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안부합의 '고위급 채널' 이병기, 朴대통령 대면보고 못해
[단독] 위안부합의 '고위급 채널' 이병기, 朴대통령 대면보고 못해
  • 윤여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5-13 18:46:01
  • 최종수정 2020.05.13 17: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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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방해 혐의' 2차 공판에 출석하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방해 혐의' 2차 공판에 출석한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진=연합뉴스]

2015년 '한·일 위안부합의' 타결 직전까지 고위급 협상을 책임진 이병기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이 협상 결과를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13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에 참여했던 인사에 따르면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당시 고위급 협의 대표인 이 전 실장은 협상 결과를 대면 방식이 아닌 팩스 전송으로 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전 실장이 박 전 대통령에게 대면보고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2017년 12월 27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2015.12.28.) 검토 결과 보고서' 발간을 끝으로 해산한 TF가 공개하지 않은 내용이다. 

이 보고서에 이 전 실장 이름은 단 두 번 등장한다. 2014년 국장급 협의가 교착 상태에 놓이자 협상 중심이 고위급 비공개 협의로 넘어간다. 이 상황을 두고 보고서는 "한국 쪽은 대통령의 지시로 이병기 국가정보원장이 대표로 나섰다"고 기록했다. TF는 또 2015년 2월 제1차 고위급 협의 당시 국정원장이던 이 전 실장이 제2차 협의 때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옮겨가 계속해서 고위급 협상을 책임졌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 "이병기씨는 처음부터 끝까지 고위급 협의 대표로 참여하였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문제는 대부분 쟁점이 타결된 2015년 4월 11일 제4차 고위급 협의 내용이 그해 12월 합의문 발표 때까지 박 전 대통령에게 제대로 보고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합의문 핵심인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과 사죄, 금전적 조치가 이때 합의문 골격으로 자리 잡았다. 비공개 대상인 피해자 지원단체 설득, 제3국 기림비 설치, '성노예' 용어 사용 관련 '한국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도 잠정 타결됐다.

TF에 참여했던 인사는 <위키리크스한국>에 "이병기 실장이 (고위급 협의 잠정 타결 내용) 대면보고를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라며 "대면보고 말고 팩스라든지 (문서로) 오가는 게 있었을 텐데 청와대 내에서 이뤄진 문서는 대통령 보관실에 들어가 있다. 그것까진 우리(TF)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기서 '대통령 보관실'은 대통령기록물을 보관하는 대통령 기록관을 말한다. 

TF 인사 발언은 "10억엔이 일본에서 들어오는데 대표만 알고 있었고, 피해자들은 알지 못했다"라는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주장이 사실인지 묻고 답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합의문 핵심 내용과 이면의 비공개합의는 고위급 채널인 이 전 실장이 주도해 외교부는 소외된 까닭에, 핵심 내용인 10억엔 부분을 외교부가 피해자 측에 전달하기는 협상 구조상 어렵다는 해석이다. 

역설적인 건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 전제 조건인 한국 측 조치가 이면 합의에 들어간 배경을 대통령 역시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이 관계자는 "(고위급 협상 내용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이병기 실장이고, 나머지는 (대통령을 포함) 그 누구든지 100% 알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전했다. 협상 채널이 국장급에서 고위급으로 전환된 2015년 초부턴 외교부 당국자도 핵심 사항으로 취급된 금전 관련 내용이 어떻게 합의문에 들어갔는지 알 수 없다는 취지다. 

합의 타결 전날인 2015년 12월 27일 마지막 국장급 협의가 열렸다. 늦은 밤까지 이어진 회의가 끝나고 합의문 내용 일부가 피해자 측에 전달됐다. 이때 각각 창구를 맡은 게 이상덕 당시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과 윤미향 당시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현 정의기억연대·정대협) 대표다. 이때 이 할머니 말처럼 '일본 정부 예산(국고) 거출'이 설명 내지 통보됐다고 해도 여기에 '10억엔' 부분이 포함되지는 않았다는 게 TF 인사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10억엔 (공익법인 재단 출연)이라든지, 최종적 불가역적으로 한다든지, 해외 나가서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도록 (정대협을) 설득한다든지 소녀상을 옮기도록 노력한다든지의 중대한 포괄적인 사항은 충분하게 위안부 피해자 또는 피해자단체와 공유했다기 보기 어렵다는 것이 TF 보고서"라고 덧붙였다. 10억엔 부분과 소녀상 이전 부분 또한 피해자 측에 사전 설명되지 않았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려진 사실이다. 

한·일 외교부 장관이 합의문을 발표한 당일 공개되지 않은 이면 합의 내용에서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조치' 중 일부가 피해자 측에 사전에 전달되지 않았다는 건 TF 보고서에도 나온다. 다만 합의문 핵심 내용을 외교부가 피해자 측에 어떻게 전달했는지 상당히 추상적으로 기술돼 있다. 

TF 보고서는 "외교부는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쪽에 때때로 관련 내용을 설명하였다"면서도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확인, 국제사회 비난·비판 자제 등 한국 쪽이 취해야 할 조치가 있다는 것에 관해서는 구체적으로 (외교부가 피해자 측에) 알려주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협상 당시 고위급 채널과 분리된 국장급 채널이 피해자 측과의 접촉을 담당했다는 점에서 고위급에서 오고 간 얘기가 국장급에는 어떻게 전달됐는지는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기자회견 이후 두문불출했던 이 할머니도 13일 <경향신문>에 보낸 입장문에서 "지난 2015년 박근혜 정부 당시 한일 간 졸속 합의와 관련하여 대민 의견 수렴 과정과 그 내용, 그리고 정대협 관계자들의 정부 관계자 면담 시 대화 내용 등 관련한 내용이 조속히 공개되어 우리 사회의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키리크스한국=윤여진 기자]

aftershock@wikileaks-k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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