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유죄'를 직감한 안태근의 '날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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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여진 기자
  • 승인 2019.07.18 19:58
  • 수정 2019.07.19 0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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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항소심 선고 스케치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보복을 가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하고 인사보복을 가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고 구속된 안태근 전 검사장이 지난 5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항소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8일 오후 2시 12분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서관 318호 법정. 재판장인 이성복 부장판사는 오후 재판 세 번째 피고인을 호명했다. 

"피고 안태근"

수감 중인 피고가 이용하는 문으로 파란 계열 셔츠에 짙은 정장을 입은 남성 한 명이 들어왔다. 하얘진 그의 머리카락은 초조한 자신의 표정을 대변하는 것만 같았다. 입구에서 세 발짝 걸었을까. 누군가를 보고 양팔을 몸에 붙인 채 허리가 젖힐 정도로 고개를 숙였다. 피고인석으로 이동한 뒤로는 재판장에 시선을 고정한 그는 안태근(46·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부 검찰국장(검사장)이다. 

굳이 피고 직업은 무엇이고, 주민등록번호가 무엇인지 확인하는 평소 절차는 없었다. 전직 검사장을 심판하는 건 온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을까. 이 부장판사는 판결 이유를 설명하기 전 심경을 드러냈다. 

"이 사건은 오랫동안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공소 유지와 변론에 심혈을 기울여 재판부도 고민이 많았다"

고민의 배경엔 검찰 인사업무에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적용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2010년 10월 30일 그날, 안태근은 기억에 없다 했다
안 전 검사장은 2015년 8월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면서 그해 하반기 검사인사에서 서지현(46·33기)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도록 인사 담당 검사에게 지시한 혐의(직권남용)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국장은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제청하기 전 검사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지금은 폐지(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되고 격하(서울중앙지검장)된 보직들과 함께 검찰총장을 제외한 보직 중 최고 요직으로 꼽히던 자리다.
 
법원 1심이 판단한 직권남용 범행동기는 "검찰국 산하 검찰과장과 검찰과 소속 인사 담당 검사로부터 인사안을 보고받고 서 검사에 대한 배치 내역을 알게 되자, 서 검사와 관련된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경우 향후 자신의 보직 관리에 장애가 초래될 것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서 검사와 관련된 문제'란 2010년 10월 30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이던 안 전 검사장이 이귀남(69·12기) 법무부 장관을 수행해 찾은 장례식장에서 서 검사를 강제추행했다는 혐의다. 강제추행 혐의는 고소기간이 지나 기소되지는 못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어려운 문제를 쉽게 풀었다. 안 전 검사장 변호인단은 범행동기 자체가 없었다는 전략을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 유지했다. 범행 장소인 장례식장에서 술에 취한 건 사실이지만 추행 자체가 기억에 없다는 주장이다. 서 검사가 지난해 1월 언론에 공개하기 전까지는 강제추행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다고 했다.  

이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2018년 1월 29일경 언론 보도를 접하기 전까지 서지현 검사 성추행 사실을 알지 못했고, 검찰국장으로서 인사 담당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가하도록 지시를 하지 않았다는 게 주장의 핵심"이라고 정리했다. 

◇안태근을 잡은 자, 안태근을 놓다 
안 전 검사장 측의 변론 전략은 과감하지만 위험하다. 강제추행 사실을 인사조치 이후에 알았다면 범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범행동기가 사라진다. 자신도 언론 보도로 알았다는 점을 입증하면 무죄 선고를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강제추행 발생 시점 2010년부터 인사조치 발생 시점인 2015년 사이 안 전 검사장이 강제추행 사실을 알 수 있는 점이 하나라도 발견되면 이 변론 전략은 무너진다. 항소심 재판부도 이같은 관점에서 안 전 검사장 주장을 탄핵했다.

항소심이 나열한 안 전 검사장이 강제추행 사실을 알 수 있는 기회는 세 번이다. 2010년 10월 법무부 장관과 수많은 검사가 다녀간 장례식장에서 첫 번째. 2010년 12월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에서 감찰 중단 후 주의를 줬을 때가 두 번째. 2013년 2월 이후 임은정(45·30기) 검사가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며 이 사건을 언급했을 때가 세 번째다.

안 전 검사장은 세 경우 모두 강제추행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지만 이 가설은 성립될 수 없었다. 감찰을 중간에 멈춰 자신을 구해준 절친이 '안태근에게 비공식적으로 주의를 줬다'고 증언한 까닭이다.

법무부 감찰담당관실은 피해자인 서 검사가 2차 피해를 우려한다고 판단해 가해자·목격자 조사도 없이 중간에 그만뒀다. 오히려 중간에 떠도는 소문의 여검사가 누구인지 알아봐 주고 서 검사에게 접촉한 임 검사만 최교일(58·15기) 당시 검찰국장의 질책을 받았다.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연합뉴스]

그런데 감찰인 끝난 후 가해자인 안 전 검사장에게 비공식 주의를 줬다는 진술이 나왔다. 안 전 검사장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이는 사법연수원 같은 반에서 동고동락한 오정돈(59·20기) 당시 감찰관이다.  

오 당시 감찰관의 1심 증언에 따르면 안 전 검사장은 감찰 종료 직후 "여검사 추행 관련 소문이 들리던데 술 먹고 사고 치지 말라"는 주의를 받았다. 안 전 검사장의 친구는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해 조금은 흐릿해진 기억을 굳이 없애지 않았다. 

