 대법관은 세 개의 막을 겹쳐놨다. 누군가 '공론의 장'에서 '전면적 공적 인물'을 상대로 '공적 관심사'를 주제로 의혹을 제기하면 그때 표현은 재단이 아닌 극복 대상이라는 이론이다. 여기서 '전면적 공적 인물'은 다른 두 용어가 명예훼손죄 판례에서 종종 쓰인 것과 달리 새로이 만들어진 개념이다. 김 대법관이 창안한 이 개념은 '공인 중 공인'을 뜻한다. 국회의원과 공당 대표를 지낸 이 변호사가 이 범주에 들어간다. 김 대법관은 "피해자의 지위를 고려하는 것은 이른바 공인 이론에 반영되어 있다"며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의 경우에는 비판을 감수해야 하고 그러한 비판에 대해서는 해명과 재반박을 통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 대법관이 언급한 공인 이론은 '언론이 공인의 사생활을 보도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채택했는데 국내 판례에선 등장한 적 자체가 없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인데 대법원은 대신 2002년부터 '공공의 이익은 진실하지 않아도 진실로 간주한다'는 공익성 항변 이론으로 공적 관심사를 보호해왔다. 이때 공인의 공적 관심사는 공익으로 여겨진다. 공인 이론은 공인에, 공익성 항변 이론은 공적 관심사에 각각 무게중심을 둔다. 김 대법관은 두 이론 교집합 '공인의 공적 관심사'에 주목했다. 우선 공인 범위를 좁힌 뒤 대법원이 2008년 공공의 이익을 추정하는 요건으로 추가한 '정보가 공개되는 공론의 장' 개념을 보탰다. 

김 대법관이 선보인 이론은 '전면적 공인은 공적 관심사로 불거진 본인 의혹을 공론의 장에서 해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견은 "보수 정권이 집권하고 있는 시기에 특정인이 '종북' '주사파'로 낙인찍히게 될 경우 느끼는 두려움이나 공포는 일반인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할 것"이라며 "다수의견은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느끼는 이러한 두려움과 공포에 대해 너무도 무감각한 것"이라고 지적하나 김 대법관이 보기에 이 변호사는 약자가 아닌 '전면적 공적 인물'일 뿐이다. 그리고 통합진보당 맞은편엔 소수자가 아닌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이 있다. 김 대법관은 "극우든 극좌든 보수우익이든 종북이나 주사파든 그 표현만을 들어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할 수 없고, 그 표현을 한 맥락을 고려하여 명예훼손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 사회적 지위라면 '종북'을 낙인이라 여기지 말고 해명하고 반박하고 그마저 싫다면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라고 김 대법관은 주문한다. 

◇ 명예훼손 피해자가 박근혜라면
김 대법관은 자신의 이론을 이념적 저편에도 적용하면 진보 대법관 동의는 따라온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그가 속한 대법원 3부엔 종북 사건 소수의견에 이름을 올린 민유숙 이동원 대법관이 있다. 김 대법관은 자신에게 배당된 명예훼손 사건에서 가해자는 진보이고 피해자는 보수인 사건을 골랐다. 4년 6개월 가까이 대법원에 계류된 이른바 '세월호 7시간' 사건이다. 사건기록을 보니 공교롭게도 이정희 변호사 남편 심재환 변호사가 1심 변호인을 맡았다. 3부는 25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과 시민단체 연대체인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상임운영위원 박래군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416 연대 압수수색. [출처=연합뉴스]
2015년 6월 19일 서울 중구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서울 종로경찰서. [출처=연합뉴스]

사건의 시작은 경찰의 압수수색이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015년 6월 19일 4·16연대 중구 사무실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했다. 참사 1주기 추모제를 신고 없이 집회 형태로 개최했다는 이유로 경찰이 해산을 명령했는데 따르지 않았다는 혐의였다. 4·16연대는 곧바로 압수수색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고 추모제를 주도했던 박씨는 "보톡스 맞으면 당장 움직이지 못하니까 7시간 동안 그렇게 하고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런 의혹도 있습니다. 청와대 압수수색해서 마약하고 있었는지 한 번 확인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발언했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참사 당일 법률이 정한 절차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의혹을 받으니 경찰은 청와대도 압수수색하라는 일종의 말싸움이었다. 박씨는 허위사실에 따른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됐다. 

명예훼손 사건에서 가해자는 박씨, 피해자는 박 전 대통령이다. 2015년 박 전 대통령이 보수를 상징하는 인물이었다면 박 활동가는 대표 진보운동가였다. 박씨는 1998년 노태우 정부에 항거해 "광주는 살아 있다, 군사 파쇼 타도하자"는 외침 속 분신자살한 고(故) 박래전씨 친형이다. 박씨가 구속된 건 미군기지 반대 운동, 용산참사 철거민 연대 운동에 이어 세 번째였다. 1·2심은 "최소한의 진위 확인을 하지 않고 합리적 근거 없이 악의적 공격을 해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가 참조한 법리는 '암시에 의한 사실적시'였다. 박씨가 "국민들이 그런 의혹을 제기하고 있습니다"라고 이미 떠도는 의혹이라고 밝힌 건 '박 전 대통령이 참사 당일 보톡스를 했다'는 사실을 암시한 것이란 얘기다. 대법원이 1991년부터 30년간 채택해온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으로 사실의 존재를 암시했다면 사실적시' 법리다. 종북 사건 1·2심 역시 같은 논리로 <조선일보> 기사는 명예훼손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김 대법관은 이같은 법리 적용에 제동을 걸었다. 김 대법관은 "전면적 공적 인물과 관련된 공적 관심사에 관한 의혹을 제기하는 형태의 표현행위가 명예훼손죄를 구성하는지 여부를 판단할 때에는 암시에 의한 사실의 적시로 평가하는 데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해당 법리를 폐기하지는 않고 조건을 달았다. 바로 2년 5개월 전 종북 사건에서 자신이 주심 대법관으로 내놓은 '공론의 장에 나선 전면적 공적 인물 이론'이다. 

김 대법관은 '세월호 7시간'이 공적 관심사임을 먼저 인정했다. 김 대법관은 "피해자(박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행적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었고, 피고인(박씨)이 궁금해하며 밝히고자 한 사실관계는 '피해자가 개인이 마약이나 보톡스를 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대통령인 피해자가 세월호 참사 당시 제대로 국정을 수행했는지 여부'이므로 공익 관련성이 크다"고 판시했다. 원심이 암시에 의한 사실적시로 특정한 박씨 말은 '악의적 공격 사안'이 아닌 '공적 사안'이란 말이다. 박씨 발언은 "(4·16연대 사무실) 압수수색에 대한 비판 기자회견을 기회로 삼아 지속적으로 제기하던 문제를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세월호 7시간은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공론의 장에서 얘기하던 건데 박씨가 재확인했다는 취지다. 나머지 요건 '전면적 공적 인물' 여부는 현직 대통령이 피해자라는 점에서 증명이 필요 없었다. 김 대법관 이론이 민사에서 형사로, 종북에서 세월호 7시간으로, 이정희에서 박근혜로, 변희재에서 박래군으로, 보수 대법관에서 진보 대법관으로 확장되는 순간이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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