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유럽인들이 비행기를 버리고 기차로 갈아타는 이유.. 온실가스의 주범 ‘플라이트 쉐임’
[월드 프리즘] 유럽인들이 비행기를 버리고 기차로 갈아타는 이유.. 온실가스의 주범 ‘플라이트 쉐임’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3.20 05:35
  • 수정 2023.03.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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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 오를리(ORLY) 공항 [사진 = 연합뉴스]
프랑스 파리 오를리(ORLY) 공항 [사진 = 연합뉴스]

유럽 여러 나라들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여행을 축소하고 기차로 갈아타고 있다고, 19일(현지 시각) CNN방송이 보도했다.

기후 변화의 심각성이 날로 커지는 상황에서 온실가스의 주범으로 꼽히는 비행기 여행을 ‘플라이트 쉐임(flight shame)’이라고까지 부르는 가운데 제트 비행기보다는 친환경적 대안인 철도 네트워크를 찾는 유럽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단거리 항공 여행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네덜란드의 KLM과 같은 항공사가 특정 노선에서 철도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 국내 항공 노선을 폐지해서 기차 여행으로 유도하는 등 뚜렷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현재 유럽 본토에서 철도 산업은 가히 혁명에 가까운 바람이 불고 있다. 야간열차 서비스를 축소했던 상황이 역전되면서 새로운 고속철도 노선과 철도 운영 주체가 온라인에 등장하고, 여행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새로운 터널 연결을 모색하며, 신뢰성과 효율을 개선한 새로운 기관차가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스페인, 독일, 오스트리아에서 불고 있는 저렴한 기차표 공세도 변화를 부추기는 데 한몫하고 있다.

이 같은 철도 투자 확대로 유럽 항공망의 열차화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확실히, 대륙 여행을 철도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유럽 하늘이 더 맑고 푸르러지는 상황은 시간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들여다보면 이러한 목표는 아직은 먼 꿈처럼 보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환경 운동의 다른 노력들과 마찬가지로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다.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어느 것 하나 빠르게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유럽의 공항들이 금방 조용해질 것이라는 조짐 또한 보이지 않는다.

상징적 조치

올해는 지구 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국내 노선에서 단거리 비행 폐지를 약속하는 프랑스의 새로운 법안으로 힘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EU 관리들의 승인까지 취득한 이러한 조치의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EU 당국이, 프랑스가 단거리 비행 노선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해당 거리를 2시간 30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고속철도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여행자가 목적지에서 최소 8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차편이 충분히 제공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기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현재 여건으로는 파리 오를리 공항과 보르도, 낭트, 리옹을 연결하는 노선 3개만 폐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이 같은 결정은 파리 샤를 드골 공항에서 보르도, 낭트, 리옹, 렌으로 가는 노선과 리옹에서 마르세유로 가는 노선 등 5개 노선을 추가로 폐지하려는 애초 프랑스의 계획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를 두고 비평가들은 기후 문제에 대해 실제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입바른 소리만 하고 있는 꼴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프랑스의 단거리 비행 노선 폐지는 상징적인 정책으로 탄소 배출 감소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유럽 NGO 환경단체인 ‘수송과 항공(T&E : Transport & Environment)’의 항공 부문 책임자인 조 다르덴느는 이렇게 평가했다.

T&E는 프랑스가 폐지하고자 하는 3개 노선의 탄소 배출량이 국외선 배출량의 0.3%, 국내선 배출량의 3%에 불과하다고 추정했습니다. 여기에 프랑스 당국이 폐지를 추가로 추진하는 5개노선을 더해도 배출량 수치는 각각 0.5%와 5%에 머무를 뿐이다.

이 정도 수치는 대단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현재 항공산업은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약 2.5%를 차지하고 있지만, 항공기가 방출하는 다른 가스, 수증기 및 비행운으로 인해 기후 변화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더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더욱이 항공산업은 코로나19로 인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에 속하며, 미래의 가장 대규모 탄소 배출 산업군 중 하나로 꼽힌다. EU에 따르면 유럽 항공산업의 탄소배출량은 2013년에서 2019년 사이에 해마다 평균 5% 증가했다.

항공사는 다른 운송 수단과 달리 EU에 연료세나 관세를 전혀 내지 않는다. 여기에 비행기 티켓도 부가가치세가 면제된다.

EU 탄소규제로 中항공사 1천248억원 추가 부담 [사진 = 연합뉴스]
EU 탄소규제로 中항공사 1천248억원 추가 부담 [사진 = 연합뉴스]

예상되는 추가 조치

좋은 소식은, 제한적 영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국민적 감시가 강화되는 시점에서 항공업계로서는 당국의 조치를 무시하기 어려운 선례를 세웠다는 사실이다.

“프랑스 조치의 효과는 현재 범위에서는 너무 미미하여 배출량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기보다는 지속 가능성의 필요성을 환기시키는 조치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항공 컨설팅 회사 ‘알트에어 자문(Altair Advisory)’의 전무 이사인 패트릭 에드몬드는 이렇게 평가했다.

“그러나 이를 다른 각도에서 고찰할 필요도 있습니다. 항공업계가 자체적으로 탈탄소화(decarbonizing)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더 많은 제약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편, 초단거리 비행 노선에 강경한 조치를 취한 유럽 국가는 프랑스 뿐만이 아니다.

