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히스토리] ‘마스크 착용 않으면 총살’…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당시 마스크 저항과 처벌의 역사
[WIKI 히스토리] ‘마스크 착용 않으면 총살’…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당시 마스크 저항과 처벌의 역사
  • 유진 기자
  • 승인 2020.07.13 10:23
  • 수정 2020.07.13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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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8년 스페인독감 대유행 당시 적십자사 소속 여직원들이 마스크를 쓰고 일하고 있다. [히스토리]

전세계에 걸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누적확진자 수가 1,300만명을 넘어서는 등 지구촌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은 확진자 340만명으로 전세계 확진자의 26%를 차지하고 있으며,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도 13만7천명으로 전세계 사망자의 56만명의 24%를 차지하는 등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19가 전세계 국가 중 미국에서 급속도로 확산돼 온 이유에 대해 많은 분석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비싼 의료체계, 개인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문화다. 특히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미국의 문화가 코로나19 확산을 가속화시켰다는 지적이 만만치 않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 바이러스 대유행과 마스크 착용 논란은 100년 전 ‘스페인 독감’ 당시에도 격렬하게 펼쳐진 바 있다.

1918년 미국 시카고를 중심으로 창궐한 스페인독감은 세계적으로 5,000만명 이상의 목숨을 빼앗아 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사망자 수보다 세 배나 많은 것이다.

‘스페인 독감’이 창궐하자 미 정부는 마스크가 전염병 예방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마스크 착용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면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에 대한 저항 활동이 줄을 잇기도 했다. 

역사 전문 미디어인 <히스토리>는 1918년 스페인독감 당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와 처벌, 저항 신드롬 대해 소개해 관심을 끌고 있다.

당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벌금형, 징역형에다 신문에 이름이 공개됐고 심지어 총살까지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마스크 강제 착용 조치에 대한 저항이 확산됐다.

스페인독감 창궐 당시 샌프란시스코시의 풍경. [히스토리]

▶’스페인 독감’ 대유행 전염병에 대책을 내놓다

미국 내에서만 67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 전염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 주 정부들은 학교와 공공시설을 폐쇄하거나, 침뱉기 금지, 손수건이나 일회용 휴지를 사용해 마스크 착용 등 대책을 내놓았다. 
 
마스크 착용 법령은 주로 서부 주에서 나왔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준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당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싸우고 있었고, 정부는 이 치명적인 독감으로부터 군대를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유행병 차단 대책을 시행했다.

첫 감염으로 기록된 인물은 1918년 3월 4일 캔자스 주 포트라일리에 배치된 미 육군 사병이었다.

미국과 전쟁 중인 다른 나라들은 독감에 대한 정보를 숨겼지만, 중립적인 스페인은 이를 자유롭게 보도했다. 이 때문에 어이없게도 이 유행병에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이 붙게 됐다. 

당시는 마스크 착용이 애국심과 관련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적십자사는 공공연하게 “지금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는 아이들, 남자와 여자는 위험한 게으름뱅이”라고 강조하곤 했다.

전시 임무에 대한 의식과 ‘게으름뱅이’로 보여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덴버, 피닉스 같은 도시에서 마스크 착용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을 준수했지만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이 불편하고, 효과가 없거나 사업에 방해가 된다고 불평했다. 심지어 공무원들도 마스크 없이 공공장소에 돌아다니다가 붙잡히곤 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사람들 사이에선 군대를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의식이 사라졌고, 일부 반대자들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스크 착용 반대연맹’를 결성하기도 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당시 마스크를 쓴 이발사가 면도를 하는 모습. [히스토리]
1918년 스페인독감 당시 마스크를 쓴 이발사가 면도를 하는 모습. [히스토리]

▶마스크는 거즈나 투과성 물질로 만들어졌다

1918년, 의료 종사자들은 오늘날 사용하는 N95와 같은 고급 마스크와는 거리가 먼 마스크를 착용했다. 수술용 마스크와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는 마스크 또한 거즈로 만들어졌다.

적십자 자원 봉사자들은 거즈로 만들어진 마스크를 만들어 나누어줬고, 신문사는 스스로 마스크를 만들거나 군대에 기부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설명을 기사에 실었다.

미시간대학의 의약역사센터 부소장이자 ‘미국의 1918-1919 인플루엔자 유행 디지털백과사전’ 책임편집자인 알렉스 나바로 박사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각 시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냈다”고 말했다.

