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프리즘] “시리아 내전 피했으나, 수단 내전까지... 악몽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월드 프리즘] “시리아 내전 피했으나, 수단 내전까지... 악몽이 나를 떠나지 않습니다.”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3.05.21 06:56
  • 수정 2023.05.21 1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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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습받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州)의 마을 [사진 = 연합뉴스]
공습받은 시리아 북서부 이들립 주(州)의 마을 [사진 = 연합뉴스]

2년 전 고국 시리아의 내전을 피해 망명길에 올랐던 카림은 이번에는 수단에서 화염 한 가운데 놓인 자신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BBC는 20일(현지 시각) 시리아 내전을 피해 고국인 시리아를 탈출해서 수단에 정착했다가, 이번에는 수단 내전 때문에 발이 묶인 한 남성의 기구한 사연에 대해 보도했다.

현재 수단항(Port Sudan)에서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카림(23)은 수단을 벗어날 탈출구를 찾고 있지만, 모든 수단(手段)이 막히면서 잘못하면 시리아로 돌아갈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카림은 수단의 수도 하르툼에서 미화 500달러의 월급에 아파트와 자동차까지 제공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그 정도의 보수는 생계를 유지하고 시리아의 가족에게도 일부 송금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카림은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알고 지내던 여성에게 프로포즈를 할 계획이었으며, 그의 어머니에게 이런 계획을 귀띔해놓은 상태였다.

“수단에서의 삶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정도였지요.”

그는 음성 메시지나 문자를 통해 진행된 BBC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4월 15일, 수단 내전의 전투로 수도 하르툼이 파괴되기 시작했을 때 카림은 자신의 삶도 망가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이 잘 아는 한 시리아인이 총에 맞아 죽었다고 들려주었다.

4월 24일 아침, 자신도 같은 운명을 겪을까 봐 두려웠던 그는 24명의 다른 시리아인들과 함께 수도 하르툼을 떠나 홍해에 면한 수단항으로 대피했다.

수단항까지 이동하는 데 걸린 이틀간의 도로 여행은 그들에게 1인당 400달러라는 돈을 요구했다. 이 노선은 평소라면 요금이 40달러에 불과했던 거리였다.

그는 불운이 그와 동료 시리아인들을 뒤쫓아 다닌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정부군과 RSF 간 전투가 벌어진 수단 하르툼 국제공항 [사진 = ATI]
정부군과 RSF 간 전투가 벌어진 수단 하르툼 국제공항 [사진 = ATI]

“우리는 저주받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되고 있습니다.”

BBC는 그의 신변 보호를 위해 카림이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로 했다.

“우리는 시리아에서 겪었던 일을 이곳 수단에서도 정확하게 똑같이 겪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저주받았습니다. 나는 아직 살 날이 창창한 사람입니다.”

수단항에 발이 묶인 카림은 간신히 비행기에 올라 안전한 곳으로 떠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아시다시피 항상 돈이 문제입니다. 돈 있는 사람은 언제나 살아남지요.”

그는 한 모스크에서 휴대전화를 충전한 후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많은 시리아인들이 수단으로 피신했다. 그 숫자가 몇 명인지 공식 기록은 없지만, 일부 추정치는 15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돈이 있거나 집안이 부유하고, 이웃 국가들의 거주 허가를 받은 많은 시리아인들이 어쨌든 고국을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고, 카림은 들려주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처지가 못 됐다.

그는 시리아 중산층 가정의 막내였다. 그는 시리아 서북부의 튀르키예 국경 지대에 위치한 도시 이들리브에서 자랐지만, 몇 년 전에 알레포로 이주해 무장 세력들의 봉쇄 속에서 살았다. 그의 가족들은 그가 수단에서 번 돈에 의존해서 살았다.

BBC와 처음 접촉했을 때 카림은 자신이 처한 처지에 실망을 감추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적지들을 주워섬겼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제다에 가면 다른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아니면 에티오피아로 가도 괜찮습니다. 필요한 돈은 400달러입니다.”

그는 값비싼 관광비자를 구할 수 있는 돈이 없기 때문에 가까운 이집트는 꿈도 꾸지 못한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식량을 살 돈도 바닥났는데 어떻게 1,350달러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수단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1,000달러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그 돈은 수단항에 도착하는 과정에서 이미 다 써버렸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이 부정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카림이 남기는 음성 메시지는 점점 어두워져 갔다. 그의 선택지는 날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었다.

그는 항구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관리들과 사람들로부터 들은 새로운 소식을 기반으로 자신의 상황을 판단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배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사우디에 친지가 없었으며, 사우디에 정착하지 않겠다는 점을 입증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수단에서 군벌 간 무력 분쟁이 발생한 지 9일째 되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수도 하르툼의 프랑스 공군기지에서 프랑스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민간인들이 대피를 위해 수단 인근 지부티로 향하는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프랑스 외무부 관계자는 첫 비행기로 다양한 국적의 100명이 이미 대피했으며, 이날 저녁 출발하는 두 번째로 100명이 추가로 지부티로 향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 연합뉴스]
수단에서 군벌 간 무력 분쟁이 발생한 지 9일째 되는 지난달 23일(현지시간) 수도 하르툼의 프랑스 공군기지에서 프랑스를 포함한 다양한 국적의 민간인들이 대피를 위해 수단 인근 지부티로 향하는 수송기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검었던 머리카락이 백발이 되었습니다.”

또한 카림은 여권이 곧 만료되어 에티오피아나 다른 나라로 떠날 수도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그의 목소리는 망연자실하고,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들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알려줄 소식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신께 맹세컨대, 더 이상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검었던 머리카락이 부분적으로 백발로 변했습니다. 이제는 두려울 것도 없어서 다시 시리아로 돌아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습니다.”

그는 시리아로 돌아가면 병역 의무를 져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는 귀국은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해외에서 일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시리아로의 귀국길조차 돈이 많이 들고 만만치 않은 과업이 되어버렸다.

수단항에서 대피를 돕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는 BBC에 5월 15일까지 시리아행 항공편이 매일 운항될 것이며, 탑승 자격은 돈을 들여 티켓을 끊을 수 있는 사람들과 피난자 명단에 올라있는 사람들, 이렇게 두 부류에게 주어진다고 들려주었다.

자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시리아 여행사를 통해 티켓을 구입할 수 있으며, 대피용 좌석은 피난자 목록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제공된다. 그리고 노약자와 임산부 및 그 가족에게는 우선권이 주어진다.

상업용 티켓 비용은 450달러이다.

카림의 가족이 티켓을 구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모든 항공편이 예약 완료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3,000달러만 있으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꿈과 계획을 설명하면서 이 같이 말했다.

“300달러로 여권을 갱신하고, 이집트 방문비자를 산 다음, 여동생이 사는 터키로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유럽으로 갈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요즘 누가 나에게 3,000달러를 빌려주겠습니까?”

[위키리크스한국 = 최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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