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 고조되는 중동... 이란 '핵 합의' 사실상 탈퇴, 솔레이마니 폭사에 초강경 대응
긴장 고조되는 중동... 이란 '핵 합의' 사실상 탈퇴, 솔레이마니 폭사에 초강경 대응
  • 이가영 기자
  • 승인 2020.01.06 07:15
  • 수정 2020.01.06 05: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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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술레마니아 사령관 추모 집회 [연합뉴스]
이란 솔레이마니 사령관 추모 집회 [연합뉴스]

이란 정부는 5일(현지시간)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정한 핵프로그램에 대한 동결·제한 규정을 더는 지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핵합의를 사실상 탈퇴한 셈이다.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과 이란이 2015년 7월 역사적으로 타결한 핵합의는 협상의 두 축인 미국과 이란의 탈퇴로 4년 반만에 좌초될 처지가 됐다.

이란 정부는 이날 낸 성명에서 "이란은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을 더는 지키지 않는다"라며 "이는 곧 우라늄 농축 능력과 농도에 제한을 두지 않겠다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란은 현재 우라늄을 5% 농도까지 농축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이란은 이제 핵프로그램 가동에 아무런 제한을 받지 않게 됐다"라고 보도했다.

핵합의는 이란이 보유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했다.

이는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거나 시간(브레이크 아웃 타임:핵무기를 제조하기로 결정한 순간부터 보유하는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막기 위해서였다.

핵무기 제조의 관건은 우라늄을 농도 90% 이상으로 농축할 수 있는지에 달린 만큼 원심분리기의 성능과 수량을 일정 기간 묶어 이란의 우라늄 농축 능력을 제한하는 게 핵합의의 핵심이었다.

이란 정부는 "원심분리기 수량 제한은 이란이 현재 지키는 핵합의의 마지막 핵심 부분이었다"라며 "이를 버리겠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란 메흐르통신은 이번 핵합의 이행 감축 조처가 5단계이자 사실상 마지막 단계라고 보도했다.



이란 정부는 유럽이 계속 핵합의 이행에 미온적이고 이란 군부 거물 거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군에 폭사하면서 사실상 핵합의를 탈퇴하는 매우 강경한 조처를 내놓았다.

핵합의에는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동결·제한하는 조항이 세밀하게 설계돼 이란이 핵합의 이행 범위를 더 세부적인 단계로 나눠 감축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지만 솔레이마니 사령관의 사망으로 '최종 단계'로 직행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이란 정부는 미국이 이란에 대한 경제·금융 제재를 철회한다면 핵합의로 복귀하겠다는 조건을 달았지만 미국이 대이란 제재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이 아주 큰 만큼 핵합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을 전망이다.

이란은 2018년 5월 8일 미국이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한 뒤 1년간 핵합의를 지켰지만 유럽 측마저 핵합의를 사실상 이행하지 않자 지난해 5월 8일부터 60일 간격으로 4단계에 걸쳐 핵합의 이행 수준을 줄였다.

이란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원심분리기 [이란 원자력청]
이란 나탄즈 우라늄 농축시설의 원심분리기 [이란 원자력청]

이란은 지난해 5월 8일 핵합의 이행 범위를 축소하는 1단계 조처로 농축 우라늄(우라늄 동위원소 기준 202.8㎏. 육불화 우라늄 기준 300㎏)과 중수의 저장 한도를 넘기겠다고 선언하고 이를 실행했다.

1단계 조처 이후 60일이 지난해 7월 7일에는 2단계 조처로 우라늄을 농도 상한(3.67%) 이상으로 농축하겠다고 발표했고, 이튿날 4.5%까지 농축도를 올렸다.

이란은 다시 9월 6일 핵합의에서 제한한 원심분리기 관련 연구개발 조항을 지키지 않는 3단계 조처를 개시했고 11월 6일 4단계로 포르도 농축시설의 원심분리기에 핵합의로 금지됐던 육불화우라늄 기체를 주입해 농축활동을 재개했다.

이란은 유럽에 핵합의에서 약속한 대로 이란산 원유 수입과 금융 거래를 재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유럽은 미국의 제재에 해당되는 탓에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중동의 혼돈이 시작된 가장 직접적인 출발점을 되짚어 보면 2018년 5월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핵합의 파기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대체로 모인다.

