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초대석] 윤덕민 前원장 "韓 정부·기업이 주도해 재단·특별법 만들고 日기업이 '자발적 참여'" [1부]
[WIKI 초대석] 윤덕민 前원장 "韓 정부·기업이 주도해 재단·특별법 만들고 日기업이 '자발적 참여'" [1부]
  • 조문정 기자
  • 기사승인 2019-07-22 10:21:59
  • 최종수정 2019.07.2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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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일괄 처리"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청구권자금을 경제개발 종잣돈으로 활용"
"정부가 '중재위 구성하자'는 日 요구에 응하지 않은 것은 잘한 결정"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위키리크스한국]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일본에 대한 전승국이 아니라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국이 될 수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사진=김정훈 기자]

"일본기업의 국내 재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해 배상한다면 국내에 진출한 모든 일본기업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 파국은 피해야 합니다. 해결의 출발점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아베 정권이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를 거뒀다. 개헌 발의가 가능한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는 계속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아베 정권이 경제보복 조치를 취한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우리 대법원의 판결이었다.

지난해 우리 대법원은 일본제철·미쓰비시(三菱)중공업 등 일본기업들에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근간을 완전히 뒤엎는 판결이었다. 이 협정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절차 간소화 국가 목록)에서 제외하겠다는 방침을 밝힘에 따라 ‘한일 무역전쟁’으로 표면화하고 있는 한일 갈등의 도화선이 되는 협정이기도 하다. 

위키리크스한국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을 만나 최근 한일 갈등의 원인인 '징용피해자 문제'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논란에 대한 진단과 대책을 들어봤다. 

윤덕민 전 원장은 1965년 협정을 "일본에 대한 전승국이 아니라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국이 될 수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였다"고 평가했다.

윤 전 원장은 "청구권 협정의 결과로 당시 박정희 정부는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 총 5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36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배상을 받았다. 정부는 그 돈을 경제개발에 종잣돈으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윤 전 원장은 "사실 청구권자금은 식민지배의 피해자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했을 돈"이라면서 국가 간 조약을 넘어 개인의 청구권이 인정되기는 어렵다고 봤다. 국가가 개인의 청구권을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개인의 청구권을 인정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국제규범을 생각해보면 무리한 접근"이라는 진단이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전쟁과 식민지 피해는 대부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이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 혹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괄적으로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윤 전 원장은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으로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것'을 제시했다. 그는 "지금 우리 정부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며 "'1965년 조약의 효력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며 일본에 재개정 협상을 제안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정부와 한일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2(한국 정부와 관련 기업)+1(일본 관련 기업) 기금 조성안'과 정부 참여 없는 '1+1 기금안'은 좋은 방안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그는 "우리 기업과 정부 주도로 재단이나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혜택을 주되, '일본 기업이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자발적으로 보상한다면 환영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65년 정신'을 지키면서 2012년 우리 대법원판결도 반영할 수 있고, 우리가 주도하되 도의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근거를 남겨놓을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에 따라 제3국을 앞세운 중재위원회를 구성하자는 요구에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은 것을 "잘한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문제가 중재위에서 다뤄진다면. ‘1910년 한일합방(국권침탈)’이 불법인가를 가려야 하니 위험부담이 따른다"고 진단했다.

한일 양국은 '식민지배와 합방(국권침탈)이 합법인가'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한일합방(국권침탈)은 무효'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타협했다. 중재재판에서는 일본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가려야 하는데, 우리가 진다면 국제사회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고 인정해야 해 위험부담이 크다. 

윤덕민 전 원장은 1991년 국립외교원의 전신인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조교수로 시작해 27년간 국립외교원에 몸담은 외교안보 전문가다. 2013년 5월 국립외교원장에 취임한 후 2017년 5월 퇴임해 ‘역대 최장기 국립외교원장’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윤덕민 전 원장과의 인터뷰 1부에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평가 △개인의 청구권 문제 △강제징용 문제의 해결방안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등 한일 통상 갈등 문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가능성을 짚어본다. 인터뷰 2부에서는 △위안부 문제 △대일 공공외교의 중요성 △일본 납북자 문제 등을 진단한다.

