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프리즘] LG-SK 배터리 소송, ITC 판결보다 트럼프 속내가 궁금한 이유
[산업 프리즘] LG-SK 배터리 소송, ITC 판결보다 트럼프 속내가 궁금한 이유
  • 양철승 기자
  • 승인 2020.01.30 06:09
  • 수정 2020.01.30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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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C, 조기패소 판단 초읽기...패소 결정돼도 트럼프 ‘거부권’ 행사로 무력화 가능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사진)가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LG화학이 요청한 조기패소 인용 여부를 수일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위키피디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사진)가 LG화학-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소송과 관련해 LG화학이 요청한 조기패소 인용 여부를 수일내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위키피디아]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이 미국에서 진행 중인 전기차 배터리 소송전의 1차전 격인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미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조기패소 결정이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의 ‘비토(veto, 거부권)’ 행사 여부가 또 다른 관전포인트로 떠오르고 있다.

ITC가 조기패소를 결정해도 트럼프 행정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판결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는 까닭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행위를 근거로 ITC에 요청한 조기패소 판결의 결과가 이르면 수일 내 발표될 예정이다. 미국 현지 언론들은 ITC 산하 불공정수입조사국(OUII)이 LG화학의 입장에 동의하는 의견서를 제출했다는 점에서 조기패소 요청이 받아들여질 개연성을 높게 보고 있다.

이런 예상대로 조기패소가 결정되면 오는 6월로 예고됐던 예비결정을 갈음하게 된다. 올 10월경 예정된 최종결정도 앞당겨진다. 또한 예비결정이 최종결정에서 번복되는 사례가 드문 만큼 최종결정에서 동일한 판단이 내려진다면 SK이노베이션은 LG화학의 청구에 따라 영업비밀 침해의 결과물인 배터리셀, 팩, 샘플 등의 미국 내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LG화학 구성원들이 자동차용 배터리를

◇USTR ‘거부권’이 변수=현재 양사는 섣부른 전망이나 가정에 근거한 입장 표명은 자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업계와 법조계는 이번 ITC의 조기패소 판단이 소송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향후 전개될 소송 과정은 물론 이와 별도로 진행 중인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누가 주도권을 거머쥘지 가늠할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ITC에서의 소송에는 한가지 큰 변수가 존재한다. 바로 트럼프 행정부의 거부권이다.

ITC 심의 절차상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은 미 무역대표부(USTR)가 ITC 최종판결 이후 60일 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거부권이 행사되면 ITC의 행정조치는 효력을 상실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에 따라 LG화학은 명분만 갖고, 실리는 SK이노베이션이 챙기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 서울의 한 로스쿨 교수는 “ITC는 삼권분립에 의해 독립성을 보장받는 사법기구가 아닌 경제 관련 소송의 조속한 해결을 위한 준사법기구”라며 “USTR 승인 절차를 제도화한 행간에는 판결 결과가 국익에 반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미 행정부의 복심이 읽힌다”고 말했다.

양사가 지난달과 이달 각각 1조원대의 미국 현지 투자를 경쟁적(?)으로 발표한 것을 놓고 국익 공여도에 주목할 트럼프 행정부를 염두에 둔 포석도 깔려있을 것이라는 업계의 해석이 나오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한 관계자도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기업의 자국 내 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경제 활성화의 핵심정책 중 하나로 삼고 있어 현 상황에선 양사 중 누구라도 미국 사업에 차질이 빚어지는 상황을 원치 않을 것”이라며 “SK이노베이션이 최종 패소할 경우 USTR의 거부권 행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다만 이때에도 LG화학의 최후 보루는 남아있다. LG화학은 동일한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미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도 제기했는데, USTR의 거부권은 ITC 판결에 효력을 발휘할 뿐 법원의 소송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로스쿨 교수는 “ITC가 LG화학이 제시한 영업비밀 침해 내용 전체를 인용할지, 일부를 인용할지 등에 따라 대응 시나리오는 달라질 수 있다”면서도 “실효성 측면에서 법원 소송에 주력하는 방안이 가장 유력하다”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또 “ITC가 LG화학의 손을 들어줬다면 델라웨어 법원 소송에서 LG화학이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며 “ITC 대비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 투입이 불가피하겠지만 최종 승소를 이끌어내면 손해배상 등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거부권 행사는 역사상 단 6번=일부 업계전문가들은 USTR의 거부권 행사 자체를 회의적으로 보기도 한다. 미 행정부(대통령)가 ITC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탓이다.

실제로 ITC 최종결정에 거부권이 행사된 사례는 역사상 단 6차례에 불과하다. 이중 최근 두 번이 삼성전자 관련 소송이었는데, 가장 최근의 사례가 6년 5개월여 전인 2013년 8월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에서 나왔다.

당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ITC의 삼성전자 일부 승소 판결로 몇몇 아이폰·아이패드 모델의 미국 판매가 금지되자 USTR을 통해 거부권을 행사해 애플의 숨통을 틔워줬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1987년 삼성전자의 컴퓨터 메모리칩 관련 ITC 분쟁에 거부권을 행사한 이래 26년 만에 나온 조치였다.

이에 미국에서조차 의외라는 평가가 나왔고, 자유무역을 표방하는 미 정부가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이중적 행태를 보였다는 대내외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거부권 행사에 회의적인 인사들은 거부권이 행사된 지난 두 차례의 ITC 소송과 달리 이번 소송의 양측 당사자 모두가 한국기업이라는 부분도 감안해야할 요인이라 지적한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국익을 저울질할 피아(彼我)가 뚜렷하지 않아 상당한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거부권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이런 고민을 잘 알고 있을 ITC가 행정부에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조기패소 요청을 인용하지 않는 정무적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배재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 행정부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는 이견이 있지만 양사의 소송전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예측에는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영업비밀 침해와 특허 침해라는 복수의 소송이 ITC와 델라웨어 법원에서 진행 중인데다 아직은 양사 어느 쪽도 물러설 기미가 없어 패소한 측이 즉시 재심 요청과 항소에 나설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재계 관계자는 “사실상 조기합의는 어렵다고 본다”며 “하지만 대부분의 특허소송에서처럼 이번 소송전 역시 법원의 3심 판결 이전에 배상금이나 로열티 지급 등을 통한 양사 합의종결 수순을 밟을 소지가 크다”고 예상했다.

[위키리크스한국=양철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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