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프리즘]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에서 '고소장 위조'가 기소되지 않은 사연
[WIKI 프리즘]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에서 '고소장 위조'가 기소되지 않은 사연
  • 윤여진 기자
  • 기사승인 2019-07-17 17:32:49
  • 최종수정 2019.07.24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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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장 표지'만 떼어내 기소... 법원 "고소장 위조 아니니 선고유예"
1심 선고유예 나온 날, 고발인은 대법원장·검찰총장 내정자에 진정
처음 고발장 낸대로 '고소장 위조' 기소해달라...'공소장 변경 요청'
사건 기소한 부산지검 아닌 중앙지검 검사가 법원에 진정서 전달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에서 고소장 위조 혐의(사문서 위조)가 빠졌다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며 제출한 진정서 첫 장 갈무리. [사진=윤여진 기자, 투기자본김시센터 제공]
투기자본감시센터가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에서 고소장 위조 혐의(사문서 위조)가 빠졌다며 공소장 변경을 요청하며 제출한 진정서 첫 장 갈무리. [사진=윤여진 기자, 투기자본감시센터 제공]

고발인은 고소장 위조 혐의를 수사해 달랬는데, 검찰이 고소장 위에 붙이는 표지가 위조된 것만 떼어내 기소했다면 합리적인 공소일까.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이 고소장 표지가 위조된 건 맞지만 고소장은 위조된 게 아니라는 이유로 선고유예를 선고한 건 합리적인 재판일까. 

두 가지 물음에 정면으로 "아니다"라며 고발인이 검찰총장 내정자와 대법원장에 진정서를 보낸 사건이 있다. 바로 검사가 고소장을 분실하자 같은 고소인이 제출한 다른 고소장을 복사한 뒤 사건기록에 몰래 끼워 표지에 차장검사 허락 없이 도장을 찍고 각하 처리한 사건이다. 

범죄 발생 시점은 2015년 12월. 법무부에서 비위 첩보를 생산하고 대검찰청이 감찰을 지시한 게 2016년 4월. 아무런 징계 없이 '문제의 검사' A씨가 퇴직한 건 2016년 6월. 뒤늦게 고발장이 제출되자 부산지검이 기소한 게 지난해 10월이다. 마지막으로 부산지법이 공문서위조가 맞는다고 선고한 날짜가 지난달 19일이다. 

어떻게 돌려봐도 검찰의 '늑장 기소'는 부인키 어려운 전대미문의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은 A씨와 부산지검의 쌍방 항소로 지난 9일 항소심 재판부가 막 배정된 상태다. 

◇사건과 무관한 중앙지검 검사의 '추송서 제출'

아직 재판기일조차 잡히지 않은 지난 15일 항소심 재판부인 부산지법 제3형사부(재판장 문춘언)에 추송서 하나가 제출됐다. 추송서란 '추가 송치 서류'의 약자로 검찰과 법원만 쓰는 단어다. 말 그대로 필요한 서류인데 기관에서 기관으로 미처 제출 못 한 서류라는 뜻이다. 제출한 쪽이 어디든 '필요한 서류'를 전제하는 까닭에 '추송서 제출'은 종종 재판의 변수로 작용한다. 

법원 제공 서비스인 '나의 사건검색'에서 16일 조회한 결과 항소심 재판부가 공개한 건 "법원 부○○○○○ 추송서 제출"이 전부다. 법원에서 서류를 직접 만지는 해당 재판부 실무관에게 확인해보니 이 추송서는 지난 8일 김모 검사가 1심 재판부에 제출한 고발인의 진정서다. 

진정서를 부산지법에 전달한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소속이다. 왜 A씨를 기소한 부산지검 검사가 아닌 중앙지검 검사일까. 이 사건의 출발점은 애초 사건을 처리한 부산지검이 아닌 중앙지검이었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지난 2016년 8월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A씨를 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고발한 지 약 3년이 다 돼가는 지난 6월 19일, 이 사건 1심 재판부인 부산지법 형사5단독 서창석 부장판사는 A씨에게 징역 6월에 선고유예를 선고했다. 벌금형이 없고 징역형 밖에 없는 중범죄인 공문서위조 사건에서 판사가 이례적으로 선고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뭘까. 

"이 사건은 피고인이 분실한 고소장 자체를 위조한 것이 아니라 고소장이 접수되어 주임검사에게 배당됐다는 취지가 기재되어 있는 내부적 문서인 '사건기록표지'가 위조된 것으로써 그 사건기록표지 자체가 어떠한 권리·의무관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서에 해당한다거나 형사절차와 관련된 중요한 문서라고 볼 수 없다"  

검사의 고소장 위조가 문제가 된 사건에서 고소장을 위조한 것은 아니라고 선고된 이날, 고발인은 19쪽 분량의 진정서를 검찰과 법원 양쪽에 제출했다. 

고발인은 사건을 담당한 부산지검을 신뢰할 수 없던 걸까. 진정서 수신처는 "대통령님, 대법원장님, 검찰총장 내정자님, 부산지검장"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내정자 신분이 서울중앙지검장인 관계로 중앙지검이 진정서를 접수했다. 

1심이 고소장 위조가 아니라고 본 건 애초 부산지검이 고소장 표지를 대상으로만 기소한 탓이다. "고소장 위조 혐의를 수사해달라"는 고발장에서 명시한 죄목이 사문서(고소장)가 아닌 공문서(고소장 표지) 위조인 점에 착안해 '기술적 기소'를 한 것으로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부산지검은 기소 당시 소속 부장검사 10명 전원이 참석한 부장검사회의를 거쳤다. 부장검사들이 모여 어떤 방향으로 법률 검토를 한 것인지는 따져봐야 할 일이다. 