다음은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우리 정부가 최선을 다해 얻은 결과였다고 평가합니다. 국민의 눈높이에서는 여러모로 턱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일본에 대한 전승국이 아니라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국이 될 수 없었던 한국으로서는 최선의 결과였습니다. 1951년 강화조약의 틀 속에서 전쟁배상을 요구할 수 없어 청구권 협정으로 일단락했죠. 청구권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의 가장 큰 쟁점이었습니다.

청구권 협정의 결과로 당시 박정희 정부는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 총 5억 달러를 일본으로부터 36년간 일본의 식민 지배에 대해 배상을 받았습니다. 정부는 그 돈을 경제개발에 종잣돈으로 활용했습니다. 그 돈으로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고, 포항제철을 설립했어요. 특히 그 돈의 약 20%가 포항제철을 만드는 데 들어갔어요."

▷ 청구권자금은 징용피해자 개개인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나요?

"그렇습니다. 사실 청구권자금은 식민지배의 피해자 개개인에게 돌아가야 했을 돈이었습니다. 식민지배의 피해자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한반도에 살고 있던 모든 우리 국민이고, 좁은 의미에서 보면 강제 징용 피해자 등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셨던 분들이죠. 

당시 일본 정부는 그 피해자 개개인에 대해 직접 피해를 보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는데, 한국 정부는 청구권자금을 개개인이 아닌 국가에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외교사 자료에 따르면, 개개인에 대해 보상할 것이 아니라 청구권자금을 국가에 달라고 일본 정부에 요청했던 것은 박정희 정권 이전인, 장면 정권 때부터였다고 합니다."

▷ 그러면 한국 정부가 피해자 개개인에 대해 보상했나요?

"1970년대에 피해신고자에 한해 피징용사망자당 30만원씩, 현재가치로 2~3천여만 원씩 보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는 민관공동위원회를 만들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관련해 모든 자료를 조사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입니다. 징용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 청구권협정에 법리적인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자료를 전부 조사했죠.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민관공동위원회 위원장이었고,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 위원이었어요.

민관공동위원회는 강제징용 청구권은 한일기본조약에 나와 있는 대로 최종적으로 완전히 해결됐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는 논리에 입각해 정부가 피해신고를 한 피해자에게 보상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는 6천200억 원에 달하는 정부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보상했습니다."

▷ 청구권협정 제2조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법인을 포함함)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는가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한국 정부가 갖는 외교적 보호권만이 포기될 뿐이지 개인의 청구권 자체가 소멸한다고 볼 수는 없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런 법리를 가지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2012년 당시 주심이었던 김능환 대법관이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는 대법원 소부의 '일제 강제징용 사건' 파기 환송 판결문의 한 정신일 것입니다. 그러한 법리나 개인의 인권 측면에서 그런 주장을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성공한다면 세계사를 다시 쓰고 노벨평화상을 받겠지요.

그런데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는 의문입니다. '청구권이 최종적으로 해결됐다'고 정부 간 협정으로 명기한 사항을 완전히 뒤엎는 판결이니까요. OECD 회원국인 선진국이 국가 간 조약에 명기된 내용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사례는 없습니다."

▷ 국가 간 조약으로 합의한 사안이므로 개인의 청구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말씀이신지요? 

"국가가 일괄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개인 인권을 위해 개인적인 청구권이 성립할 수만 있다면 대단히 의미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국제규범을 생각해보면 무리한 접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 역사상 있었던 수많은 전쟁과 식민지 피해는 대부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같이 강화조약이나 평화조약을, 혹은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괄적으로 처리해왔습니다. 전쟁 중에 혹은 식민지배에 동원됐던 징용피해자들이 수억 명에 달합니다. 2012년 우리 대법원판결의 논리로 본다면, 일제 치하에서 피해를 받는 사람들 모두 개인적으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징용피해자뿐 아니라 당시 한반도에서 일제에 신음했던 일반 국민도 '창씨개명'을 이유로, 그리고 일본군에 끌려갔던 학도군들도 심리적 피해에 대해 충분히 소송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이 모든 사례를 개인 소송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1965년에 한일간에 청구권 협정을 맺었던 것입니다. 다른 나라들도 강화조약을 맺는 등 모두 일괄적으로 해결해왔고, 중국과 같이 청구권 자체를 포기하며, 배상받지 않았던 국가도 있었습니다."