1918년 10월, 시애틀 데일리 타임즈는 ‘인플루엔자가 새로운 패션을 만들다: 시폰 테두리가 있는 고운 망사를 쓴 시애틀 여성들’이라는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불확실한 물질로 만들어지거나 유행을 이끌던 마스크는 실질적으로 착용을 의무화 하는데에 별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의학계와 과학계에서는 여러 거즈를 겹쳐서 사용하는 마스크가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논쟁이 전개되기도 했다.

그 중 예로 디트로이트시 J.W. 인치 보건국장은 “거즈 마스크가 너무 투과성이어서 독감이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마스크를 제대로 착용했을 때만 효과적인데 사람들이 이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스크 착용을 대부분 준수하고 있는 피닉스시에서는 일부 시민들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 마스크에 구멍을 뚫어 사용하는 현상이 나타났고, 이것은 마스크 착용 효과를 크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처벌받은 ’마스크 미착용한 게으름뱅이’

푸젯 사운드대학의 역사학과장이자 ‘아메리칸 팬데믹: 1918년 인플루엔자 유행으로 잃어버린 세계’라는 책의 저자인 낸시 브리스토 교수는 “사람들이 덥고 답답하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부 사람들은 그들이 대중에게 공포를 조성하고, 우리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들을 반대하는 주장을 내세우는데, 그들을 비판하는 것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의 핑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18년 스페인독감 당시 감염된 병사들을 치료하던 시설의 내부. [히스토리]

일부 자영업자들은 소비자들이 외출할 때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한다면 쇼핑을 덜 할 것이라 우려했고, 일부 사람들은 마스크 착용 법령이 시민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브리스토우 교수는 “비판적인 면에서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듣고 있는 바로 이 생각이 사람들에게 잘못된 안보의식을 심어줬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브리스토우 교수가 지적했듯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을 때는 사람들이 다른 예방 지침을 제대로 따르지 않고, 특히 담배를 피울 때 마스크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할 때이다.

1918년 가을에 마스크 착용 법령을 통과시킨 도시들은 일부 시민들의 저항에 직면했다. 각 지자체가 강행했던 일반적인 처벌은 벌금, 징역형, 그리고 신문에 이름을 싣는 것이었다.

끔찍하게는 샌프란시스코시 보건담당 특별 간부가 두명의 구경꾼 뿐 아니라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한 남성을 총살한 사례도 등장했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높은 관리들이 마스크 착용을 거부했을 때 대응을 크게 달랐다.

한 권투 시합에서, 한 경찰 사진작가가 몇몇 감독관, 국회의원, 법무관, 해군 장군, 보건 담당관 그리고 심지어 시장의 마스크 미착용 사진을 찍었다. 보건담당관은 5달러의 벌금을 냈고 시장은 나중에 50달러의 벌금을 냈지만, 다른 ‘마스크 게으름뱅이들’과 달리 그들은 징역형을 받지도 총살을 당하지 않았다.

▶ 전쟁이 끝난 후 마스크 착용 감소하다

샌프란시스코의 첫 마스크 착용 법령은 10월에 시작되어 제1차 세계 대전 휴전 이후인 11월에 끝이 났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독감 환자가 다시 급증하기 시작한 1월, 시는 두번째 마스크 착용 명령을 시행했지만 사람들의 저항은 훨씬 더 격렬했다.

의사 몇 명과 감리위원 한 명이 참여한 반대파 모임은 ‘마스크 반대 연맹’을 결성해 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 회의에는 2,00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샌프란시스코가 더이상 전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번째 마스크 착용 법령에 대한 저항이 더 강했을 수도 있고, 일부 주민들은 이전에 가졌던 애국적 의무감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고 나바로 박사는 추측했다.

독감 대유행 당시 공중 보건 대책에 대해 저술한 낸시 톰스 스토니브룩대 역사학 교수는 “1918년과 1919년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던 움직임이 널리 확산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톰스 교수는 “사람들이 유행병으로 인해 손수건과 휴지를 더 빈번하게 사용하기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마스크 착용 법령이 끝난 후에는 사회적으로 마스크 착용 분위기가 더 이어지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1918년과 1919년에 마스크 착용 자체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전반적으로 더 강력한 예방 대책을 시행한 지역사회가 그렇지 않은 지역사회에서 보다 더 나은 결과를 얻었다는 것이다.

브리스토우 교수는 “우리는 훨씬 더 엄격한 규제를 오랫동안 시행하고 더 일찍 시작한 지역사회가 더 낮은 사망률을 보였음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당시 과학적으로 데이터화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에 마스크 강제화의 효과는 분명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페인독감 이후 100여년. 코로나19 환자가 전세계 2천만명을 향해 치닫고 있는 오늘날에도 마스크가 어느 정도 인플루엔자 차단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 연구물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위키리크스한국= 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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