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백악관 X파일(86) 미 재무부의 주미대사 소환 사건, 한-미 관계 뒤흔들다
청와대-백악관 X파일(86) 미 재무부의 주미대사 소환 사건, 한-미 관계 뒤흔들다
  • 특별취재팀
  • 기사승인 2021-01-04 07:57:36
  • 최종수정 2021.01.04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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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백악관 x파일
청와대 백악관 x파일

한-미 정부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도록 애써왔던 리처드 워커 주한미국대사는 미 국무장관으로부터 ‘원화 절상 압력이 없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자 1986년 7월 31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상옥 외무장관대행을 찾아갔다.

대사는 “슐츠 국무장관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게 돼 기쁘게 생각한다”며 국무장관의 메시지를 직접 제시했다.

메시지를 읽은 이 장관은 매우 흡족해 하면서 미 대사관이 기울였던 노력에 대해 깊은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워커 대사가 대사로서의 큰 보람을 느낀 것도 이날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하루짜리였다.

이튿날인 8월 1일 오후, 워커 대사는 외무부에 다시 들르라는 요청을 받았다.

대사는 ‘갸우뚱’ 하는 표정으로 대사관 길 건너편에 있던 이장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그는 “대사님, 어제 내게 안심하라고 말한 의미는 무엇이었습니까? 이건 뭐지요?”라고 말하면서 팩스로 전송된 8월 1일자 <뉴욕 타임스> 기사를 내밀었다.

신문에는 데이비드 멀포드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이 바로 어제(현지시간 7월 31일) 김경원 주미대사를 불러 ‘한국 정부가 원화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대사는 어안이 벙벙했다. 도무지 그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장관은 우선 정상적인 외교 관례에 어긋난 미국의 행동을 지적했다. 정상적인 관례대로라면 주미 한국대사는 ‘미 국무부’가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재무 차관이 한국 대사를 부른 것은 외교 관행과 관례에서 크게 벗어난 행동이었던 것이다.

워커 대사는 대사관에 돌아오자마자 국무부에 항의성 급전을 띄웠다.

기사는 사실로 확인됐다. 이 문제 때문에 슐츠 장관과 국무부의 다른 관리들도 무척 화가 났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이번 사태는 당시 전두환 정권이 미국을 비난하면서 맞설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한 셈이 됐다. 전 씨는 자신이 (북한의 주장대로)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니라는 점을 국민들에게 과시하려 했다. 언론들은 미국이 한국을 무시했다고 보도하기 시작했고, 한국 정부는 막지 않았다. 

워커 대사는 심상치 않은 서울의 기류를 워싱턴에 수시로 전했다. 그리고 의사 전달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한데 대한 미국의 사과를 외무부에 전달하라는 워싱턴의 메시지를 받아 외무부에 전했다.

8월 4일. 대사는 ‘정인용 재무장관을 방문하는게 어떻겠느냐’는 외무부의 권유를 받고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관례를 따지자면 대사는 외무부장관을 만나는게 원칙이지만, 이번 사태는 외교관레를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돈 매콘빌 경제참사 등 2명의 참사를 대동한 워커 대사는 과천 제2청사의 재무부를 찾았고, 수십명 기자들의 질문공세와 카메라 플래시를 받으며 재무장관실로 들어갔다.

재무장관은 ‘미 정부가 적절치 않은 경로로 일을 처리했으며, 한국에 환율 재평가 압력은 부당하다’는 내용의 국무총리 메시지를 낭독했다.

공식 메시지 낭독 후에는 훈훈한 덕담이 오갔다. 하지만 언론은 ‘대사가 면박을 당했다(Rebuke)’고 보도했다.

이 사건으로 미국 정부는 상당기간 더 이상 환율 재평가 압력을 넣기가 어려웠다.

전두환 정권이 이 즈음부터 저달러-저유가-저금리의 이른 바 <3저호황>을 톡톡히 누리게 된 배경에는 ‘주미대사 소환사건’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위키리크스한국=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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