▷ 그런데 당시 협정에서 일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이 2012년 대법원은 '당시 한일 협정에는 일본의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배상이 포함되지 않았으며, 피해자 개인이 일본 정부와 기업에 배상을 요구할 권리까지 제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죠. '국가 간 협정은 인권문제나 전쟁범죄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쟁범죄'라는 것 자체가 미국적인 국제질서관을 보여주는 용어입니다. 옛날에는 전쟁을 범죄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미국이 국제사회에 패권국으로 부상하고, 세계대전 겪으면서 생겨난 개념이지요.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자들에 대해 전범 재판소를 통해 판결했죠. 미국적인 국제질서관이 여전히 현재 국제질서의 기본이라면 전쟁범죄는 여전히 전범재판소를 통해 단죄되고 있습니다.

▷ 최근 청와대는 "당시(2005년) 민관공동위는 '한일 청구권 협정은 한일 양국 간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에 의하여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다'라고 보도자료를 통해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식민지배는 반인도적 불법행위이므로 그 배상 문제가 별도의 장(場)을 통해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일단 '(자국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다'라고 인정하는 강대국은 없습니다.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들이 바로 강대국 아닙니까. 국제법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쉽게 말하자면, 19~20세기에 ‘땅따먹기’를 합법화하는 논리를 만들어낸 것이 국제법입니다. '선점하는 놈이 임자'라는 관점에서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를 만드는 논리입니다. 

2012년 우리 대법원판결의 기본 토대는 '식민지배와 합방(국권침탈)은 불법'이라는 우리 국민들의 기본 입장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식민지배는 합법'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1965년 한일청구권 협상 당시 '식민지배의 불법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이었습니다. 타결되지 않으니까 '한일합방(국권침탈)은 무효'라는 식의 표현이 들어갔죠. 한국은 이 구절을 '한일합방(국권침탈)은 불법이었다'고, 일본은 '합법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

▷ 일본 정부는 '중재위 구성은 한일청구권 협정상 의무'라고 주장하며 우리 정부에 중재위 구성을 계속 요구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반면 우리 정부는 '한일 양국이 합의에 따라 3조 2항을 발동할 수 있으나, 한일 간 합의가 없었으므로 일본의 요구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입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요구에 응해 중재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중재위에 가지 않도록 한 결정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르면 한일 양자 간에 분쟁이 있을 때 제3국에 의뢰하는 방식으로 중재위를 구성해 조정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중재위에서 다뤄진다면 위험부담이 따릅니다. '1910년 한일합방(국권침탈)'이 불법인가를 가려야 하니까요.

우리는 '식민지배와 합방은 불법'이라고 주장했지만, 일본은 '합법'이라고 주장해왔습니다. 한일 양국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 '한일합방(국권침탈)은 무효'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타협했습니다. 중재재판에서는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우리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받아들여진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계 역사상 최초로 사례를 만들고 노벨평화상도 받겠죠.

그런데 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국제사회에 '일본의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고 인정하는 단초를 마련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 일본은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하자고 나올 겁니다. 독도는 우리 것인데 ICJ의 판정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죠. 이러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재위에 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큽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사진=김정훈 기자]
윤 전 원장은 "우리 기업과 정부 주도로 재단이나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혜택을 주되, '일본 기업이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자발적으로 보상한다면 환영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며 "'1965년 정신'을 지키면서 2012년 우리 대법원판결도 반영하는 틀 속에서 지혜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진=김정훈 기자]

강제징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본기업의 재산을 압류하고 현금화해 배상한다면 국내에 진출한 모든 일본기업이 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 파국은 피해야 합니다.

해결의 출발점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정부는 '대법원판결에 대해 정부가 관여할 수 없다'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1965년 조약의 효력은 이미 끝났다'고 주장하며 일본에 재개정 협상을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한국 최고 재판소인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대법원판결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국제법상 조약을 준수해야 합니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은 국가로서 지켜야 할 약속이에요. 현재 청구권협정은 유효하므로 정부가 그 협정에 입각해 '청구권 문제가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결국 문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아베 총리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간 채널을 만들어 양국이 허심탄회하게 접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 채널이 작동하면 이낙연 국무총리가 특사로 방문하고, 궁극적으로는 한일 간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해야 합니다."

