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중세의 공포 '흑사병'은 어떻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코로나19] 중세의 공포 '흑사병'은 어떻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 최석진 기자
  • 승인 2020.04.09 06:47
  • 수정 2020.04.09 0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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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는 흑사병이 야기한 사회적 대격동을 묘사하고 있다
피테르 브뢰헬의 '죽음의 승리(Triumph of Death)'는 흑사병이 야기한 사회적 대격동을 묘사하고 있다

현재는 코로나바이러스라는 팬데믹으로 인해 지구촌이 고통을 받고 있지만 팬데믹, 즉 전 세계를 한꺼번에 공포로 몰아넣은 전염병하면 뭐니 뭐니 해도 흑사병(Black Death)을 따라갈 수 없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서너 차례 창궐한 흑사병 또는 페스트의 발병 원인이나 시기 등에 대해서는 비교적 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어떤 식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뉴스 이면에 숨겨진 흥미로운 요소를 찾아 소개하는 웹사이트 ‘올댓츠인터레스팅(allthatsinteresting.com)’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세계적 전염병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과거 인류를 괴롭혔던 무시무시한 전염병 흑사병이 어떻게 세력을 잃게 되었는지를 분석한 기사를 보도했다. 다음은 그 내용의 전문이다.

유럽 인구의 거의 절반을 죽게 한 흑사병이 처음 발발한 후 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인류는 이 병이 어떻게 잠잠해졌는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인류 역사에서 흑사병만큼 치명적인 전염병은 없었다. 중세부터 1750년대까지 흑사병(선페스트)은, 최초 발병 10년 만에 3,000만 명을 죽음으로 휩쓸어갈 정도로, 유럽과 중동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질병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르네상스 시대의 시인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1304-1374)는 플로렌스에서 자신이 목도한 절망적 상황을 다음과 같이 시로 읊었다.

‘오, 복 되도다 후손들이여.
끝도 모를 고통을 겪지도 않고, 이 참상을 그저 옛날 이야기 정도로나 들을 수 있다니......’

하지만 이 끔찍한 전염병도, 18세기까지 10년에서 20년 간격으로 국지적으로 발발하기는 했지만, 결국 1352년과 1353년 사이에 잦아들었다.

그렇다면 흑사병은 어떻게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일까? 또는 정말로 영원이 사라진 것일까, 아니면 이 병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인류는 그저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흑사병이 신에 의한 심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신에게 구원을 기원하는 모습
흑사병이 신에 의한 심판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신에게 구원을 기원하는 모습

14세기 흑사병의 전개 과정

대역병(Black Plague), 또는 선페스트(Bubonic Plague)라고도 불린 흑사병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팬데믹으로 남아있다. 전문가들은 ‘Black Plague’라는 용어는 ‘참혹함’ 또는 ‘어둠’을 뜻하는 라틴어 ‘atra mors’를 잘못 번역한 것이라고 믿는다.

이 병이 가장 맹위를 떨치던 발발 초기인 1346년에서 1353년 사이의 약 10년 동안에는 감염 지역 인구의 평균 1/3이 목숨을 잃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른 전문가들은 유럽 전체 대륙에서 절반 이상의 인구가 사라진 것으로 믿고 있다.

흑사병에 걸린 사람들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려야했다. 증상은 열이 나고 종기가 생기면서 시작했다. 환자들은 인체가 감염균과 싸움을 벌인 결과 림프절이 부풀어 오르고, 피부가 비정상적으로 검붉어지다가 입으로 피를 쏟았다.

이 상황에 이르게 되면 대부분의 환자들이 3일 이내에 사망하였다.

이탈리아의 연대기 작가인 아그놀로 디 투라는 자신의 고향인 토스카나에 번진 흑사병의 무시무시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람들이 시에나의 여러 곳에서 커다란 구덩이를 파고 수많은 시체들을 산더미처럼 쌓았다. …… 그리고 마을 이곳저곳에서 대충 덮어버린 흙더미 사이로 개들이 사체들을 끌어내 뜯어먹고 있다.’

디 투라 자신도 이 흑사병으로 자식 다섯 명을 잃고 땅에 파묻을 수 밖에 없었다.

초기의 연구자들은 처음에는 흑사병이 중국 어디에선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연구가 더 진행되자 동부유럽과 중앙아시아에 넓게 퍼져있는 대초원 지대가 발생지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염병 역사학자 올레 베네틱토우에 따르면, 1346년 가을 타타르족(Tartar-Mongol)이 지금의 크림반도 페오도시야에 해당하는 카파 지역에 침입했을 때 흑사병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한다.

타타르족은 성을 포위하고 투석기를 이용해 전염병에 감염된 시체들을 카파 성내로 날려 보내, 도시 전체를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때 카파 성내에는 상거래를 위해 수백 명의 이탈리아 상인들이 머물고 있었다.

봄이 되어 이탈리아 상인들은 귀향하는 배 안에서 벼룩이 득실거리는 쥐들에 전염병을 옮기게 된다. 1347년 7월초가 되면 흑사병은 전 유럽으로 퍼지게 된다.

이후 이 전염병은 성행하던 해외무역과 도시들의 인구 증가에 따라 아프리카와 중동 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었다.

