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공정위의 태광그룹 총수 고발과 ‘합리적 의심’ 논란
[WIKI 프리즘] 공정위의 태광그룹 총수 고발과 ‘합리적 의심’ 논란
  • 강지현 기자
  • 승인 2019.06.17 15:49
  • 수정 2019.06.17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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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전 종결된 사안... 공정위 무리한 조사, 모호한 과징금 문제로 논쟁 확대 가능성
김성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태광그룹 고발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성삼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장이 17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태광그룹 고발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17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이 자신의 가족이 지분 100%를 가진 회사를 살찌우기 위해 그룹 계열사들에 김치와 와인을 억지로 팔아넘겼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태광그룹 소속 19개 계열사가 총수일가가 100% 지분을 보유한 '티시스'의 사업부인 '휘슬링락CC'로부터 김치를 고가에 구매했고, 역시 총수일가 지분율 100%인 '메르뱅'으로부터는 합리적 기준 없이 와인을 사들인 사실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이에 따라 이 전 회장과 김기유 그룹 경영기획실장은 물론 태광산업과 흥국생명 등 19개 계열사 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공정위는 또 과징금 총 21억8천만원을 부과했다.

이날 공정위 발표와 관련, 가장 큰 쟁점 중 하나는 공정위가 검찰에 태광그룹을 고발하면서 이 전 회장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 2월 공정위원장이 전체 위원 회의를 하면서 ‘정황상 이호진 전 회장이 계열사에 김치, 와인 고가 판매를 지시했다’고 말했고, 이 발언을 계기로 이 전 회장을 고발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며 “향후 검찰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회장의 지시 여부가 중요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공정위의 논리는 태광그룹 계열사들이 턱없이 비싸게 김치, 와인을 구입한 것은 회장 지시가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나들며 달린다면, 경찰은 음주운전 차량이라고 의심해 차를 세우고 음주운전 여부를 측정하게 되고, 영장 없이 몸을 수색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 논리적으로 누가 판단해도 의심이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는 ‘합리적 의심’(reasonable suspicion)을 제기하게 된다. 합리적 의심은 구체적이고 명확한 사실과 정황을 토대로 하며, 각국의 형사소송법상 기준이 되고 있다.

‘합리적 의심’은 여러 차원에서 제기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태광그룹의 경우 또 다른 차원에서 제기되는 '합리적 의심'은 반대의 시각이다. 수조원을 주무르는 재벌 총수가 주주들 배당금을 챙기기 위해 과연 김치, 와인 구매를 직접 지시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A그룹의 한 임원은 “일반적으로 조단위 규모의 대기업 총수들의 경우 각 계열사에서 받는 자신들의 연간 배당이 어느 정도 되는지도 실무진들이 보고해야 아는 경우가 많다”며 “추후 논란이 될 수도 있는데, 배당금을 챙기기 위해 김치, 와인 판매를 지시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날 발표에서 “태광 19개 계열사가 2년 넘게 김치와 와인 구매를 통해 총수일가에 제공한 이익은 33억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태광그룹의 주력사인 태광산업의 2018년도 매출은 3조1,087억원이었다.

K법무법인의 대기업 담당 변호사는 “이 전 회장의 경우 실무 임원으로부터 ‘계열사들을 통해 이렇게 구매하도록 했다’는 보고는 받을 수 있었겠지만, 직접 지시했다고 하기에는 금액이 너무 작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검찰 조사 과정에서 이 회장의 지시 여부, 증거나 증언 여부 등이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정위는 조사 결과, 태광그룹 계열사들은 2014년 상반기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그룹 계열 골프장인 휘슬링락CC가 공급한 김치 512t을 95억5천만원에 구입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김기유 실장이 김치 단가를 종류에 관계없이 10㎏에 19만원으로 일방적으로 결정한 후 계열사별 구매 수량까지 할당해 구매를 지시했고, 각 계열사는 이를 받아 다시 부서별로 물량을 나눴다. 계열사들은 이 김치를 직원 복리후생비나 판촉비 등으로 사들여 직원들에게는 급여 명목으로 택배를 통해 보냈다는게 공정위의 설명이다.

휘슬링락CC는 원래 동림관광개발(총수일가 지분 100%)이 설립한 회원제 골프장이었으나 영업부진으로 고전하다 티시스에 합병됐는데, 합병 이후 티시스의 실적까지 나빠지게 되자 이를 만회하고자 '김치사업 몰아주기'에 나서게 됐다는 것이다.

김치 고가 매입을 통해 휘슬링락CC에 넘어간 이익은 25억5천만원 이상이며 이는 대부분 이 전 회장과 가족들에게 배당 등으로 지급됐고, 와인 대량 매입을 통해 메르뱅에 제공된 이익은 7억5천만원이며 이 전 회장의 부인 등에게 현금배당, 급여 등으로 제공됐다고 공정위는 밝혔다.

김성삼 기업집단국장은 "이번 조치는 대기업 계열사들이 일사불란한 지휘체계 아래에서 합리적 고려 없이 상당한 규모의 내부거래를 통해 총수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한 행위에 대한 첫 제재"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안은 4년 전 종결된 사안인데다 국정조사에서 2년 연속 이슈가 됐던 것이다. 메르뱅은 무상 증여했고 휘슬링락은 계열사에 매각해 원천적으로 논란의 여지를 없앤 사안인데 공정위가 뒤늦게 처분한다는 것은 과잉 처분이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자칫하면 행정소송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게 재계 일각의 분석이다.  

실제 공정위는 무리한 조사와 일부 불명확한 기준의 과징금 탓에 숱하게 문제를 일으켜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추산한 자료를 살펴보면, 해당기간 공정위가 담합으로 판정한 사건 중 기업이 행정소송을 제기해 최종 대법원까지 올라간 사건은 197건에 이른다. 이중 공정위가 패소한 사건은 일부 패소까지 포함해 87건이다. 패소율은 44%로 같은 기간 정부 기관의 행정소송 패소율 27.7%와 비교하면 높은 수준이다.

김상조 위원장 취임 후 전체 공정위의 행정소송 패소율(최근 5년간 일부 패소까지 포함 23.6%)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공정위의 규제제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시각은 여전하다. 특히 조사에 있어 적법한 절차 준수와 ‘성과 올리기’ 식 과징금 부과를 지양해야 한다는 기업들의 의견이 많은 상황이다.

무리한 조사와 이후 부과되는 과징금은 공정위에 부메랑이 되곤 한다. 환급과징금과 그에 따른 이자다.

대법원은 지난 2015년의 경우 라면업계에 부과된 과징금이 전액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공정위는 해당 과징금을 업체에 전액 환급해야 했다. 환급과징금에 붙은 이자만 139억원이다. 공정위가 물어내는 돈은 세금이다. 공정위는 발표 때 생색내고, 무리한 조사에 따른 이자 부담은 국민이 하는 셈이다.   

[위키리크스한국=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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