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와 스냅백, 그 뫼비우스의 띠
[조문정의 외교 프리즘] 트럼프와 스냅백, 그 뫼비우스의 띠
  • 조문정 기자
  • 승인 2019.04.06 08:27
  • 수정 2019.04.06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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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사진=트럼프 대통령 인스타그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사진=트럼프 대통령 인스타그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스냅백(snapback)과 인연이 참 깊다. 물론 만겁의 인연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언론에 노출된 공식적인 인연만 대충 꼽아봐도 크게 네 가지는 된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인연은 톱니바퀴처럼, 혹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엮여 있다. 이쯤 되면 인연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스냅백의 첫 공식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공화당 대선후보 시절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거 구호가 적힌 빨간 야구모자를 쓰고 유세에 나섰다. 구호를 줄여 MAGA Cap이라고도 불리는 이 모자의 종류가 바로 스냅백이다. 스냅백은 뒤쪽에 똑딱단추가 달려 착용자의 머리 크기에 맞게 사이즈를 조정할 수 있다. 이 MAGA 스냅백의 가격은 25~55달러 선이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5달러짜리 모델을 기준으로 개당 이윤이 8달러인데, 2016년 6월까지 총 8만4천 개가 팔려 트럼프 대선본부에서 약 67만2천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이 스냅백은 수차례 품절됐고 그해 올해의 심볼로 선정되기까지 했다. 어쨌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스냅백을 착용하기까지 했으니 그 인연이 얼마나 깊을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외신에 포착된 트럼프 대통령의 모습을 보면 그의 스냅백 사랑은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미지=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미지=연합뉴스]

두 번째 인연은 그가 후보시절이던 2015년에 시작돼 2018년 5월에 끝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가 2015년 7월 타결한 ‘포괄적공동행동계획, 즉 ‘이란핵합의(JCPOA)’를 “미국이 지금까지 했던 거래 중 최악이자 가장 일방적인 합의 중 하나”라고 비판하며 지난해 5월 탈퇴했다. 이 합의의 골자는 이란이 핵개발을 중단하는 대가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다. 이 합의에서 일몰조항과 함께 중요하게 언급되는 부분이 바로 스냅백인데, 스냅백은 제재를 해제하되 이란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으면 제재가 자동으로 복원되는 조치다. 당시 핵협상에 참여했던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과 독일), 그리고 유럽연합으로 구성된 공동중재기구(Joint commission)에 단 한 국가라도 이란의 제재의무 불이행이 접수되면 곧바로 유엔 안보리에 회부된다. 제재복원 여부는 다수결에 따라 결정되나, 안보리 회부 이후 30일간 결론이 나지 않으면 기존 제재가 자동으로 복원된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일러스트=연합뉴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일러스트=연합뉴스]

세 번째 인연은 2월 말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의 기자회견에서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최 부상은 3월 15일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트럼프 대통령이 ‘스냅백’을 조건으로 한 제재완화에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담에서 우리가 현실적인 제안을 제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문에 ‘제재를 해제했다가도 조선이 핵 활동을 재개하는 경우 제재는 가역적이다’라는 내용을 더 포함시킨다면 합의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신축성 있는 입장을 취하였다”고 말했다. 북한이 스냅백을 전제로 한 조건부 제재해제를 수용할 수 있다는 뜻을 적극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일러스트=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일러스트=연합뉴스]

네 번째 인연은 예단하긴 이르다. 미국이 새로운 미중 무역협정에 스냅백 조항을 삽입하려고 하자 중국이 불공정한 조항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류허 중국 부총리는 3~5일(현지시간) 이틀간 워싱턴 USR 청사에서 무역협상에 돌입해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 이 합의안에 따르면 중국은 2025년까지 미국산 콩과 에너지 등 1차 상품 수입을 대폭 늘리고 중국 내 미국 기업의 출자 제한을 폐기해야 한다. 협상은 중국이 지식재산권 도용과 기술이전 강요 등의 문제를 최초로 인정하면서 급물살을 탄 듯했으나 무역협정 이행을 강제하는 장치와 미국이 기부과한 고율관세 철회 시점 등은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러스트=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일러스트=연합뉴스]

이 네 가지 인연이 서로 연결되는 방식도 흥미롭다. 그 연결고리는 바로 ‘북한’이다. 두 번째 인연인 이란핵합의는 세 번째 인연인 북핵 협상과 관련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핵합의를 파기함으로써 북한에 ‘이란보다 더욱 강력한 합의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세 번째 인연인 북핵 협상은 네 번째 인연인 미중 무역협상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직접적으로 ‘중국배후론’을 제기하며 북중 밀착을 경계한 이후 북한과 중국은 밀착행보를 자제해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 전후, 그리고 하노이 회담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만나 북중 밀착을 과시했으나 하노이회담 결렬 후에는 시 주석을 만나지 않고 귀국했다. 고율 관세를 주고받으며 미국과 무역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국으로서도 미국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황이다.

후보자 시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후보자 시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사진=AP=연합뉴스]

첫 번째 인연은 북한이라는 연결고리로 이어진 이 세 가지 인연들의 종속변수다. 이 세 스냅백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트럼프 대통령의 2020년 재선 승리에 지장이 없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빨간 스냅백을 쓰고 재선 캠페인 현장을 누빌지는 예단할 수 없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supermoon@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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