이 부장판사는 강제추행 사실 자체를 몰랐다는 안 전 검사장 항변은 "무엇보다 법무부 내에서 각별한 감찰관이 피고인에게 굳이 알리지 않고, 임 검사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몰랐다는 점을 모두 전제해야 한다"며 "서 검사가 검찰 내부에 공개하기 전까지 알지 못했다는 주장은 비현실적"이라고 판시했다. 

이때 안 전 검사장의 내뱉은 날숨 '후'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새는 뚜렷했다.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시선을 내리깔다 말기를 반복하고, 어쩌다 혓바닥을 내밀다 집어넣기도 했다. 

◇검찰국장 지시 없이 평검사가 인사조치했다고? 
아직 인사 담당 검사에게 서 검사를 상대로 불이익을 주라고 지시했는지에 대한 판단이 남았지만, 이미 재판은 끝난 것이었다. 실무자가 상관 지시 없이 전례 없는 인사를 했다고 믿을 사람은 많지 않다.

서 검사는 1981년 검찰청법 개정으로 검찰인사위원회 제도를 도입한 이래 부치지청(여주지청)에서 부치지청(통영지청)으로 전보된 유일한 경력검사다. '부치지청'이란 지방검찰청 소속 소규모 지청으로 검사장이나 차장검사가 없고 지청장과 부장검사가 배치된 지청을, 경력검사는 3개 청 이상 근무한 이후 부치지청에서 후배 검사를 지도하는 수석검사를 말한다. 

서지현 검사.  [사진=연합뉴스]
서지현 검사. [사진=연합뉴스]

직권남용 범죄 발생 당시 인사 담당 검사인 신동원(42·33기) 검사는 항소심에서 "안 전 검사장에게 어떠한 지시도 받지 않고 독자적 판단으로 서 검사를 통영지청에 배치한 기억이 없다"고 진술했다. 지난해 검찰 조사 당시 "안 전 검사장에게 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한 말이 미묘하게 변했다. 신 검사는 서 검사와 사법연수원 동기다. 

이 부장판사는 "인사 대상자가 사직서를 제출한 소란이 있었는데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믿기 어렵다"며 신 검사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했다. 서 검사는 통영지청 발령 직후 사직서를 냈지만 수리되지 않았다.

안 전 검사장은 이 대목에서 낙담한 걸까. 다소 산만해진 그는 두 손으로 재킷을 털었다. 곧이어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친 채 오른손으로 턱을 괴었다가 뗐다.

사실판단을 끝낸 이 부장판사가 범행동기를 "감찰 조사 사실이 널리 알려진 이상 문제가 계속 불거질 경우 검사로서 승승장구한 본인의 경력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추단할 땐, 안 전 검사장 시선은 허공에 있었다. 피고인석에 몸을 세운 후 재판장을 향하는 시선의 궤도를 완전히 이탈한 첫 순간이었다. 귀 기울임의 이익이 없다는 직감이 거의 확실해진 때라고 판단했을 터다.

안 전 검사장이 재판정에 들어온 지 12분이 지난 오후 2시 24분 재판장이 주문을 읊었다. "항소를 기각한다. 보석 청구도 함께 기각한다" 항소심은 징역 2년을 선고한 1심의 판단이 맞다고 봤다. 

◇'피고 안태근'을 꺼내지 못한 변호인의 마지막 역할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진=연합뉴스]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진=연합뉴스]

안 전 검사장에게 '범행동기 부인 전략'을 상의했을 변호인단은 무력했다. 방청석을 가득 메운 기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사이 여성 4명이 조용히 재판정을 나왔다. 안 전 검사장 가족들로 보이는 그들은 모두 눈물을 훔쳤다. 배가 부른 여성은 오열해 몸을 가누지 못해 중년 여성의 부축을 받았다. 그들 뒤로 변호인단을 이끈 대법원 수석재판연구원 출신 유해용(53·19기) 변호사가 두 손을 모은 채 아무 말 없이 자리를 지켰다. 여성 4명과 기자들을 차단하는 그의 방식이었다. 

피고를 구치소에서 꺼내진 못한 변호사지만 할 일은 남은 듯했다. 유 변호사에게 필요한 건 기자들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이었다. 그는 여성 4명을 이끌고 법원 건물 뒤편에 있는 '후생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 위치한 카페테리아에서 유 변호사는 오후 2시 52분까지 약 30분간 그들을 위로했다. 그들이 떠나자 역설적이게도 위로의 장소였던 그곳에서 '안태근 재판'은 누군가의 얘깃거리가 돼 있었다. 

안태근 전 검사장 항소심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눈물을 훔쳤던 그의 가족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변호인 유해용 변호사의 위로가 필요했다. 법원 뒷편 후생관 건물에 함께 있던 유 변호사는 여성 한 명과 먼저 자리를 떴고, 다른 남성이 와 남은 3명의 여성 옆을 지켰다. [사진=윤여진 기자]
안태근 전 검사장 항소심 선고공판을 방청한 뒤 눈물을 훔쳤던 그의 가족으로 보이는 여성들은 변호인 유해용 변호사의 위로가 필요했다. 법원 뒷편 후생관 건물에 함께 있던 유 변호사는 여성 한 명과 먼저 자리를 떴고, 다른 남성이 와 남은 3명의 여성 옆을 지켰다. [사진=윤여진 기자]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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