▷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한국 정부와 한일 양국 기업이 참여하는 '2(한국 정부와 관련 기업)+1(일본 관련 기업) 기금 조성안'과 △정부 참여 없는 '1+1기금안' △강제징용 특별법 제정 등이 논의됐습니다.  '2+1 기금안'과 '1+1 기금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기업과 정부 주도로 재단이나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혜택을 주되, '일본 기업이 도의적인 책임을 느껴 자발적으로 보상한다면 환영한다'는 식으로 문제를 풀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야 합니다.

'1965년 정신'을 지키면서 2012년 우리 대법원판결도 반영하는 틀 속에서 지혜롭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죠. 우리가 주도하되 도의적 책임은 일본에 있다는 근거를 남겨놓을 방법이니까요.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미쓰비시를 비롯한 일본 기업들은 중국 징용피해자들과는 그런 식으로 화해했습니다.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도의적인 책임을 느끼면서 보상할 수 있는 장을 열어 줘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 기업에 '2+1 기금안'에 참여하라’고 압박한다면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청구권협정에 따라 청구권자금을 받은 것은 법적으로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일본에 대해 도덕적으로 우위에 설 수 있고, 과거사에 대해 일본에 더욱더 당당해질 수 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과거사 문제에 대한 도덕성 우위에 서서 위안부 문제를 얘기해왔습니다. 그런데 한일청구권협정을 뒤엎고 배상을 요구하고 있는 지금은 역전당한 꼴이 됐죠. 청구권협정으로 돈을 받아놓고 또 내라고 요구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명분도 약하고 구차합니다."

▷ '금전적인 보상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진정성 있는 사과’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이 진정성 있게 사과한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한국에 사과한 일본 인사들을 목록으로 만든다면 우리 국민들이 몰랐던 바가 많을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를 들 수 있습니다.

2010년 강제병합 100주년 즈음해서 당시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발표한 담화는 당시 그 어떤 담화보다 진정성 있는 담화였습니다. 나오토 총리는 식민지배가 한국민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발표했어요. 그 담화에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유래한 귀중한 도서를 가까운 시일에 반환하고자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어요. 그래서 1300점에 달하는 문화재가 일본으로부터 반환됐죠.

그런데 당시 이 사안을 다루는 국내 언론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한국에 우호적이었던 지한파 의원들은 훗날 선거에서 우익들이 '친한(親韓) 활동'을 문제 삼아 낙선운동을 벌이는 바람에 대거 낙선했죠. 일본이 그렇게 우호적인 제스쳐를 취했을 때 우리가 제대로 평가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은 계속 사과하라고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사과해야 하느냐'며 과거사에 대해 '한국 피로증'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사를 경험한 전전 세대들은 한국에 나쁜 짓을 했다는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과거사 문제를 제기하면 한국의 입장을 수용해왔어요. 문제 발언을 한 내각 관료를 교체한다든지 교과서를 수정한다든지 했죠. 그런데 이제 전후 세대들은 '70년 전 할아버지 세대가 한 일에 대해 왜 우리가 사과해야 하느냐'며 피로감을 느끼고 있어요. 전후 세대들은 관념적으로 더욱 강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요.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가 느끼는 간극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한일 통상갈등에 관해 여쭤보겠습니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국가에서 제외함으로써 WTO 협정상 최혜국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는 WTO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 중입니다. 정부의 방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의 결정을 WTO 협정 위반으로 볼 수 있는지 모호하기도 하지만, WTO가 판정을 내려 강제할 수 있는 질서가 이미 무너졌습니다. WTO의 분쟁해결기구인 상소기구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판정을 내릴 사람이 없어요. WTO 제소가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일본은 치밀하게 연구한 끝에 '그 정도는 괜찮다'는 결론을 내리고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기로 했을 것입니다.

