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의 위치다 카운티 라 살레 스트리트에 벽돌로 지은 4층짜리 건물이 서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층건물’로 명명된 이 건물은 미국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사기꾼과 눈 먼 투자자들의 사연, 또 투자 계약을 할 때 모든 문장들을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안고 있다.

부동산 계약이나 보험 계약, 투자 계약 등 이런저런 계약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보통 계약서의 깨알 같은 문구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중개인이나 모집인 등의 권유를 따르지만, 실제로 문제가 되었을 때는 계약서의 바로 그 문구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빌딩인 것이다.

20세기 초 텍사스의 위치다 카운티에는 석유로 인한 호황 덕택에 2만 명이 넘는 주민들이 새로 유입되고 인구 숫자가 두 배로 불어날 정도로 경기가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그 중에서 위치다 폴스(Wichita Falls)는 타오르는 경기의 허브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사업들도 번창하고 있었다.

철도업에 종사하던 어거스트 뉴비라는 사람이 1906년 라 살레 스트리트와 7번가 코너에 1층짜리 건물을 짓고 ‘뉴비 빌딩’이라 명명했다. 이 건물은 그저 사무실 용도로 사용되는 평범한 건축물에 불과했다. 하지만 경기가 불타오르자 이 도시에 필요한 사무 공간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1919년 이 뉴비 빌딩에 세 들어 석유 건설 회사를 운영하던 J.D. 맥마혼은 늘어나는 사무 공간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뉴비 빌딩 옆 빈 부지에 건물을 새로 지을 것을 제안했다.

맥마혼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시의 이미지에 걸맞은, 당시로서는 초고층 빌딩을 짓겠다고 공언했다. 그의 계획안은 상당한 주목을 끌었고 투자자들은 그에게 돈을 싸들고 찾아들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은 맥마혼에게 20만 달러를 안겨줬는데, 이 돈은 현재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270만 달러 정도 된다.

맥마혼은 공사를 시작하면서 땅 주인의 공식적인 동의도 없이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불과 4층짜리 고층건물(?)이 완공되고 나서야 자신들의 투자에 뭔가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놀랍게도 새로 지어진 빌딩의 전체 높이는 40피트(12미터), 길이는 12피트(3.6미터), 폭은 9피트(2.7미터)에 불과했다. 게다가 맥마혼이 고용했던 엘리베이터 설비회사가 중간에 철수를 해버려서 방문객들은 건물 외부에 설치된 사다리를 이용해 오르락내리락 해야 했다.

나중에 좁은 계단이 가설되었지만 건물 자체가 워낙 협소해서 그 계단은 건물 내부 인테리어 공간의 25%나 차지했다.

일이 잘못된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투자자들은 맥마혼을 고소하고 나섰지만, 맥마혼의 설계도 청사진에는 건물의 높이가 480피트가 아닌 480인치(12미터)로 표기되어 있었다.

투자자들은 단 한 번도 설계도를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고, 건물의 실제 규모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투자자들은 맥마혼을 향해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었다.

건물이 완공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맥마혼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물론 그에게 지불된 20만 달러도 그와 함께 사라졌다. 이후 맥마혼에 대한 소식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고, 도시의 시민들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새로운 건물, 뉴비-맥마혼 빌딩을 어찌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에 빠졌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층건물(?)’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빈 채로 있다가 1939년 화재가 일어나 내부 인테리어는 전소되었다. 위치다 폴스의 많은 주민들은 이 건물의 완전한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후 이 건물은 여러 번 붕괴 위기를 겪었지만 일부 주민들의 노력으로 서 있을 수 있었다.

이후 이 건물에는 이발소, 레스토랑 등 여러 사업체들이 입주했다가 다시 빈 채로 1990년대까지 시간이 흐른 후 마빈 그로브스 일렉트릭이라는 회사가 2000년 번디, 영, 심스앤포터라는 회사와 공동으로 3,748달러에 매입해 리모델링했다.

시로부터 약간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 공사를 시작한 후 뉴비-맥마혼 빌딩은 2005년 완전히 새롭게 변모했다.

오늘날 이 건물에는 골동품 가게와 예술 작업 스튜디오가 입주해있다. 이 빌딩은 텍사스의 역사적 랜드마크로 지정되었다. 또 이 건물은 국가 사적지로 등록되었고 위치타 폴스의 유적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위치타 폴스의 ‘세계에서 가장 작은 고층건물’은 이 도시에서는 반드시 둘러보아야 하는 명소가 되었으며, 방문객들에게 경기가 불타오르는 시대에는 반드시 사기꾼이 끼게 마련이고 이런저런 사건들이 뒤따른다는 웃지 못할 교훈을 주고 있다.

같은 사건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우리 민법은 중요 계약에서의 ‘착오’를 인정하고 있다. 만일 10억을 착오로 인해 1억으로 잘 못 표기하였다면 법원은 전후의 정황을 참작하여 10억으로 인정할 것이다.

그러나 480피트와 480인치의 문제를 민법상 ‘착오’가 인정되는 실수로 볼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4층짜리 건물도 분명히 멀쩡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6677sky@naver.com

최석진 기자 다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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