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토론회]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죄인가 - 권재열 교수 발표 [전문]
[삼바 토론회]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이 무슨 죄인가 - 권재열 교수 발표 [전문]
  • 정예린 기자
  • 승인 2019.07.16 17:22
  • 수정 2019.07.17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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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권재열 교수.[사진출처=위키리크스한국DB]
권재열 교수.[사진출처=위키리크스한국DB]

2017년 사드사태로 촉발된 중국의 지속적인 보복으로 인하여 지금까지 몇몇 대기업들이 고전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제대로 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해 대한민국 경제가 총체적 난국에 빠진 것을 기억하고 있다. 야속하게도 역사는 반복되고 있다.

무슨 말인가? 최근 연일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는 정치권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에 대해 대기업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이 정치-외교적인 이유로 야기된 것이라고 믿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한일간의 갈등을 기업 탓으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회계영역에서도 국내의 어느 대기업을 사지(死地)로 몰고 있는 것을 보면 정부의 기본입장은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원회는 구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 제13조에 의거해 런던에 소재한 비영리 민간기구인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가 작성한 국제회계기준(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IFRS)을 우리말로 옮긴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 즉 이른바 한국판(Korean version) IFRS(이하 ‘K-IFRS’)을 2011년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중에 IFRS를 도입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IFRS를 도입하지 않고 있으며,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K-IFRS는 원칙중심(Principle-based)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K-IFRS는 각종 회계처리에 관련된 나열식 규칙이나 규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회계처리의 적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원칙과 근거만을 제시하고 있다.

K-IFRS는 오랫동안 한국의 회계제도의 축을 형성해 왔던 규정중심(Rule-based) 회계기준을 폐기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규정중심의 감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 때문에 ‘회사와 감사인이 느끼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은 증폭되고 있다.

구 외부감사법에 따른 형사책임도 다른 국가의 관련법제와 비교할 때 상당히 무거운 편으로 평가받았었다. 구법 하에서도 형사책임과 별도로 회계부정에 대해 민사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 과태료와 같은 행정제재도 부과할 수 있었다.

2018년 11월부터 시행된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은 이에 추가하여 기존의 처벌을 상향함과 동시에 과징금제도까지 두고 있다.

구법(2003. 법률 제69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0조 제1항 제8호가 “회계처리 기준에 위반하여 허위의 재무제표·연결재무제표 또는 결합재무제표를 작성·공시한 때”에 대하여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한 바 있었는데, 이러한 처벌이 과도하여 비례원칙에 위배되는 것인지 여부가 문제되었지만 대법원이 합헌으로 판단한 바 있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하는 것은 구법상 허위의 재무제표 작성 행위에 대한 처벌이 범죄와 비례관계가 있는지에 관하여 의문이 제기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현행 외부감사법은 위의 죄를 최고 무기징역형으로 정하여 처벌의 수위를 상향하고(제39조 제2항 제1호) 이 죄에서 파생되어 외부감사인이 부담하는 2차적 책임, 즉 허위감사보고서를 작성한 행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처벌할 것을 규정하는 등 지나치게 과도한 처벌을 예정하고 있다.

회계처리기준은 금융위원회로부터 위탁을 받은 한국회계기준원이 정하며(제5조), 회계감사기준은 한국공인회계사회가 정하도록 권한이 위임되어 있다(제16조).

문제는 위의 각 기준의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추상적일 뿐만 아니라 다의적 표현이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점이다.

특히 K-IFRS는 IFRS를 우리말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다보니 문맥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까닭에 가독성이 떨어져서 원문을 반드시 참조하여야 한다는 자조적인 푸념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수범자의 입장에서 법규범의 의미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외부감사법상의 처벌이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외부감사법이 명확하지 않은 회계처리 기준이나 회계감사 기준을 범죄구성 요건으로 하여 허위재무제표작성죄 및 허위감사보고서 작성죄의 최고형을 대폭 상향시킨 것은 위헌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모호한 기준으로 인하여 수범자인 기업들과 외부감사인의 부담이 크게 증가했다는 점이다.

어느 실증적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K-IFRS가 도입된 후 기업회계담당자들이 재무제표 작성비용이 현저히 증가하였다고 평가했고, 외부감사인의 84.6%가 감사환경이 악화되었다고 응답했다.

무엇보다 K-IFRS의 도입 이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과 기준 해석이 곤란하다는 점, 문서화의 증가가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정부가 내용이 불명확한 회계처리기준과 회계감사 기준을 시행하면서도 그 불명확성으로 인한 비효율을 수범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기업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러한 부담을 져야 하는가?

검찰은 회계전문가가 아니다

회계전문가가 아닌 검찰이 전문성이 부족한 까닭에, 회계를 제대로 처리한 회사와 이를 제대로 감사한 외부감사인에 대하여 법률을 위반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를 ‘1종오류’라 함)과 제대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회사와 외부감사인에 대하여 법률 위반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할 가능성(이를 ‘2종 오류’라 함)이 있다.

검찰과 회계 수사의 오류 문제.

실제로는 1종 오류와 2종 오류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스스로가 전문가라고 자평(自評)한다면 1종 오류와 2종 오류는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예컨대, 제1심에서 역시 회계전문성이 미흡한 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받아 들어 1종 오류가 발생하면 회사 등은 법원의 판단에 불복할 가능성이 크며, 제2심 또는 상고심을 통해 그 오류가 제거되어야 한다.

따라서 예컨대, 법적으로 별문제가 없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제1심에서 유죄가 되고 제2심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받는다면 그 만큼 회사 등으로서는 추가적인 시간과 자원을 낭비한 것으로 된다. 그러한 과정 중에 회사 등의 주가가 추락하거나 명예가 실추하는 것은 어떻게 보상받을 것인가? 만약 2종 오류가 발생하면 회사 등은 검찰의 판단을 기꺼이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 결과 중요한 오류가 묻혀버리게 되어 사실상 검찰, 더 나아가 법원에 의한 사후적 구제는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실패로 끝나게 된다.

따라서 2종 오류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면 회사 등이 장래에 법률위반을 위험이 높아지게 될 것이어서 검찰 판단의 효과성(effectiveness)은 상대적으로 떨어지게 된다.

회사 등은 형사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는 검찰의 판단경향을 염두에 둘 수 밖에 없다.

회사 등은 제1종의 오류 ― 성실하게 회계처리 또는 회계감사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그릇되게 판단하여 법률위반책임을 떠맡게 되는 상황 –를 염려하여 당초부터
책임을 피한다는 단순한 목적에서 과도하게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

1종 오류로 인한 비용이 2종 오류로 인한 비용보다 더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검찰의 기소결정 여부는 회사 등의 의사결정상의 위험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킨다.

회사 등이 과도한 문서화작업 및 의견조회 등과 같이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취하는 데 많은 비용을 들여야 한다면 이는 회사 등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는다.

때문에 검찰이 제대로 된 판단능력이 없다면 검찰도 보수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정리=위키리크스한국 정예린 기자]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로 위기감 증폭되는 삼성. [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로 위기감 증폭되는 삼성.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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