2020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철도로 3시간 미만이 소요되는 모든 항공편을 폐지한다는 조건으로 국적 항공사인 오스트리아 항공(Austrian Airlines)에 구제 금융을 베풀었다.

그 결과 비엔나-잘츠부르크 항공 노선이 폐지되었고, 반면에 대응하는 열차 서비스는 증가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단거리 노선인 비엔나에서 린츠까지 운항도 2017년에 철도로 이전되었다.

같은 해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오스트리아 공항에서 출발하는 350km 미만의 모든 항공편에 대해 30유로($32)의 세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2020년 실시된 조사에 따르면, 유럽 시민의 62%가 단거리 비행 금지를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다른 유럽 국가들도 단거리 민간 항공편 폐지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스페인은 기차 여행으로 2시간 30분이 안 걸리는 항공 노선은 2050년까지 단계적으로 축소할 계획을 밝혔다.

당연하게도 이러한 움직임은 항공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다.

유럽항공협회(ERA : European Regional Airlines Association)가 다른 여러 항공우주 산업 기관과 함께 의뢰해서 작성한 2022년 보고서에 따르면, 500km 미만의 모든 항공 노선을 다른 대중교통으로 대체하면 EU 내 탄소배출량의 최대 5%까지 절약할 수 있다.

“많은 정책 결정자들에게 단거리 비행을 금지하고 철도 산업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는 것은 대중의 인기를 얻기 쉬운 전략인데, 유럽에서는 특히 더하다 할 수 있습니다.”

ERA의 몬세라트 바리가 사무총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그러나 바리가와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은, EU 블록 외부로의 운항을 제한하는 조치는 취하지 않으면서 유럽 내 단거리 비행만을 제한함으로써 탄소 배출 허용량을 단계적으로 폐지하려는 조치는 이중의 기준이라고 비판한다.

장거리 비행이야말로 전 세계적으로 탄소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주범이다. ‘교통 지리학(Journal of Transport Geography)’에 실린 최근 논문에 따르면 500km 미만의 비행은 EU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27.9%를 차지하지만, 연소된 연료의 5.9%만을 차지한다. 이와 반면에 4,000km 이상의 비행은 EU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의 6.2%에 불과하지만, 47%의 연료를 소모한다.

“정부는 항공 탄소 배출의 가장 큰 배출원인 장거리 비행을 계속해서 무시하고 있습니다.”

T&E의 다르덴느는 이렇게 말했다.

“각국 정부는 비행 노선 폐지 문제를 다른 실질적 문제들에 대한 눈을 가리는 가림막으로 활용해서는 안 됩니다.”

철도로 전환하는 데 따른 장애물

철도 산업을 옹호하는 NGO ‘유럽을 위한 열차(Trains for Europe)’의 설립자 존 워스는, 최근 유럽에서 철도 산업이 새롭게 살아나면서 이탈리아 국영 항공사인 알리탈리아항공(Alitalia)의 운항 중단 및 폐업에 일익을 한 가운데 철도 산업은 이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파리에서 암스테르담, 프랑크푸르트, 바르셀로나로 가는 장거리 노선의 경우 비행기 손님을 열차로 유도하기 위해서는 고가의 열차표와 낮은 운행 횟수 문제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많은 영역에서 철도는 현재보다 훨씬 높은 복합 운송 수단으로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철도 회사들은 시장점유율 증대보다는 이익 극대화에 집중해온 것도 사실입니다. 철도로 더 많은 손님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공공 서비스 개념을 도입하거나 더 많은 경쟁을 도입해야만 달성할 수 있습니다.”

존 워스는 이렇게 지적했다.

도시 간 철도와 공항 사이의 연결성이 향상되면 단거리 비행의 필요성도 줄어들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합 티켓을 제공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워스는 덧붙였다. 예를 들어 기차가 연착되어 연결편을 놓친 경우 여행자는 항공업계에서 현재 연결 비행편을 제공하는 것처럼 다음 기차에 탑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환경은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및 스페인처럼 항공사와 철도 운영자가 협력하는 국가에서 잘 작동한다. 2023년 2월, 알리탈리아항공 후신인 ITA항공(ITA Airways)은 이탈리아의 국철 운영사와 연결되는 노선을 개발하기로 계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계 서비스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은 영역이다. 우선 위의 계획은 국내 항공사로 제한된다. 하지만 ‘Multimodal Digital Mobility Services’라고 하는 법안이 2023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서 채택되어 이러한 유형의 복합운송 여행을 보다 광범위하게 촉진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한다.

다시 프랑스 문제로 돌아가, 기차 여행 시간이 단축되고 운행 횟수가 증가하면 당국이 국내 항공 여행을 축소할 때 그 폭을 넓힐 수도 있다. 단거리 비행을 금지하는 현재의 조치는 3년 동안만 유효하다. 그러나 친환경 항공 기술의 발전은 결국 항공산업에 대한 관점도 바꿔놓을 수 있다.

현재 항공업계가 전기나 하이브리드 및 수소 에너지 연료 사용을 추진하는 가운데 해당 프로젝트 대부분이 초단거리 비행에 맞는 경비행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특히 단거리 비행은 항공 산업의 첫 번째 탈탄소화 목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단거리 비행을 축소하는 문제는 환경, 사회, 경제, 정치 및 기술 매개변수가 계속 진화하고 기후 위기가 계속됨에 따라 향후 몇 년 동안 관련 토론이 계속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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