지난해 10월 우리 대법원이 일본제철·미쓰비시 중공업 등 일본기업들에 국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후 우리 정부가 일본의 보복조치를 예방하기 위해 준비한다든지 위기관리를 했다는 흔적조차 없습니다. 그러다 오늘날의 보복조치까지 왔죠.

2015년 일본이 외교 청서에서 한국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일본)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의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이라는 표현을 없애고 '중요한 이웃 나라'라고만 했습니다. 그때는 그 이유를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현재의 화이트리스트 배제조치까지 연결됩니다. 일본은 이미 한국의 급소가 무엇인지 치밀히 연구하고 파악해 190개 정도의 보복 리스트를 마련했다고 합니다. 자동차 변속기 등 자동차와 핸드폰에 일본 부품이 많이 들어갑니다. 그런 품목들을 보복 리스트에 올렸을 것입니다.

더욱 큰 문제점은 서방세계에 '한국은 우리와 다른 나라'라는 메시지를 준다는 점입니다. '한국은 전략물자를 마음대로 거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는 부정적 이미지가 생길 수 있어요. 화이트리스트는 신뢰할 수 있는 국가들이 자유롭게 전략물자를 거래할 수 있게 한 조치인데, 이제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혜택을 주지 않고 수출 통제를 하겠다는 거니까요."

▷ 한일 간 갈등이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제조업 외 다른 부문도 타격을 입을 수 있을까요?

"금융분야가 큰 타격을 입을 수 있습니다. 세계 자본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신인도를 떨어뜨릴 수 있습니다. 일본 기업이나 정부가 국내 투자금이나 지분을 회수할 수도 있고, 일본 은행이 우리 은행에 부여한 크레딧도 회수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일본의 투자금이 규모 면에서는 중국의 투자금보다 적을 수는 있겠지만, 일본이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것 자체가 다른 나라들에 '한국은 위험하다'는 신호를 줄 수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신인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튼튼하다고 했는데, 미국과 일본이 도와주지 않아서 한국 경제가 큰 어려움을 겪었던 걸 생각해보세요. 경제 규모가 세계 2위인 중국이 그 싫어하는 아베 총리를 환대한 후 스와프협정을 맺었습니다. 한일통화스와프 협정은 2015년 2월에 만기가 도래하자 종료됐어요.

마치 우리가 대등하게 일본과 싸울 수 있는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신데, 착각입니다. 지금은 '의병 활동', '이순신 장군', '국채보상운동', '죽창가' 등을 거론하며 반일여론을 부추길 때가 아닙니다. 일본이 10톤 트럭이라면 우리는 작은 승용차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일본과의 ‘치킨게임’은 피해야 합니다.”

▷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연장되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미국 때문에 양쪽 다 파기를 시도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한미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가를 결정하는 마지노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파기하겠다고 먼저 밝히는 쪽이 미국에 눈총을 받을 수 있으니, 양쪽 모두 상대방을 탓하면서 마지노선을 지킬 것이라고 봅니다. 지키지 않는다면 상당히 불행입니다. 

우리는 이미 잊었지만, 한반도에서 전쟁 억제의 기본 틀은 한미일 간의 '사실상의 동맹(virtual alliance)'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적화통일이 이뤄질 뻔했는데 부산에 교두보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내 기지로 미군이 빠르게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일본 내 미군 기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한미일 ‘사실상의 동맹’이 무너지면 한국을 방어하기가 매우 어려워집니다. 우리가 자주국방을 기치로 스스로 방어한다면 좋지만 사실상 쉽지 않습니다.

한미일 관계가 끊어지면 사실상 '제2의 애치슨 라인'이 형성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한·미·일 '남방 삼각관계'를 이탈해 중국과 러시아와 '북방 삼각관계'를 형성해도 과연 괜찮을까요? 지금 한국은 양 삼각관계 속에서 스스로 혼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계기 중 하나가 된 애치슨 라인은 미국이 만들었는데, '신(新) 애치슨 라인'은 한국이 만들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애치슨 라인: 미국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 1950년에 발표한 미국의 극동방위선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미국의 극동 방위선을 한반도와 대만을 제외하고 알류샨 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연결하는 선으로 정해 미군이 한반도에서 철수하자 1950년 6월 25일 김일성 전 주석이 한국전쟁을 일으켰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supermoon@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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