이처럼 흑사병의 기원과 전파를 추적하는 일은 비교적 손쉬운 일에 해당한다. 그러나 흑사병이 어떻게 종식되게 되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또 다른 문제에 속한다.

흑사병은 한창 맹위를 떨칠 때는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참혹한 전염병이었다
흑사병은 한창 맹위를 떨칠 때는 5,0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갈 정도로 참혹한 전염병이었다

흑사병은 어떻게 자취를 감추게 되었나?

유럽은 흑사병이 잠잠해지기 전까지 거의 10년간을 최악의 전염병과 마주해야했다. 이 흑사병은 이후에도 18세기까지는 매 10년마다 모습을 드러내기는 했지만 14세기만큼 그렇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1721년까지 서부 유럽에서 흑사병 발발에 대한 보고들이 이어지기는 했지만, 1665년의 런던 대역병(Great Plague)은 종종 흑사병의 마지막 창궐로 인식되고 있다.

한편, 흑사병은 19세기에 이르러서도 러시아와 오스만제국을 계속 감염시키기도 했다.

흑사병이 어떻게, 왜 자취를 감추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지만, 전문가들은 몇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흑사병이 사라진 것은 순전히 현대화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가정을 내놓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흑사병이 인간의 죄악에 대한 신의 심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신비주의에 입각한 잘못된 치료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신의 뜻을 거역하고 싶지 않았던 독실한 신자들은 병이 집에 들이닥쳐도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넋 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의학의 발달과 세균성 질병에 대한 연구가 성과를 발휘하게 되자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흑사병은 의학과 공중보건 발달에 중대한 기여를 하였다. 당대의 과학자들은 해부에 심혈을 기울이고 피의 순환을 연구하고, 전염병의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위생과 방역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실제로, 격리를 의미하는 ‘quarantine’이란 용어는 15세기 초 베니스에 흑사병이 돌았을 때 만들어졌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격리 조치가 최초로 시행된 것은 1377년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에 해당하는 항구 도시 라구사가 도시를 30일 동안 봉쇄한 때였다.

다른 연구자들은 흑사병이 인체 내 유전자의 진화와 박테리아 그 자체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흑사병의 실체와 자취를 감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가 많음을 알려주고 있다.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의료진이 교대 근무를 위해 방호복을 입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이 있는 병동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불안한 재발들

흑사병은 인류를 사로잡은 최초의 대량 전염병도 아니고 마지막 전염병이 될 것 같지도 않다.

6세기에, 이후 역사에서 ‘첫 번째 팬데믹(First Plague Pandemic)’이라고 알려진 커다란 역병이 동로마제국에 퍼졌었다.

그렇기 때문에 몇 세기 뒤 찾아온 흑사병은 ‘두 번째 팬데믹’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후 1855년과 1959년 사이 중아아시아와 동부 아시아에 피해를 준 또 다른 역병은 ‘세 번째 팬데믹’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때의 전염병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 1,2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학자들은 페스트에는 선페스트, 폐페스트, 패혈성페스트 이렇게 세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을 한다.

이 중 흑사병은 선페스트가 일으킨 질병으로 적어도 4,000년간 인간을 괴롭혀왔다.

선페스트에 감염되면 림프절과 서혜부가 물러져서 체내 출혈로 인해 피부에 검은 반점이 생기게 된다. 이 병은 ‘박테리움 에르시니아 페스티스(bacterium Yersinia pestis)’라는 박테리아 때문에 발병하는 전염병으로, 이 박테리아는 야생의 설치류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주로 쥐에서 발견된다. 이 쥐들은 이 박테리아를 옮기는 벼룩에 의해 감염이 된다.

오늘날 흑사병은 항생제로 간단히 치료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2019년까지 세계 각지에서 흑사병을 간간히 마주치게 되는데 대부분 선페스트이다.

미국에서도 해마다 대략 7건의 흑사병이 보고되고 있다. 이 병은 지금까지 미국 서부에서만 모습을 드러냈다. 미국 밖의 나라들을 보면 현대에 들어 아프리카가 흑사병으로 가장 심하게 타격을 입었다.

2017년과 2018년에 마다가스카르에서 폐페스트가 창궐했었다. 폐페스트는 인간 사이에서 급속하게 전파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당시 이 지역에서 수천 명의 감염자가 나오고 수백 명이 사망했었다.

중앙아시아와 남아메리카 일부 지역 같은 세계의 다른 곳도 역시 해마다 소소한 피해를 입고 있다.

현재의 코로나바이러스 같은 역병은 확실히 수세기에 걸쳐 거의 1억 명의 목숨을 앗아간 흑사병에 비교할 바는 못 된다. 그래도 잊을만하면 나타나 끊임없이 괴롭히는 흑사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류는 불안하다.

수상 경력이 있는 생물학자 데이비드 마크맨은 역병은 원래 동물의 전염병이었는데, 인간이 야생의 서식지를 침범함에 따라 이러한 전염병들이 인간들 사이에서 더 잘 전파되게 되었다고 말한다.

주지하다시피 또 다른 역병이 어디에 숨어서 우리를 노리고 있을지 모른다.

dtpchoi@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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