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인터뷰] 갑질에 속절없는 보조출연자 "소모품 인식부터 바뀌어야"
[WIKI 인터뷰] 갑질에 속절없는 보조출연자 "소모품 인식부터 바뀌어야"
  • 최문수 기자
  • 승인 2023.11.03 13:21
  • 수정 2023.11.03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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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의 눈물' 보조출연자 "갑질에도 참고 견뎌야"
현장서 폭언·욕설 허다…항의하면 업계서 낙인
"근본적 쇄신 필요해, 소모품 인식부터 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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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보조출연자 에이전시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가 보조출연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 약 1억 5000만 원을 체불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 중에는 연기의 꿈을 펼치기 위한 사람들부터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전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이 가운데,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는 체불된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어 폐업을 신고하고도 이후 계속해서 보조출연자 모집을 이어온 것으로 전해져 이들의 배신감은 깊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결국 피해자들은 '사기' 의혹을 제기하며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 대표를 사기, 업무상 횡령, 강제집행면탈죄로 고소했다. 이 업체는 '삼식이 삼촌', '야한 사진관', '이재, 곧 죽습니다', '웨딩 임파서블', '폭염주의보' 등의 보조출연자를 책임졌다.

과거 '엑스트라'로 많이 알려진 보조출연자는 영화, 드라마, 광고 등 여러 작품에서 배우들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주·조연·단역 배우들이 연기를 하면 보조출연자들은 해당 장면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주변에서 각자 맡은 연기를 펼친다. 큰 동작이나 대사는 대부분 없지만 보조출연자가 없으면 주·조연·단역 배우들의 연기는 빛을 보지 못한다. 이들은 작품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대중들에게는 아직 생소하다. 이 말은 보조출연자의 열악한 상황 역시 큰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의미다.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 임금 체불을 포함해 업계 곳곳에서 부조리한 관행들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지만 반대 목소리를 내면 낙인이 찍혀 다시 발을 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 관련 지난달 23일자 본지의 보도 이후, 보조출연자들을 만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불합리한 관행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현장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일정이 잡히는 비정규적인 상황, 현장에서 보조출연자를 통솔하는 일명 '보출 반장'의 욕설 등 갑질, 갑작스레 출연이 취소가 되어도 다음 일자리를 위해 항의할 수 없는 현실 등 이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업계의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그리고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로부터 피해를 입은 보조출연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담아봤다.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 보조출연자는 어떤 직업인가

"보조출연자는 말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 등 주연, 조연, 단역 배우들 주위에서 대사 없이 뒤에서 움직이거나 하는 역할이다. 쉽게 말하면 옛날 말로 엑스트라라고 한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 보면 길거리에서 배우들이 대사하는 장면 뒤로 멀리 지나가는 행인들, 카페에서 주연 배우들이 대사할 때 카페 안 손님과 알바생들이다. 대사가 있는 카페 알바생 역할의 경우는 단역 배우들이 주로 한다"

"주연, 조연, 단역, 보조 출연으로 나뉘며 명칭처럼 드라마나 영화 광고 등 다양한 분야에 메인이 아닌 보조적인 역할로 완성도를 높여주는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행인, 가족, 친구, 주변인 등 간단한 역할이지만 없어서는 안 될 출연자들이라고 생각한다"

"보조출연자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물에서 주연, 조연 배우들 사이에서 행인 혹은 하나의 풍경이나 소품처럼 배치된 출연자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 열악한 보조출연자 환경, 이유는?

"촬영 스텝들은 당연히 안정적인 직업이고 그들이 주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보조출연자들은 그들이 필요한 장면에 필요한 인원만큼 불러주기 때문에 당연히 스케줄을 받아서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조출연 에이전시가 드라마 제작사에서 작품을 따서 보조출연자들을 필요한 만큼 쓰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하려면 싫어도 참는 편이 많았다. 물론 다른 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일단 스케줄 펑크가 나면 일을 받기 힘들다. 나는 개인 사비로 펑크를 안 내려고 부산까지 개인 출발로 내려간 적도 있다. 원래 여의도에서 주로 집합을 하는데 집합 시간에 늦어질 것 같으면 현장으로 바로 가도 되겠냐고 물어보고 현장으로 오라는 것이 대부분이다. 자차가 없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인데 스케줄 펑크 및 반납을 안 하려고 택시를 타고 개인적으로 출발한 적도 많다. 모든 회사에서 이것들은 싫어한다."

"스펙이나 자격증이 필요한 분야가 아니기에 접근성이 좋아서 사람들이 모이는 편이지만 현장에서 있는 일이 규정대로 돌아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고 보조출연자에 대한 인식 자체가 좋지 않은 점이 크다고 생각한다. 일을 하더라도 몇몇 반장들의 눈에 차지 않으면 욕설이나 심한 말을 들어야 하고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친한 관계라면 눈을 감아주거나 편의를 봐준다. 보조출연자는 다음 일거리를 받고 싶으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기에 갑질이 심해지는 구조라고 생각한다. '싫으면 그만둬, 할 사람 많다'는 의식이 갑질에 기여하고 있다. 더욱이 현장에서도 보조출연자의 영향력이 강하지 않기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도 한몫하는 것 같다."