이란에 적대적인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이란이 핵무기를 여전히 몰래 제조한다는 근본적인 불신을 버리지 못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사찰을 통해 검증했는데도 미국은 위반했다는 증거는 제시하지 않은 채 핵합의를 탈퇴했다.

이후 미국은 2018년 8월과 11월 핵합의로 완화한 대이란 경제·금융제재를 완전히 복원하면서 이란에 핵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새로운 핵합의'에는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사찰·중단, 혁명수비대의 해외 활동과 지원 금지, 이란 핵프로그램 영구 폐기 등 이란이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겼다.

핵합의에 서명한 유럽연합(EU)과 유럽 3개국(영·프·독)이 미국과 이란을 중재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미국은 이란 최고지도자와 정규 군사조직인 혁명수비대, 중앙은행마저 테러를 지원한다면서 제재 대상에 올렸다.



2019년 초반까지 잠시 소강상태였던 미국과 이란의 갈등은 지난해 5월부터 다시 불붙었다.

미국이 이란의 위협을 명분으로 항공모함 편대를 걸프 해역에 조기 배치한 뒤 이란 핵합의 감축 시작(지난해 5월), 유조선 피격(5, 6월), 미군 무인기 피격(6월), 이란 유조선 억류(7월), 영국 유조선 이란에 억류(7월),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9월) 등 악재가 이어졌다.

급기야 지난달 27일 이라크 키르쿠크 미군 주둔 기지에 로켓포 공격으로 미국인 1명이 숨졌고, 이는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폭발하는 도화선이 됐다.

이라크 내 미국인 피해를 한계선으로 그었던 미국은 로켓포 공격을 이란 혁명수비대가 직접 지원하는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소행이라고 단정하고 이틀 뒤 이 무장조직의 군사시설 5곳으로 전투기로 폭격해 25명이 사망했다.

이에 반발한 시아파 민병대와 추종세력이 지난달 31일과 1일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급습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미국은 이달 3일 이란의 군부 거물 거셈 솔레이마니 소장을 바그다드 공항에서 폭격해 살해했다.

이에 이란은 '가혹한 보복'을 미국은 '사상 최고의 반격'을 예고하며 전쟁 직전으로 치달았다. 이라크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는 4일 미군 주둔 기지를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은 지난해 5월부터 60일 간격으로 단계적으로 핵합의 이행 수준을 감축하면서 유럽에 핵합의 이행을 압박했는데 공교롭게도 5일이 5단계 감축 조처를 발표하는 날이었다.

이란 정부는 5일 핵합의에서 정한 핵프로그램 제한 조항을 더는 지키지 않겠다면서 우라늄을 원하는 만큼, 필요한 농도까지 농축하겠다고 선언했다.

예고된 일정이긴 하지만 공교롭게 시기상 최근 일촉즉발의 중동 정세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이로써 이란은 사실상 핵합의를 탈퇴하고 핵프로그램을 제한없이 추진하게 됐다.

이란은 최고지도자의 종교적 칙령(파트와)으로 금지한 핵무기를 보유할 계획이 없다고 누누이 밝혔지만 우라늄 농축 능력이 핵무기 제조의 핵심인 만큼 이란이 핵무기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는 서방의 의혹을 벗어나기 어렵게 됐다.

핵합의가 결국 좌초하면 서방과 이란의 핵협상이 타결된 2015년 7월 이전 핵위기가 상존하는 상황으로 완전히 회귀할 전망이다.

핵합의를 타결했을 때 서방은 이란이 이를 어기고 핵무기를 개발할 경우 걸리는 시간을 최장 1년 반으로 추정했다. 이란이 핵프로그램을 가속한다면 앞으로 1년 남짓한 기간에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놓고 이스라엘을 포함한 서방과 이란의 충돌이 본격화할 수도 있다.

이란은 이미 사거리 2천㎞의 장거리 탄도미사일을 보유한 터라 이란이 핵탄두를 보유한다면 중동 전체는 물론 서유럽까지 사정권이 된다.

국제사회는 미국과 이란의 정면 충돌에 대화를 통한 정치적 해법을 촉구하지만 양국의 겉잡을 수 없는 적대의 악순환으로 그 여지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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