◇고발인에게 좌절 안긴 법원이 준 희망 '사문서 위조' 판례

역설적이게도 1심 판결을 신뢰할 수 없던 고발인에게 희망을 준 건 대법원 판례다. 지난 2014년 '체벌 동영상' 80여 편이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무단유포돼 고소인 위임을 받은 변호사가 네이버 계정 30명을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서 사문서위조가 발생했다.  

의뢰인은 계정을 20개와 10개로 나눠 두 개의 고소위임장을 작성했다. 사건을 수임한 변호사는 두 개의 고소위임장 위에 '경유증표'를 20개와 10개로 각각 나눠 붙여야 했다. 붙이긴 했는데 문제는 붙인 게 가짜였다. 경유증표란 변호사가 고소위임장을 수사기관에 제출하기 전 수임 내역의 투명한 공개를 위해 소속 지방변호사회를 거쳤다는 표식이다. 

이 변호사는 서울지방변호사에서 한 장에 1만 2000원에 발급하는 경유증표 하나를 산 뒤 사무실 칼러복사기로 30장을 복사했다. 이후 위조한 경유증표를 붙인 고소위임장을 의정부지검 수사과에 제출한 이 변호사는 범죄혐의가 적발돼 사문서위조 및 사문서위조행사죄로 기소됐다.

변호사의 '고소장 경유증표 위조'라는 전례가 없던 탓인지 1심은 무죄를 선고했으나 항소심과 대법원은 유죄를 인정했다.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진정서에서 인용한 '사문서 위조' 대법원 판결문 갈무리. [사진=윤여진 기자]
투기자본감시센터가 진정서에서 인용한 '사문서 위조' 대법원 판결문 중 '사문서 위조 요건' 부분 갈무리. [사진=윤여진 기자]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2016년 7월 14일 항소심이 선고한 벌금 200만원을 확정하며 사문서위조가 성립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문서가 원본인지 여부가 중요한 거래"에서 "일반인이 명의자의 진정한 사문서로 오신하기에 충분한 정도"일 경우에 성립한다는 것이다. 

◇'고소장 위조 사건' 재판에서 '고소장 위조'는 추가될 수 있을까

투기자본감시센터는 이같은 판례를 토대로 A씨의 남은 죄인 사문서위조 및 위조사문서행사죄를 추가 적용한 공소장 변경을 요청했다. 공소장 변경이란 공소사실의 동일성을 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검사가 법원의 허가를 받아 공소장에 기재한 적용 법조를 추가·철회·수정하는 걸 말한다. 

A씨의 경우도 대법원이 내건 사문서위조죄의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높다. 고소장 위조 범죄는 사문서위조와 공문서위조 경계에 있다는 점에서 "문서의 원본인지 여부가 중요한 거래" 중 중요도가 제일 높은 범위에 든다. A씨처럼 검사가 고소장을 사건기록에 첨부한 뒤 붙인 표지에 상급자 도장을 찍으면 사문서인 고소장은 어느새 공문서가 된다. 

또 상급자인 부장검사는 A씨가 위조한 고소장이 첨부된 사건을 각하 처분할 때 이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현직 검사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라면 "일반인이 오신하기에 충분한 정도"는 넘는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투기자본감시센터 진정을 접수한 중앙지검 김 검사는 지난 8일 "법원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이라며 부산지검을 거치지 않은 채 진정서를 1심 재판부에 넘겼다. 자신의 재판이 잘못됐다는 진정서를 서 판사는 항소심 재판부에 부쳤다. 
 

◇7월에 피어 10월에 지는 무궁화꽃의 비밀 

무궁화꽃. [사진=연합뉴스]
무궁화꽃. [사진=연합뉴스]

남은 건 항소심 재판부와 부산지검 공판부의 의지다. 공소장 변경은 법원 허가가 떨어져야 가능하지만 그 전에 공판검사의 신청이 있어야 한다. 사건과 관련 없는 중앙지검이 '추송서 제출'이란 형식으로 진정서를 건네줬기에 항소심 재판부는 공소장 변경을 두고 공판검사에 석명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석명이란 재판 쟁점을 뚜렷하게 정리하기 위해 판사가 검사 또는 피고인 측에게 질문하거나 입증을 요구하는 절차다.

7월 현재 법원과 검찰 모두 하반기 인사를 앞두고 있다. 부산지검 공판검사와 부산지법 항소심 재판부가 전부 바뀔 가능성이 높다. 달리 말하면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은 새 부임지에 자리를 튼 검사와 판사들의 첫 사건이다. 

법원 마크 테두리로 쓰는 무궁화꽃은 7월에 피어 100여 일 동안 자태를 뽐낸 뒤 10월에 진다. 수명이 하루인 무궁화꽃은 사실 피고지고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한 나무에서만 무려 많게는 3000송이를 피우는 까닭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사람 눈에 비친 7월의 무궁화꽃이 영롱하면, 10월의 무궁화꽃도 영롱한 법이다. 아직은 합리적인 재판과 공소가 가능하다고 믿고 싶은 이들이 7월의 판사와 7월의 검사를 기다린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 해당 기사의 분류를 [사회]에서 [법조]로 변경, 최초 기사 출고 시간과 상관 없이 최종 수정 시간이 2019년 7월 24일 자로 표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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