■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 대표 만행, 겪은 바를 얘기하자면…

"출연자로서의 의무사항으로 당연히 의상을 잘 준비해서 가야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소리를 하면서 반납시키고 집에 보내는 것은 너무하다는 생각이다. 조는 사람 사진을 찍고 이름을 적고 집에 보내는 일도 다반사였다. 1분이라도 지각하면 집으로 돌려보냈다. 1분 지각해도 집으로 돌려보냈다. 리스트를 작성해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출연을 불가하게 만드는 일도 있었다. 성질부리고 소리 지르고, 심하게 당한 출연자는 7년 동안 공황장애에 시달렸다고 한다"

"사실 의상은 애매한 부분이 많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운용되고 있다. 물론 상식적인 부분에서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일치되는 부분도 있기에 큰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의상이 적거나 애매한 부분은 있기 마련이다. 각 회사마다 예시로 사진을 올리기는 하지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현장에서 옷이 맞지 않더라도 보통 돌려보내지는 않는다. 일을 하러 왔고 출연자도 시간을 빼서 왔는데 도리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상 때문에 돌려보내는 그 대표를 보면 그릇을 알 수 있다고 본다"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해당 사진은 본 기사와 무관.

■ 다른 현장에서 겪었던 부조리도 있었나

"우천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취소가 아니라 장면 변경 등으로 취소를 너무 쉽게 하여 미리 잡혀있는 일정들을 전날 저녁 취소해 스케줄을 못 잡게 하거나 강제 휴식하게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2박 3일 숙박 일정, 심하게는 한 달 전에 스케줄을 줘 놓고 당일 전날 취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른 스케줄을 대체할 수도 없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또, 출연 여부는 출연 여부는 보조출연자 관리 업체 지부장들 손에 달려 있어 불친절 갑질이 심하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스케줄 반납을 하게 되면 한동안 일을 받을 수 없는 패널티가 있다. 여름이나 겨울에 실내 촬영을 할 때 소음 때문에 에어컨을 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어떤 촬영장에서는 보조출연자는 스텝들이 마시는 물을 못 마시는 경우도 있었다. 보조출연자 물을 따로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쉬는 시간 없이 길게는 5~6시간 촬영한다. 그러면 우리 쉬는 시간은 촬영 안 들어갈 때 대기하는 시간인데 어떤 현장은 화장실, 흡연하러 가는 것조차 용납을 안 하는 경우도 있다. 기본 점심은 거르고 늦게까지 찍는 촬영장도 있다. 작년 여름에는 땡볕에 쉬는 시간 없이 계속 서서 움직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올해 여름에는 사극인데 뜨거운 여름에 땡볕에서 대기시키고 점심때 갑옷도 벗지 말고 입은 채로 식사하러 가라고 했다. 아는 동생이 '좀 벗으면 안 되냐고' 하니 말 안 들으면 다시 나오지 말라고 하고 이름이 뭐냐고 명단까지 적기도 한다. 요즘 실태가 이렇다. 특히 드라마 보다 영화 쪽이 더 심하다"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가 담당하던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드라마 특성상 미성년인 아이들이 많았고 어떤 장면에서 리액션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감독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몇 번을 다시 촬영했다. 그 장면만 끝나면 점심을 먹기로 했기에 짜증이 난 웨이브보조출연 에이전시 대표는 어떤 아이를 벽에 밀치면서 '너희들이 장애인이야? 왜 제대로 못 해? 너희들 때문에 촬영이 딜레이 되고 있는 거야. 일을 하러 왔으면 제대로 해야지"라는 식으로 비난했다. 그런 말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주눅이 들었고 일하면 어쩔 수 없이 듣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중 한 명이라도 감독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지적했다면 그 촬영장에서 욕을 듣는 사람은 없었겠지만 아무도 그러지 못했다. 그런 현장에서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나중에 자라서 그 대표의 행동을 따라 하지 말란 법도 없다"

■ 폐쇄적인 업계, 변화 위해선 무엇이 달라져야 하나

"최소한의 생계유지비는 보장이 되는 구조이기를 바란다. 지부장, 반장에게 전권이 있어 일을 골고루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반장에게 직접 일을 받기 위해 상납을 하는 사람까지 나오고, 실력이 아닌 친분으로 일을 받으려고 이상한 자리까지 합석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지금은 반장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지고 있어 많이 인격적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막말에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제작팀에게 잘 보이려는 것은 알겠지만 보조출연자들에게도 인격이 있는데 함부로 말하고 심지어는 욕까지 하는 일들은 없어야 한다고 본다. 반장들과 지부장들의 비인격적인 갑질이 근절되기를 바란다"

"변할 리가 없겠지만 제작사부터 보조출연자들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영화에 주연 및 조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단역 배우와 보조출연자가 있어야 한 작품이 완성된다. 보조출연자가 필요 없다면 그냥 주연 및 조연 배우만 해서 작품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 보조출연자들도 엄연한 인격체이고 한 작품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요소다. 이 점들을 감독, 연출, 제작사들이 알아줬으면 한다"

"우선 일을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동등하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계약서가 자세하게 지켜주고 그걸 지켜야 하는 인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부분들을 감독이 잘 조절해야 한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촬영장에서 당시 모 대표가 보조출연자들을 향해 강하게 말하자 당시 감독이 직접 나서 지적을 하자, 그 대표의 태도는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었다. 감독의 힘이 이렇다. 현장에서는 감독이 제일 권한이 크기에 그만한 책임이 있는데 권한만 행사하는 감독이 많다는 점이 안타까운 일이다. 10년 뒤에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보다 덜 일어날 수 있게 내 답변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

[위키리크스한국=최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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