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친구와 팔다리, 생계를 잃고도 바흐무트를 떠날 수 없는 우크라이나 남성
[우크라 전쟁] 친구와 팔다리, 생계를 잃고도 바흐무트를 떠날 수 없는 우크라이나 남성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2.12.19 05:45
  • 수정 2022.12.19 05: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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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바흐무트 부근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그라드 다연장 로켓 발사기에서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 바흐무트 부근 최전선에서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을 향해 그라드 다연장 로켓 발사기에서 로켓을 발사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살아갈 길이 막막하지만, 떠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CNN방송은 강화된 러시아의 포격으로 친구와 팔을 잃고서도 삶의 근거지를 떠날 수 없는, 우크라이나 최전선에 거주 중인 민간인 남성의 사연을 소개했다.

현재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선(戰線)을 이루고 있는 도네츠크 주 바흐무트 시에 사는 도시뱌체슬라브 타라소프(48)의 집 외벽은 폭격의 흔적으로 여기저기 구멍이 패어있었고, 창문이 날아가 버린 주변 건물들도 대부분 을씬년스럽게 텅 비어있었다.

최근 몇 달 동안 승기를 확실히 잡지 못하고 있는 러시아군은 화풀이라도 하듯이 바흐무트 시에 무자비하게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기는 전투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러시아군이 승리를 담보하기 위해 로켓과 미사일로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보병 병사들을 계속 보내 파괴된 잔해들 사이에서 전투를 치르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타라소프는 그동안 러시아군의 포격을 피해 지하실에서 생활했다. 그러다가 그는 지난주에 과감히 외출을 감행했다. 우크라이나의 전통 요리 보르쉬에 필요한 야채를 구입하기 위해서였다.

“무엇에 맞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피격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하지만 엄청난 힘이 밀어닥치면서 제 팔을 날려버렸습니다. 저는 그 상태에서 손으로 창자를 움켜쥐었습니다.”

그는 창백한 얼굴로 당시 상황을 뚜렷한 사진처럼 묘사했다. 

“그때 저는 그나마 가죽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았다면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창자가 사방으로 흩어졌을 겁니다.… 피가 너무 많이 흘러서 커다란 웅덩이처럼 고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타라소프의 신체를 훼손한 그 폭발로 그의 친구가 죽었고, 그는 포격이 멈추지 않자 자신도 곧 죽을 거라고 생각했다. 

“신께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타라소프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보이지 않는 섭리”가 그의 생명을 구했다고 믿는다. 그는 또한 자신을 픽업트럭에 싣고, 코스티안티니프카 시에 있는 병원으로 데려다 준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도 감사를 표한다. 코스티안티니프카 시에는 민간인 부상자를 위한 몇 안 되는 병원 중 하나가 있다.

그는 병원에 도착해 의사에게 팔다리가 남아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했다.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팔을 다시 꿰매 붙일 수 있는지였습니다. 나는 팔이 완전히 찢겨져서 간신히 매달려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랫배에 불이 나고 있었습니다. 창자가 터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방에 피가 낭자했었습니다.”

코스티안티니프카 시 의료진은 인프라에 대한 러시아의 반복적인 공격으로 야기된 정전과 단수(斷水) 상황에서도 의술을 멈추지 않았다. 지난주에는 조명과 난방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8시간 동안을 발전기에 의존해야 했다.

“가끔 전기가 나갈 때가 있습니다.”

이 병원의 외과 과장인 유리 미샤스티 박사(62)는 수술복을 벗지 않은 채 CNN에 이렇게 말했다.

“수도는 계속 공급되지 않고 시간 단위로 나옵니다. 엄청난 포격이 집중된 주말에는 물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월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주의 주도 도네츠크시의 시청 건물에 포탄이 떨어져 건물 곳곳이 파괴됐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10월 우크라이나 동부의 러시아 점령지인 도네츠크주의 주도 도네츠크시의 시청 건물에 포탄이 떨어져 건물 곳곳이 파괴됐다. [사진 = 연합뉴스]

그는 그날 오후에 접어들자마자 밀어닥친 한 여성의 수술을 막 마친 상태였다.

“그녀는 바흐무트 사람입니다. 포격 때문에 복부에 파편 상처를 입고 여러 장기가 손상된 채 들어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자들을 매일 봅니다. 매일 말이지요.”

러시아군이 바흐무트 점령 작전을 강화하면서 포격은 바흐무트에서 서쪽으로 25km 떨어진 코스티안티니프카 시에 더욱 근접하고 있다. 이달 초부터 도시가 거의 매일 포격을 받고 있다고, 병원장은 말했다.

의료진은 바흐무트 주변에서 끊임없이 발사되는 포탄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다른 환자가 곧 수술대에 누울 수 있다는 반갑지 않은 신호탄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포격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리게 되었습니다.”

이 병원에 배치된, 국경없는의사회(Medicins Sans Frontiers) 소속 외과의사 카산 엘 카파나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동료인 간호사 루시아 마론도 이에 동의했다. 

“전반적으로 인력의 이동이 더 활발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군인들, 더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소리에 익숙합니다. 어떤 소리가 위험한 것인지 어떤 소리는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 지역 관할 당국은 민간인들에게 몇 달 동안 그 지역을 떠나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러나 타라소프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의 오래된 산업 중심지에 속하는 바흐무트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고향을 떠나 더 안전한 지역을 찾으라는 권고는 불가능한 요청처럼 보였다.

“돈이 많으면 차라리 해외로 나가 살 겁니다.”

타라소프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나는 돈이 없고, 나의 모든 것들은 여기에 투자되어 있습니다. 돈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에게 바흐무트에서의 삶은 전쟁 전 그가 열심히 살았던 결과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그 삶이 이제 돌이킬 수 없게 변해버렸다.

“나는 오른손잡이였는데, 이제는 측정용 줄자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반인반수 좀비가 되어버렸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건축업에 종사했던 타라소프는 이렇게 하소연했다.

[위키리크스한국=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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